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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도 『동소만록』은 썩지 않고 전해질 책이다
1926년 3월 8일. 남붕은 이틀 전에 우현(禹玄) 족조를 찾아갔다가 빌려 온 『
동소만록(桐巢漫錄)
』을 읽고 있었다. 남붕은 『동소만록』을 쓴
남하정(南夏正)
이 조야의 고사를 수집하여 사건마다 평론을 붙여 마치 옛날의 『사기史』의 사례와 같이 글을 쓴 것에 관해 감탄하였다. 또한 남인(南人)과 노론(老論)이 벌인 당론의 시비에 대하여 더욱 분명하게 분석하여 놓았으니, 실로 남인의 보배이고 서인에게는 눈엣가시임이 분명했다고 생각했다.
남붕은 『동소만록』을 눈에서 떼지 못할 정도로 푹 빠져있었다. 누가 찾아오기라도 하면 함께 보거나, 책 속의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족제 호의(浩義)가 왔을 때도 함께 보았고, 백우길이 찾아왔을 때도 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늘 빠짐없이 밤마다 경문을 외우는 일도 그만두고 『동소만록』을 보았다.
11일에는 8대조 통덕랑공(通德郞公)의 묘소, 부곡(釜谷)의 조부 부군의 묘소,
도동(道洞)
의 부모님의 묘소를 참배하고, 뒷산의 여러 묘소와 위 봉우리 뒤 증조부 묘소까지 찾아 가 참배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그 행낭 속에도 『동소만록』 1책을 챙겨 넣었다. 2~3일간 오고 가는 짬짬이 아직 다 보지 못한 것을 보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길을 나선 남붕은 긴 고개에 이르러 아들의 묘소를 둘러본 후 8대조 통덕랑공(通德郞公)의 묘소를 참배하고, 부곡(釜谷)으로 가서 조부 부군의 묘소를 참배하고, 정오에
도동(道洞)
에 도착하여 부모님의 묘소를 참배한 후 그날 밤에 재사에서 잠을 잤다. 잠들기 전까지 『동소만록』을 보다가 자려고 하였는데, 금계(金溪) 종숙이 찾아와서 또 함께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 아침에 뒷산의 여러 묘소와 증조부 묘소를 참배하고 재사에 머무르며 드디어『동소만록』을 다 보았다. 그리고 오후에는 금계 족숙의 집에서 머무르며 다시 『동소만록』을 보았다.
남붕은 몇 년이 지난 후 『동소만록』을 또다시 보았는데, 다시 보아도 이 책에서 기록한 국가와 조정의 고사나 의론은 정밀하고 분명하며 문장이 간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책이야말로 참으로 썩지 않고 오래도록 전해질 글이라고 생각되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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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해주일록(海洲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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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남붕(南鵬)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926-03-06 ~ 1930-11-02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영덕군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남붕, 남하정, 백우길
참고자료링크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남하정
◆ 남하정이 지은 붕당에 관한 정치서, 『동소만록(桐巢漫錄)』
『동소만록(桐巢漫錄)』은 조선시대 후기 문신인 동소(桐巢) 남하정(南夏正, 1678∼1751)이 붕당의 전말에 관해 남인의 관점에서 쓴 당론서(黨論書)이다.
남하정의 자는 시백(時伯), 호는 동소(桐巢). 의령(宜寧)이고, 충청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균관진사 남수교(南壽喬)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로 부사(府使) 강석로(姜碩老)의 딸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으나 학문에 전념하여 경사(經史)와 제자백가에 통달하였다. 특히 글을 잘 지어 문명을 크게 떨쳤다. 그가 지은 「출사책(出師策)」은 명문장으로 일컬어져 사람들은 그를 흔히 이식(李植)에 비교하였다.
1714년(숙종 40)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하지 않고, 진위(振威)의 동천(桐泉)에서 평생 처사적 생활을 하며 후진 양성으로 일생을 보냈다.
『동소만록』은 1379년(우왕 5) 이성계의 일화(逸話)로부터 영조 전반기인 1740년대까지의 이야기를 시대순으로 적고 있는데, 권1에서는 처음에 신덕왕후 강씨의 상휘호(上徽號) 복릉침문제(復陵寢問題), 정종의 추상묘호문제(追上廟號問題)와 성종의 폐비윤씨문제 등을 적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조선 전기의 문제지만 인조반정 이후 집권 사림이 명분으로 들고나와 사단이 된 것이었다. 권2에서는 인조반정과 대청척화(對淸斥和)·주화(主和)의 문제, 북벌문제 및 복제문제 등이 언급되고 있다. 권3에서는 장희빈사건 이후 기사(己巳)·갑술(甲戌)의 정국에 대한, 주로 남인들의 주장을 수록하면서 장희빈 쪽에 섰던 남인 입장의 불가피성을 변호하고 있고 경종·영조대 이후 변동된 정국에서의 주요 남인의 동향을 기술하였다. 부록에는 중요 인물에 얽힌 이야기와 그 인물에 대한 평을 적고 있다.
