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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향시에 가서 수많은 벗들과 만나 어울리다
1615년 9월 21일, 예천에서 열리는 향시를 보기 위해 김참 아재와 함께 길을 떠난 김광계는 어제 용궁에 당도하여 주막을 찾아 무이촌(茂李村)으로 가려다가 길에서 아우 이도(以道, 김광보)를 만났다. 김광계와 이도는 용궁 읍내로 오고, 김참 아재는 출출하다며 주막을 찾아 무이촌으로 갔다.

아침을 먹은 후에 김광계와 광보는 김참이 있는 무이촌으로 가서 김령 재종숙의 셋째 매형인 이찬(李燦)의 형제를 만나보고, 들어가서 족숙모를 뵈었다. 오랜만에 뵈었더니 식구들이 모두 매우 반가워했고, 족숙모는 급히 상을 차려 내주며 연신 많이 먹으라고 당부하셨다. 이찬 형제들과 김광계 형제는 예안에 사는 친족들의 안부도 전하고, 학문에 대한 이야기도 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어느 덧 저녁이 되어 인사를 올리고 용궁으로 돌아 왔다.

용궁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밤에 정시형(鄭時亨)·김근(金謹)·김시진(金是振) 등이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외에도 만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다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다음날에도 이웃에 거처를 정하고 있던 김여옥(金如玉)과 김구(金愳)가 보러 왔는데, 그 외에도 너무 많은 친구들이 찾아와서 쉴 틈도 없었다. 다음날 김광계는 거처에 머물지 않고 아예 밖으로 나와 김덕무(金德茂) 형제를 만나러 다녀왔다.

향시는 24일과 26일이었다. 시험을 마친 김광계는 아우인 광보와 함께 27일에 다시 무이촌에 가서 신경탁(申景卓)·류상지(柳尙之)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또 이찬(李燦) 형제를 만나러 갔다. 한참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이번엔 포내리(浦內里)로 갔다. 포내리에서도 여러 일족을 찾아가 만나보고, 전성지(全性之) 형을 만나 보았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김광계와 광보가 무이촌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전성지 형이 뒤따라 왔다. 처소에 도착하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전우(全俁) 형제 네 사람도 찾아오고, 밤에는 김휴(金烋)도 찾아와서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자게 되었다.

다음 날인 9월 28일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비에 막혀서 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머무르며 이찬의 형제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류진(柳袗)이 서울에서 이찬의 형인 이백명(李伯明)의 집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김광계는 아우인 이도(以道)와 함께 이백명의 집으로 급히 갔다. 그런데 류진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김광계는 류진과 많은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덕유(金德裕) 형제 및 여러 사람이 동행하였는데 사천(沙川)에 이르러 헤어졌다. 김광계와 광보는 종 백송(白松) 집에 들어가 하루를 묵었다. 해가 저물 때 내리기 시작한 비가 밤새도록 그치지를 않았다.

9월 30일, 새벽에 비를 맞으며 길을 떠났다. 금계(金溪)에 당도하여 다시 김시추를 찾아가니 그는 경광서당(鏡光書堂)에 가 있다고 하여 서당으로 찾아가 만나보았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만류하는 바람에 머물러 잤다. 김시추의 아우 김시강(金是杠)과 김시탈(金是梲)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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