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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현감 박선장이 파직되다
1609년 4월 5일, 아침에
제천 할아버지
를 뵈러 갔던 김광계는 너무 애석한 소식을 듣고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작년 6월에 예안현에 부임하여 아직 한 해도 안 된 현감
박선장(朴善長)
이 파직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전 현감인
안담수(安聃壽)
가 파직되었을 때는 예안현의 모든 사람들이 속이 시원하다며 좋아했는데, 이번 박 현감의 파직 소식은 그야말로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박선장은 예안현에 부임하여 마을 백성들의 사정을 살피고 자상하고도 소탈하 게 고을을 다스렸고, 가혹하게 조사하거나, 민간에서 거두어들여 비용을 충당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박 현감이 처음 예안현에 부임했을 때 전임 안 현감의 비리와 부패로 인해 관아의 창고가 텅텅 비어 모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형편이었으나, 반드시 필요한 물품만을 마련하여 점차 풍족해져 남아돌기까지 하였다.
이전의 수령들은 모두 관아 창고의
원곡(元穀)
을 마음대로 사용하다가 마침내 모자라면 민간에서 마구 거두어들여 원성이 높아지고 그 폐단이 많았으나 박 현감은 그렇게 하지 않아서 예안 현의 백성들은 모두 현감을 칭송하며 안정되게 살게 되었는데 이러한 소식을 듣게 되니 탄식하고 애석해 마지않는 사람이 없었다. 김광계와
제천 할아버지
금응훈은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에 한잔 두잔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꽤 많은 술을 마시게 되었다.
박 현감이 파직된 이유는 다음날 알게 되었다. 그 날 김평 재종숙이 관아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박 현감이 파직된 것은 담당 아전인 오학(吳鶴)이 꾸민 짓이라는 것이다. 박 현감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상부에 예안현감이
세초군(歲抄軍)
에 관한 일을 “끝내 거행하지 않았다”고 보고하여 결국 파직되었는데, 이 일은 담당 아전인 오학(吳鶴)이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으로 박 현감을 파직시키려고 일부러 일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은 더욱 분통이 터지고 아전 오학의 행위가 가증스럽게 생각됐다.
7일 날에는 예안을 떠나는 박 현감을 전송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현감을 찾아갔다. 그런데 막상 현사(縣舍)에 이르러 현감을 만나보니 매우 분주하였다. 게다가 현감이 이날 바로 고향으로 향하려고 하다가 혹 도중에
용수사(龍壽寺)
에서 자게 되면 중들과 아랫것들의 폐해를 입을까 걱정하고 있어서 도산서원 원장인
제천 할아버지
금응훈과 여러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 박 현감을 도산서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이에 현감이 허락하여 다시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김광계는
제천 할아버지
, 김평·김령 재종숙, 대이(김광하) 형을 모시고 도산서원에 당도하여 박 현감을 전송하기 위한 준비를 하였는데 많은 유생들이 이미 와 있었다. 조금 있다가 현감 박선장이 당도하였다.
다음 날 이른 새벽에 박 현감은 행차를 재촉하여 떠났다. 김령 재종숙은 아쉬운 마음에 이별시 3편을 써서 주었고, 이별주도 여러 잔을 마신 뒤 현감이 일어나 길을 나서니 모두가 서운해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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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매원일기(梅園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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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광계(金光繼)
주제 : 파직, 이별
시기 : 1609-04-05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광계, 금응훈, 박선장, 안담수, 김평, 오학, 김령, 김광하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금응훈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령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광계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박선장
◆ 군원을 보충하는 군사제도, 세초(歲抄)
조선시대에는 군인 중에 사망·도망·질병자를 조사하여 6월과 12월에 군병 또는 군보(軍保)의 결원을 보충하던 제도인 세초(歲抄)가 있었다. 세초를 기록한 문서를 세초단자(歲抄單子)라고 했고, 이를 임금에게 아뢰는 일은 세초계문(歲抄啓聞)이라고 했다. 세초 때에는 일정한 법률에 의거하여 충정하도록 하였으며, 법령을 위반하여 충군하였을 경우에는 제위율(制違律)로 수령과 색리(色吏)를 다스렸다. 또한, 수륙의 모든 군사를 일정기간에 전혀 보충하지 아니한 수령은 파직으로 다스렸고, 세초를 그 기한에 마치지 못한 수령은 허물을 들어 문책하여 강등한다는 규정이 있을 정도로 세초는 수령에게 매우 중대한 업무이고 임무였다. 1609년 예안현감 박선장이 세초의 일로 파직된 다음 해인 1610년(광해 2)에는 연안 부사(延安府使) 윤수민(尹壽民)이 파직되기도 했다. 광해군일기 36권, 광해 2년 12월 26일 정유 11번째 기사를 보면, 〈연안 부사 윤수민은 윤양(尹讓)의 아비인데, 위인이 용렬하고 굼떠 하는 일도 없이 직책만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해서(海西) 20군 가운데에서 정사가 가장 형편없었다. 그러나 아들이 높은 자리에 있는 까닭에 누구 하나 손을 대지 못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병사(兵使) 박엽(朴燁)이 계문하기를, "중대한 일인 세초(歲抄)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간사한 아전의 손에 일임하여 저들이 조종하는 대로 맡겨 두었습니다. 그래서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자일 경우에는 사대부도 분간하지 않고 군역(軍役)에 충당함으로써 온 경내를 어지럽히고, 그것도 부족하여 이웃 고을에까지 영향을 주어 곳곳마다 정소(呈訴)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조사해 보기 위하여 담당 아전을 붙잡아 들이려 하자 부사가 시종 비호하며 잡아 보내지 않으니, 일의 체모로 헤아려 보면 극히 매몰스러운 행동입니다. 주장을 능멸한 죄를 징계하지 않아서는 안 되겠으니 조정에서 다스리소서." 하니 왕이 그를 파직하라고 명하였다.〉라고 쓰여 있다.
