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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를 넘겨 줄 의향이 없는 선조
1596년 9월 1일, 선조가 광해군에게 정치를 대신하게 하는 섭정을 맡기려고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선조가 세자(世子)인 광해군에게 전위를 했는데, 세자는 이를 극구 사양했다는 것이다. 당시 선조는 국새(國璽)를 봉하여 영의정인
류성룡(柳成龍)
에게 맡겨두고, 오랫동안 국가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선조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정경운(鄭慶雲)은 전위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평가를 하였다.
선조의 전위하는 태도가 정성스럽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위한다고 하는 말에도 흡족한 기운이 없는 까닭에 국시(國是)가 흉흉하고 임금의 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다고 한 것이다. 국시는 국민 전체가 지지하는 국가의 이념이나 국정의 근본 방침이다. 즉 국가 내부가 양위 사건으로 매우 어지러웠음을 말해준다.
이어서 정경운(鄭慶雲)은 선조가 정전(正殿)에 세자를 불러 와 국새를 가지고 간곡하게 당부했다면 광해군이 사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태도를 보인 것은 선조가 실제로 왕위를 넘겨줄 뜻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으로 봤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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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고대일록(孤臺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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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경운(鄭慶雲)
주제 : 권력 유지
시기 : 1596-09-01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서울특별시
일기분류 : 전쟁일기
인물 : 선조, 광해군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 선조의 여러 차례 양위 소동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선조는 급박한 상황에서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정부를 둘로 나누는 분조를 단행했다. 하지만 분조 활동으로 선조의 통치권 일부를 대신 행사하게 된 광해군을 선조는 견제하기 시작했다. 피난 도중에 백성들로부터 직접 무시와 모욕을 당했고, 모든 책임이 왕에게 있으니 깊이 반성하고 솔선수범을 보이라는 대간의 질책도 감수해야 했으며, 유생들로부터는 양위를 하고 물러나라는 상소까지 받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선조는 왕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는데, 그것이 양위 소동으로 표현되었다. 양위 소동을 통해 선조는 자신에 대한 신하들의 충성심을 수시로 점검하면서 권력 누수를 막고자 했던 것이다. 선조는 전쟁 기간에 19차례에 걸쳐 광해군에게 섭정을 맡기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양위론은 겉으로는 선조가 자기의 책임과 잘못을 인정하고 왕위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표현이었지만, 속내는 조정 신료들에게 국왕과 세자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협박이었다. 신하들의 입장에서는 바로 앞에서 양위를 환영할 수는 없었는데, 선조는 이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고 했던 것이다. 즉, 선조는 처음부터 양위를 할 마음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병신(丙申, 1596) 9월[秋九月] 갑오(甲午) 초하루 주상(主上)께서 세자(世子)께 전위(傳位)하셨는데, 세자께서 극구 사양하셨다고 한다. 상(上)께서는 국새(國璽)를 봉하여 영상(領相)인 류성룡(柳成龍)에게 맡겨두고, 오랫동안 정사(政事)를 처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상(上)께서 전위(傳位)하신 일이 옳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다만 전위(傳位)하심이 정성스럽지 못하고 말씀이 흡족하지 못함이 있다. 그러므로 국시(國是)가 흉흉하고 임금의 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가령 주상께서 정전(正殿)에 임하시어, 세자를 불러 정하(庭下)에 서게 하시고 국보를 가지고서 간곡하게 당부하셨다면, 세자께서 무슨 말로 사양하셨겠는가? 재야(在野)의 가난한 선비라고 하여, 어찌 주제넘은 근심이 없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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