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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죽음
1598년 11월 19일, 전라좌수사 겸 통제사 이순신이 사망했다. 가토 기요마사가 제독 유정에게 두 번이나 강화를 청하면서 병력을 해산하고 돌아가겠다는 요청을 했다. 유정이 거짓으로 화친을 허락하고 이순신에게 이를 몰래 알렸다. 배를 정비하여 반쯤 건넜을 때 공격하였는데, 왜적이 배에 오르기는 했으나 다 타지 못했을 때 제독 유정과 이순신이 공격하여 왜선 수백 척을 부딪쳐서 파괴하였다. 왜적들이 건널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진영으로 다시 되돌아가 사천의 적장 심안도에게 힘을 합쳐 수전을 할 것이니, 즉시 달려오라고 하였다.
심안도가 연 배를 타고 앞으로 나오니, 이순신이 좌우로 협격하여 큰 전쟁이 바다 가운데서 벌어졌다. 이순신이 병사들의 앞에 서서 종일 혈전을 펼쳤는데 탄환을 맞고 머리에 맞아 전사했다. 아들 아무개가 이순신의 죽음을 보고 눈물을 감추고 소리를 삼키며 울음이 나오도록 억누르며 말하기를, “내 마땅히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것이며, 이 도적들과 함께 살지 않을 것을 맹세하노라.”라고 하고는 깃발을 올리고 북을 치며, 적을 모두 죽일 때까지 싸워 물러서지 않았다. 앞뒤로 부순 적의 배가 거의 400여 척에 이르렀고 도독 진린이 지원해서 왜적을 대파하고 죽여 머리를 벤 것이 많았다. 가토 기요마사는 진린에게 은을 바치고 지름길로 도망쳤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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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고대일록(孤臺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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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경운(鄭慶雲)
주제 : 조선군의 승리
시기 : 1598-11-19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전라도
일기분류 : 전쟁일기
인물 : 이순신, 심안도, 가토 기요마사, 진린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 이순신의 죽음
1598년 8월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일본은 그 사실을 비밀에 붙인 채, 8월 28일과 9월 5일 두 차례에 걸쳐 철군명령을 내렸다. 이때 왜교성에 머물면서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져 있던 고니시 군은 사천 남족 창선도에 집결하여 구원을 요청하였다. 일본군의 이러한 움직임을 간파한 이순신은 우선적으로 그들의 구원부대를 격멸하기 위해 노량 앞바다에서 일본군 구원부대가 지나갈 길목을 차단하였다. 명의 진린 군은 죽도 부근에 진을 치고 이순신 수군은 노량 남쪽 남해도의 관음포에서 진을 친 다음, 일본군 함대를 기다렸다.
11월 18일 밤, 고니시 군의 구원요청을 받은 시마즈 군과 소오 군은 5백여 척의 함대와 병력 만 이천여 명을 편성하여 시마즈의 지휘 아래 광양만으로 출동하였다. 11월 19일 새벽 조선과 명 연합합대는 노량 앞바다에 집결하여 일본군 함대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이에 이순신 함대가 각종 화포의 사격을 집중하여 일본군함을 닥치는 대로 격침시켜 기선을 잡았다.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군의 전함은 대부분의 선수를 돌려 관음포 방면으로 퇴각하였으며, 일부는 배를 버리고 남해도 서북해안으로 상륙하여 달아나 버렸다.
이 전투를 지휘하던 통제사 이순신은 전투가 한창 치열하게 전개되던 결정적인 순간에 일본군의 유탄에 맞아 최후를 마쳤다. 조선 수군은 “전투가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그 사실을 진중에 알리지 않고 끝까지 전투를 계속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시마즈 군은 이 노량해전에서 이백여 척의 대소 전함과 오백여 명의 병력을 상실하고 창선도로 패주하였다. 한편, 왜교성의 고니시 군은 조선과 명 연합 함대가 노량에서 적진을 벌이고 있는 틈을 타서 11월 20일 새벽에 왜교성을 빠져나가 거제도로 달아나 버렸다. 일본군은 고니시 군이 부산에 합류하자, 11월 24일부터 각 부대 단위로 철군을 개시하였다. 이들 일본군은 쓰시마와 이키를 거쳐 12월 중에 하카다에 상륙하여 철군을 완료하였다. 그리하여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전후 7년 동안 전개된 임진왜란은 종결되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무술(戊戌, 1598) 11월 19일 경자(庚子) 적장(賊將) 평행장(平行長)이 도망쳤다. 숭정대부(崇政大夫) 전라 좌수사 겸 통제사(全羅左水使兼統制使) 이순신(李舜臣)이 죽었다. 먼저 행장(行長)이 제독(提督) 유정(劉綎)에게 두 번이나 강화를 청하면서 병력을 해산하고 돌아가겠다고 청했다. 유정이 거짓으로 화친을 허락하고 통제사에게 이를 몰래 알렸다. 선척(船隻)을 정비하여 반쯤 건넜을 때, 이를 공격하였다. 결국 왜적이 배에 오르되 아직 다 타지 못했을 때, 제독이 방포하고, 순신이 그 소리에 응하여 나아가 왜선 수백 척을 부딪쳐서 파괴하였다. 왜적들이 건널 수 없음을 알고, 진영으로 다시 되돌아가 사천(泗川)의 적장(賊將) 심안도(沈安道)에게 힘을 합쳐 수전(水戰)을 할 것이니, 모름지기 즉시 달려오라고 통지하였다. 안도(安道)가 과연 배를 타고 앞으로 나오니, 통제사가 좌우로 협격하여 큰 전쟁이 바다 가운데서 벌어졌다. 통제사가 사졸들의 앞에 서서 종일 혈전을 하였는데, 철환을 머리에 맞아 전사했다. 그 아들 아무개가 그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눈물을 감추고 소리를 삼키며 울음이 나오지 않도록 억누르며 말하기를, “내 마땅히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것이며, 이 도적들과는 함께 살지 않을 것을 맹서하노라” 하고는 깃발을 올리고 북을 치며, 적을 죄다 죽일 때까지 싸워 물러서지 않았다. 전후(前後)로 부순 적의 배가 거의 400여 척에 이르렀고, 진 도독(陳都督)이 거느린 군사를 풀어서 잇달아 지원하여 적의 무리를 대파하고 죽여 머리를 벤 것이 매우 많았다. 전쟁하는 날, 행장(行長)이 유 제독(劉提督)에게 은을 바치고 지름길로 도망갔다. 유정(劉綎)이 즉시 군사를 이끌고 왜의 진영에 진격해 들어가 보았더니, 단지 병든 왜병 몇 명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十九日庚子 賊將平行長遁去 崇政大夫行全羅左水使兼統制使李舜臣死之 先是行長再請於劉提督綎講和解 兵而歸綎陽許和親密諭于統制使整理船隻半渡擊之賊果登船未及畢載而提督放炮舜臣應聲而進撞破倭船數百隻賊 知不得渡還入營中通于泗川賊將沈安道合力水戰須卽馳來安 道果乘船而前統制使左右夾擊大戰于海中身先士卒血戰終日 鉄九中胸而死其子某見其父之死掩淚呑聲抑不發哭曰吾當復父之讐誓不與此賊俱生也揚旗鳴鼓鏖戰不解前後破船幾至四 百餘隻而陳都督游領兵繼援大破賊衆殺獲甚多當戰之日 行長納銀于劉提督間道遁去綎卽領兵入倭營只有病倭數人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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