◆ 원문 정보
五日 朝拜堤川大父, 多飮卯酒醉來. 聞土主朴公見罷, 可惜. 食後董川防役, 邀監官金楗, 檢校田畓文書. 生員叔侍·汝熙·德優兄暫過. 七日 陪堤川大父·生員·奈城叔侍·大而兄, 往餞朴城主善長于書院. 孝伯·子敬已來, 琴奉事憬丈及金景純·李先吉·蔡元亦來. 安東儒士南振維, 自安東黌舍來. 以裵都事詆毁寒暄·一蠧先生之故, 求見裵丈抵堤川大父書, 而不得見, 但見裵丈與鄭景任書. 八日 琴胤古兄弟亦來. 城主食前起去, 南生亦去. 午後余與奈城叔侍·大而兄·景純·汝吉·子敬同來. 是日風氣甚寒, 擬飮鄕校之酒, 汝吉欲直往, 乃携來大而·子敬. 中途改路, 到[校]則有司及禹成憲在. 乃命酒開話于養浩樓, 須臾告酒盡. 命撤盃盤將出門, 余曰下人之言不可信聽, 當使曹司搜括酒房. 諸人皆曰然. 使禹成憲入房搜之, 果多有之矣. 余等欲上馬, 有司强請更飮, 坐門外酌數巡而散. 子敬則追來, 而大而兄則終不來, 此人之難信也如此.
◆ 원문 번역
기유년(1609, 광해1) 4월 5일 아침에 제천 할아버지를 뵙고 아침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취한 채로 돌아왔다. 예안 현감 박공이 파직되었다고 하니 애석하다. 밥을 먹은 뒤에 천방 쌓는 일을 감독하면서 감관監官 김건金楗을 불러 향교의 토지 문서를 점검하였다. 생원 재종숙, 여희·덕우 형이 잠시 들렀다. 4월 7일 제천 할아버지, 생원·내성 재종숙, 대이 형을 모시고 서원에 가서 현감 박선장朴善長을 전송하였다. 효백孝伯과 자경子敬이 이미 와 있었고, 봉사 금경琴憬 어른 및 김경순金景純·이선길李先吉·채원蔡元도 왔다. 안동 유사儒士 남진유南振維가 안동 향교에서 왔다. 배 도사가 한훤과 일두 선생을 헐뜯었기 때문에 배 도사 어른이 제천 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구하여 보려고 왔으나 볼 수 없었고, 단지 배 도사 어른이 정경임에게 보낸 편지만 보았다. 4월 8일 금윤고琴胤古 형제가 왔다. 현감은 아침 식전에 일어나서 가고 남진유도 갔다. 오후에 내성 재종숙, 대이 형, 경순, 여길, 자경과 함께 돌아왔다. 이날 날씨가 매우 춥기에 향교의 술을 마실 생각이었는데, 여길은 바로 가겠다고 하여 내가 대이 형과 자경을 이끌고 중도에 길을 바꾸어 향교에 당도하니, 유사 및 우성헌禹成憲이 있었다. 이에 술을 가져오게 하여 양호루養浩樓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잠깐사이에 술이 바닥이 났다고 하였다. 술자리를 거두라고 하고 문을 나서다가 내가 “하인의 말은 믿을 수 없으니 조사曹司가 주방을 뒤져 봐야할 것이다.”라고 하니, 모두 “그렇다.”라고 하여 우성헌을 시켜 주방에 들어가서 뒤지게 하였더니 과연 술이 많이 있었다. 우리들이 말을 타고 길을 나서려고 하였으나 유사가 억지로 더 마시기를 청하여 문밖에 앉아서 술잔을 몇 순배 더 나누고 흩어졌다. 자경은 뒤따라 왔으나 대이 형은 끝내 오지 않았으니, 이 사람을 믿을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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