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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명에게 시집간 누이가 당홍역에 걸려서 죽다
1614년 9월 1일, 김광계는 인동에서 열린 과거 시험에 낙방하고 안음 형과 같이 예안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일직(一直)
에 사는
류실 누이
집에 들러 자고 가기로 했다.
누이가 차려준 저녁상을 받아 맛있게 먹은 후에 과거 시험장에서 벌어진 이야기며, 오산서원을 구경한 이야기, 그리고 천생산성에 올라 사방을 내려다 본 이야기 등등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몇 년 전 갑자기 매형이 돌아가신 후로 적적하고 무료하게 지내는 누이에게 세상 이야기를 전해 주고 싶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하인이 달려 들어와
영해(寧海) 누이
의 부고를 전해 주었다.
김광계는 너무 놀라서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종을 불러 물어보니 지난달 27일에 당홍역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다. 김광계는
류실 누이
와 생질녀를 붙들고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김광계는 어린 누이가 가여워서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태어나 얼마 안 되어 왜란 와중에 두 부모를 모두 잃고 부모님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 채 자란 누이였다. 그래도 심성이 착하고 유순해 손윗누이들과 오빠들의 귀여움을 많이 받다가 이시명(李時明)에게 시집을 갔는데, 시집간 지 7년 만에 어린 자식을 둘을 남겨 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 그 눈을 어찌 감았을까. 누이 얼굴이 떠올라 김광계는
오장(五臟)
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잠을 잘 수 없었다.
눈도 붙이지 못했지만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김광계는 깊은 달밤에
류실 누이
의 집에서 나와 새벽에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니 아내도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김광계는 아내를 보자마자 또다시 통곡하였다. 아내는 이미 영해 누이의 부고를 들었고, 마을에도 전염병이 돌아 집에 계시는 할머니와 아픈 아우를 침락서당으로 피접을 보내 놓았다고 했다. 김광계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부터 노산 재종조부가 와서 조문을 왔다. 다음날 아침에는
판사 재종숙
이 와서 조문하고, 밥을 먹은 뒤에 여희·덕회 형, 그리고 김참 아재가 와서 조문하였다.
9월 4일 아침에
성복(成服)
을 하였다. 노산 재종조부와 몇몇 사람들이 보러 왔다. 다음날 둘째 아우
이도(以道)
가 부고를 듣고
예천(醴泉)
에서 왔는데, 이들은 당장 영해에 갈 수가 없었다. 마을에도 전염병이 돌아 모두 조심스러웠고, 피접을 나가 있는 아픈 아우와 할머니에게 큰일이 날까봐 마을을 떠날 수도 없었다. 제천 할아버지도 이질에 걸려 모두 염려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김광계도 몸이 매우 아팠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문병을 다니거나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24일에도
영해(寧海)
로 길을 나서려고 하였으나 병이 낫질 않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나마 26일이 되어 피접 나가셨던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김광계는 이제야 할머니께
영해(寧海) 누이
의 부고를 말씀드렸다.
영해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은 10월 15일이었다. 다음날 저녁이 돼서야 누이의 집에 당도하였는데, 조문객은 이미 아무도 없고, 빈소에 들어가니 붉은 만장과 혼백상자만 놓인 채 촛불이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다. 쓸쓸한 모습에 김광계는 설움이 더욱 북받쳐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매부인
이회숙(李晦叔)
과도 서로 부여잡고 통곡을 하였다. 어린 남매를 보니 슬픔이 한이 없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매원일기(梅園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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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광계(金光繼)
주제 : 영해 누이의 죽음
시기 : 1614-09-01 ~ 1614-10-16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광계, 김광보, 이시명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75호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이시명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광보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광계
◆ 1613년부터 1614년까지 유행한 당홍역
