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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족, 거문고, 국화잎을 띄운 술잔, 어지러운 춤 - 한창인 가을에 취하다
1603년 9월 3일, 가을은 한창이고 물소리는 콸콸 흐르며 기암 괴석과 동굴은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큰 소나무가 하늘을 가렸는데, 푸른빛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이정구는 일행과 함께 발을 계곡 물에 담근 채 웃옷을 벗고 돌 위에 앉았다.
취사장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술과 안주를 풍성하게 준비하였다. 어떤 이들은 술잔을 물에 띄워서 마시기 내기를 하고, 어떤 이는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았다. 자제가 단풍나무 가지를 꺾어서 머리에 꽂았다. 이정구도 국화잎을 따서 술잔 위에 띄웠다. 취하니 기분이 좋았다. 박수도 치고 발을 구르기도 하였다.
거문고의 맑은 줄이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고 악공(樂工)들은 그 솜씨를 겨루니, 모두 천고에 드문 소리였다. 자방 형님이 말하기를,
“저 세 사람은 참으로 나라에서 제일의 악공이다. 오늘 악기 소리가 더 없이 맑게 느껴지는 것이 어찌 경치가 뛰어나기 때문이겠는가?”
라고 하였다. 세 악공이 말하기를,
“뛰어난 경치뿐만이 아니고 오늘 신선들 모임에 어울리니 우리도 흥겨운 감정이 솟구쳐 음조가 저절로 높아졌다. 신의 도움이 있는 것 같다.”
라고 하였다.
해가 질 때 모두 일어나 둥실둥실 어지럽게 춤을 추다가 모두 취해서 말을 타고 출발하였다. 퉁소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때때로 거문고도 연주하였다. 행인들이 우리들을 신선으로 보는 듯했다. 조금 후에 동쪽 하늘에 달이 떴다. 이정구는 또다시 흥이 났다. 말을 타고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황혼이
사령(沙嶺)
위를 비추었다. 선발대가 성문을 통과하는 것을 잠시 늦추었다. 성문 밖에 이르니 세상은 인적이 끊어졌지만, 달빛은 대낮같이 밝았다. 남은 술이 아직도 많다는 말을 듣고 수문장을 불러 오라 하여 같이 둘러앉아서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마셨다. 연주가 한창이므로 취해서 집에 가는 것도 잊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훨씬 지났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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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정구(李廷龜)
주제 : 교류와 친분, 친구모임
시기 : 1603-09-03 ~ 1603-09-04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서울특별시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이정구, 신응구, 성민, 천민, 자제, 억량, 박대건, 이산수, 이용수, 악공, 노비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6호
조선왕조실록
◆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
조선시대 선비들은 좋은 자연경관 속에서 시·서·금·주로 노니는 것을 소위 풍류라 하여 생활의 주요 영역으로 삼았던 것이다. 문인들이 남긴 시문에는 생활 속에서 시(詩)·서(書)·금(琴)·주(酒)를 즐겼다는 내용이 많다. 또한 좋은 경치를 찾아다니며 자연을 즐기는 것을 매우 중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인들의 풍류생활은 단순히 즐기는 데에서 머무르지는 않았다. 이 풍류는 시나 문장의 형태로 전달되면서 문학적인 축적이 가능하게 하였고, 풍류생활의 주내용 중의 하나인 음악은 나름대로 뚜렷한 음악문화를 형성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밖에도 풍류는 그림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반대로 음악과 시·그림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들을 서로 연결시켜 본다면 문인들의 풍류세계를 집약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앞서 시문에 나타난 풍류란 좋은 자연 속에서 시·서·금·주로 즐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술 마시며 노니는 자리에서 자연과 흥취를 읊조리는 시를 짓고, 이를 거문고에 얹어 노래로 부르는 그런 정경으로 간단히 요약해볼 수도 있다.
