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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와 정가의 묏자리 쟁탈전 - 마침내 타협점을 찾다
1616년 9월 25일, 김택룡의 생질 정득이 영주 이산(伊山)에서 돌아와 소지동(蘇池洞) 할아버지 산소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김택룡에게 말하길, 오늘 박가가 감사의 판결을 따르지 않고 송사가 걸렸던 산에서 묘소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정씨 친족들이 모두 모여 금지시키고 중지시킬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김택룡이 이미 박가가 산송 다툼이 일어난 바로 그 곳에 묘를 쓰지 않고 다른 곳으로 다시 묘자리를 잡았으니, 두 집안 모두 장례를 허용하기 위해 서로 모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정수 등 여러 공들이 김택룡의 집 앞을 지나면서도 그를 만나러 들어오지 않았다. 김택룡이 정소(呈訴)에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혐의를 피하고자 해서였다. 생질 정득만 김택룡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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