형식은 숙종대 전반 이전까지의 기사는 주로 타인의 저술에서 인용해 그 출전을 부기(附記)하는 방식을 취했으나, 그 뒷부분에서 주로 남하정 자신의 견문에 의한 직접적 저술을 하였다. 아울러, 기사의 말미에 전거(典據)를 밝힘으로써 붕당에 관한 책으로서의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동소만록』이 편찬된 시기는 서인과 남인의 대립이 격화되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된 17세기 후반 이후로 당시 명분상 수세에 몰린 남인(南人)에게 자신을 유지해갈 수 있는 명분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시에 현실적으로도 현저히 와해하여가고 있는 남인 계열의 실상을 보여줌으로써 그 결속을 강화하자는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동소만록』은 붕당론에 관한 한 통사적 체계를 갖춘 최초의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후 박사정(朴思正, 1683~1739)에 의하여 1779년(정조 3)경에 개편되었다.
◆ 원문 번역
1926년 3월 6일 병자 날이 맑았다. 새벽에 이전과 같이 하였다. 마음속으로 잠과 명만 외웠고 『춘추』 경문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고조부 제사에 참례하였다. 잠시 눈을 붙였다. 아침 뒤에 종제 양숙養叔과 돌아서 번포樊浦에 이르러 박도산 형의 성복成服에 참례하고 오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님의 기체후가 무고하시고 다른 가족들도 전과 다름없어 다행이었다. 오후에 희가姬可 재종숙이 와서 위로하기를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끊은 일을 그대가 지금 당했구려.” 하셨다. 서로 한참동안 한탄하였다. 우현禹玄 씨에게『동소만록桐巢漫錄』을 빌려 와서 희가 아저씨와 함께 저녁때까지 보았다. 밤에 범일範一 씨가 와서 박도산의 죽음을 위로하면서 밤이 깊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에 비가 조금 내렸다. 8일 무인 날이 맑았다. 새벽에 이전과 같이 하였다. 『춘추』 경문만 외웠다. 정양 옹에게 보낼 답서를 다 지었다. 잠시 눈을 붙였다. 아침에 문안드리고 사당을 참배하였다. 정양 옹에게 보낼 답서를 정서하여 그의 넷째 아들이 돌아가는 인편에 부쳤다. 지곡枝谷의 인척 아우 신순가申順可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다. 아이들 2명에게 수업하였다. 초고 책에 문고文稿를 베껴 넣어 참고할 자료로 두었다. 오후에 『동소만록』을 보았다. 대개 그가 조야의 고사를 수집하여 사건마다 평론을 붙여 마치 옛날 『사기史』의 사례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남인南人과 노론老論의 당론의 시비에 대하여 더욱 분명하게 분석하였으니, 실로 남인의 보배이고 서인의 눈엣가시였다. 권주경權周卿이 찾아왔다. 족제 호의浩義가 와서 『동소만록』을 보았다. 밤에 외우는 일을 그만두고 『동소만록』을 조금 보았다. 1926년 3월 11일 신사 날이 맑았다. 새벽에 이전과 같이 하였다. 『춘추』 경문을 외우고 그쳤다. 잠시 눈을 붙였다. 아침에 문안드리고 사당을 참배하였다. 아이들 2명에게 수업하였다. 아침 뒤에 남협南峽으로 길을 떠났다. 행낭 속에 『동소만록』 1책을 넣었으니 아직 다 보지 못한 것을 여관에서 묵을 때 보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긴 고개에 이르러 아들의 묘소를 둘러보았다. 고갯마루에 이르러 8대조 통덕랑공通德郞公의 묘소를 참배하고, 부곡釜谷에 이르러 조부 부군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칠성七星에 이르러 순화舜華 족친을 찾아보았다. 술과 떡을 대접하였는데 제사를 지낸 음식이라고 하였다. 정오에 도동道洞에 도착하여 부모님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박학朴學의 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재사齋舍에서 묵으며 『동소만록』를 보았다. 금계金溪 종숙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12일 임오 날이 맑았다. 새벽에 이전과 같이 하였다. 잠과 명만 외웠다. 잠시 눈을 붙였다. 아침에 뒷산의 여러 묘소를 참배하고 이어서 위 봉우리 뒤 증조부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왔다. 아침 뒤에 석천石川 족숙이 시내로 가는 편에 절강浙江 하영봉夏靈峯 부자에게 쓴 편지와 잡저 몇 편을 부쳤는데 우편료가 19전이었다. 이어서 재사에 머무르며 『동소만록』을 다 보았다. 오후에 금계 족숙의 집에 가서 묵었다. 비가 조금 내렸다. 다시 『동소만록』을 보았다. 또 종숙과 심학心學을 논하였다. 대개 종숙이 이제 곧 서구 학교에 들어가기 때문에 심지心志 공부를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30년 11월 1일 갑진. 비 옴. 새벽에 일어나 치성을 드리고 잠 외우기를 전과 같이 하였다. 『대학혹문』을 ‘대저대학일편지지大抵大學一篇之旨’부터 5장 끝까지 외우고, 축시 말각에 6장 이하부터 마지막 장까지 외웠다. 아침에 어머님께 문안드리고 사당에 배알하였다. 『대학』을 편수부터 전10장까지 외웠다. 아침을 먹은 뒤에 「주계酒戒」를 다 지었는데, 초를 잡은 지는 오래되었으나 누차 개정하다 이때에 이르러 초본草本을 완성한 것이다. 『동소만록桐巢漫録』을 보았는데, 그 책에 기록한 것은 모두 국조國朝의 고사이나 의론이 정밀하고 분명하며 문장이 간결하여 참으로 썩지 않고 전해질 말이다. 밤에 『논어』를 ‘세가世家’부터 「학이」 편까지 다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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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소만록(桐巢漫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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