이 이야기는 당홍역(唐紅疫)의 유행으로, 사람들이 마을 출입을 조심하거나 피접을 나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홍역 또는 당온,당독역(唐毒疫)이라 불린 역질(疫疾)은 현재의 성홍열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당독역 내지 당홍역의 유행은 ≪광해군일기≫와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 芝峰類說≫에도 잘 나타난다. 특히 이 이야기의 배경시기인 1613년(광해군 5)부터 1614년 사이에는 당홍역이 크게 유행하여 내의원에서 ≪벽역신방 辟疫神方≫을 만들었으며, ≪지봉유설≫에는 옥온(獄瘟)·당홍역이라는 병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과거의 각종 방서(方書)에는 당독역이라는 병명이 없고 당독역을 치료하는 방법도 없어서 매우 무서운 역질로 생각하였으며, 1613년 봄부터 여름에 크게 유행하였을 때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1613년은 화운(火運)에 속하기 때문에 그 병독(病毒)이 혹독하고 다른 역질과 달라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여 당독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때 당(唐)이란 악성말라리아 같은 당학(唐瘧)이나, 매독 같은 당창(唐瘡)이라는 뜻에서 당이라는 말을 써서 이 역질이 무서운 악병임을 지칭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당독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행이 거듭됨에 따라 면역력이 획득되고 1931∼1932년경에 크게 유행했으나 광복 이후 중증 성홍열 환자는 줄어들어 점차 그 위험도가 떨어지고 있다. 단지 비정형적(非定型的)인 경미한 성홍열 환자가 산견(散見)될 뿐 중증으로 사망하는 환자는 거의 없어지고 이제는 1종전염병에서 2종전염병으로 바뀌었으며, 이와 같은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리라 짐작된다. 유행 시기를 보면 대개 11월부터 환자가 늘어나기 시작해서 이듬해 6월에 절정을 보이고 8∼10월 사이에 환자 수는 적어진다. ≪벽역신방≫에서도 연운(年運)이나 기상과의 관계를 중시하였다. 1940년대까지는 치명률(致命率)이 높아서 20∼30%에 이르렀으나 이제는 이 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 원문 정보
一日 與安陰兄同行, 到一直姊氏家. 夕食後猝聞寧海妹訃音. 驚號慟哭. 五內若割. 良久乃招奴問之, 則前月二十七日, 以唐疫暴逝云. 與姊氏及甥女, 相持號哭, 不能寐. 庚戌. 二日 曉發還到家, 與妻相對痛哭. 老親及病弟以閭閻不安, 出避于書堂矣. 蘆山來吊. 三日 朝判事叔侍來吊, 食後汝熙·德會兄·墋叔來吊. 四日 朝成服. 蘆山來見. 食後鄭得夫·金德玉來見. 午後歷拜堤川大父, 往雲巖. 擬出宿於外, 而來拜親庭也. 五日 以道自醴泉聞訃而來. 到寺同宿. 六日 自雲巖來覲于書堂, 見病弟. 夕還寺. 二十四日 欲發寧海之行, 而病未能也. 往堤宅, 拜生員·正字叔侍, 見權赫. 正字叔侍則歷入吾家作話, 至夜久乃散. 二十七日 親前始告安德·寧海兩處訃音. 午後安陰兄來見, 權時正亦來, 留宿打話. 夜雨. 十五日 發寧海之行. 宿於眞寶縣內也. 十六日 朝發, 遇金深源及以方于塗中. 聞東堂榜. 踰泣嶺, 夕至妹家. 入殯廳, 但見丹旌帛箱, 燈燭明滅而已. 失聲長呼, 五內若割. 又與晦叔相持慟哭, 已而入拜宜寧尊丈. 退與晦叔同宿.
◆ 원문 번역
갑인년(1614, 광해군 6) 9월 1일 안음 형과 동행하여 일직一直 류실 누이 집에 당도하였다. 저녁을 먹은 뒤에 갑자기 영해寧海 누이의 부고를 들었다. 놀라서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오장五臟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한참 뒤에 종을 불러서 물어보니 지난 달 27일에 당역唐疫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떴다고 하였다. 류실 누이 및 생질녀와 함께 서로 붙들고 목을 놓아 울었더니 잠을 잘 수 없었다. 경술 일이다. 9월 2일 새벽에 집에 당도하여 아내와 서로 마주보고 통곡하였다. 할머니 및 아픈 아우는 마을이 불안하여 서당으로 피접을 나가고 없었다. 노산 재종조부가 와서 조문하였다. 9월 3일 아침에 판사 재종숙이 와서 조문하고, 밥을 먹은 뒤에 여희·덕회 형 및 참墋 아재가 와서 조문하였다. 9월 4일 아침에 성복成服을 하였다. 노산 재종조부가 보러왔다. 밥을 먹은 뒤에 정득부鄭得夫와 김덕옥金德玉이 보러왔다. 오후에 지나는 길에 제천 할아버지를 뵙고 운암사雲巖寺에 갔다. 밖에 나가서 자고 돌아와 할머니를 뵙고자 해서이다. 9월 5일 이도가 예천醴泉에서 부고를 듣고 왔다. 절에 당도하여 함께 잤다. 9월 6일 운암사에서 서당에 와서 할머니를 뵙고 아픈 아우를 만나보았다. 저녁에 절에 돌아왔다. 9월 24일 영해寧海로 길을 나서려고 하였으나 병으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제천 댁에 가서 생원·정자 재종숙을 뵙고 권혁權赫을 만났다. 정자 재종숙이 지나는 길에 우리 집에 들러서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 깊어서야 흩어졌다. 9월 27일 비로소 할머니께 안덕安德과 영해寧海의 부고를 말씀드렸다. 오후에 안음 형이 보러오고 권시정도 와서 유숙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에 비가 내렸다. 10월 15일 영해寧海로 길을 나섰다. 진보현眞寶縣에서 잤다. 10월 16일 아침에 길을 나서서 길에서 김심원金深源 및 김이방金以方을 만났다. 동당시東堂試의 방목榜目 소식을 들었다. 읍령泣嶺을 넘어서 저녁에 누이의 집에 당도하였다. 빈소에 들어가니 붉은 만장과 혼백상자만 보이고 촛불이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다. 목을 놓아 통곡하니 오장五臟을 도려내는 듯하였다. 또 회숙晦叔과 서로 부여잡고 통곡을 하고 조금 있다가 안으로 들어가서 의령宜寧 어른을 뵈었다. 물러나 나와서 회숙과 함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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