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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작료가 걷히지 않는 논, 상황 조사를 시작하다
1617년 9월 27일, 김택룡이 종손(從孫)이를 농사짓는 논이 있는 마평(馬坪)에 보냈다. 또 그 곳에는 다른 사람이 농사짓는 전답 두 곳도 있는데 그 동안 대가는 커녕 요역과 부세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김택룡은 김응희에게 양전행심책(量田行尋冊)을 가지고 가서 살펴보라고 청했다. 아울러 별감 이여함에게 사표(四標)를 찾아 조사해보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양전[量田, 논밭을 측량]할 때 복만(卜萬)의 전답으로 측정되었던 것을 다른 사람이 경작하여 먹고 있었음을 알았다. 김택룡은 서서히 찾아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0월 4일, 김택룡은 아침에 풍종을 도촌에 보냈다. 마평(馬坪) 전답 두 곳을 권굉(權宏)의 노비 윤복(允卜)과 이성간(李成榦)의 노비 일년(一年), 그리고 김 서방이라고 칭하는 여러 사람이 갈아 먹은 지 오래 되었는데 세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서 부르게 한 것이다. 풍종이가 와서 고하길, 모두 모레 오겠다고 했다 하였다.

10월 8일, 아침에 김호학(金好學) · 윤복(允福)이 마평 전답 일로 왔기에, 상황을 깨우쳐 보내며 부세(賦稅)를 내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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