이러한 내용이 글로 표현된 종류로는 시(한시·시조)·편지글, 누구의 정자나 별당에 대하여 기술한 글, 기사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은 문장형태는 역시 시이다. 시는 즉석에서 지어 노래로 표현될 수 있었고, 또 여러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다가 다른 사람에 의하여 기록으로 남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의 인물 산수도에서는 선비들이 여럿 어울린 것보다는 혼자 자연 속에 묻혀 있다 하더라도 음악인들이 따로 초빙되어 있는 모습이나 기생이 함께 있는 그림들은 신윤복(申潤福)의 풍속도를 제외하고는 드물다.
예를 들면 정수영(鄭遂榮)이 그린 〈송하가회 松下佳會〉에서는 의관을 정제한 12명의 선비들이 소나무 숲 아래 조촐한 술상과 지필묵(紙筆墨)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아 시작(詩作)을 하려는 듯한 그림이나, 이유신(李維新)이 그린 〈포연춘지 浦烟春池〉에서처럼 복숭아꽃 핀 연못가에서 술을 한잔씩 하면서 춘곤(春困)을 즐기는 그림 정도가 여럿이 어울린 선비들의 풍류를 소박하게 나타낸 것이다.
이들이 선비의 기풍을 유지한 그림인 데 비해 신윤복의 〈야연도 野宴圖〉는 모든 것이 솔직하고 발랄하게 표현되어 있어 주목을 끈다. 이 그림은 음악인과 기생을 대동하고 들놀이를 나온 선비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 거문고·해금·대금 세 악기로 연주하는 악사들의 뒷모습이 있고, 무료한 듯 외면하고 앉은 두 기생이 두 선비 사이에 앉아 있다.
이쯤되면 안민영의 시조에 나타난 풍류놀이와 직접 연결지어 이해하여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가 된다. 시대의 풍속도 화가 김홍도(金弘道)에게 있어 풍류는 조용하고 담백하다. 김홍도의 그림 〈단원도 檀園圖〉(彈琴吟詩圖)는 1781년 청명일(淸明日)에 자신의 집에서 있었던 진솔회(眞率會)라는 아회(雅會)를 회상하면서 1784년 섣달에 그린 것이다.
여기에서 김홍도의 풍류생활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배경은 멀리 성곽이 보이는 산 밑에 소나무와 오동나무·버드나무들이 자라고 있으며, 후원에는 연못과 중려나무와 괴석(怪石)·석상(石床)들이 고루 갖추어진 김홍도의 초당이다.
열린 방문 틈으로는 책상과 공작꼬리를 꽂아둔 항아리, 비파가 벽에 걸려 있는 모습이 보이며, 그 방에 잇달린 마루에 세 사람이 술상을 앞에 놓고 마주앉아 한 사람은 거문고를 연주하고, 또 한 사람은 시를 노래하고 있으며, 다른 한 사람은 그저 부채를 들고 앉아 듣고 있는 그림이다.
이렇게 조촐하고 깔끔한 풍류가 사실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이상형으로 생각한 아회였다. 그러나 이 모임은 여럿이 모일수록 더 질탕하게 돌아가고, 품격보다는 직접적인 흥취를 더 선호하는 쪽으로 풍류의 기호가 바뀌어갔음을 알 수 있다.
즉, 여럿이 어울려 즐기는 풍류는 한판 흐드러지게 놀고, 그 속에서 시작(詩作)과 음악이 교류되며 마음껏 자신의 감정을 내놓을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한 셈이라 하겠다.
역시 이상적인 풍류의 세계는 〈단원도〉에 나타난 담백하고 조촐한 정취이며, 객흥이 깨질까 두려워하는 신흥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여럿이 어울린 풍류의 세계는 감정표출의 세계요 정(靜)보다는 움직임의 세계이며 흥청거림의 세계, 그 흥청거림 뒤에서 느껴지는 호방함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시·그림에서 때로는 조심스럽게, 때로는 과감하게 표현된 것이다. 이 때의 음악은 떠들썩한 흥겨움을 줄 정도여야 하므로 서너 가지의 악기편성이 반드시 필요하게 되며, 조선 후기로 갈수록 다양한 악기편성과 음악 갈래들이 풍류 속에 끼어들게 되었다.
대표적인 풍류음악은 가곡과 시조, 〈영산회상〉 등이었으며, 안민영이 활동하던 무렵에는 판소리 명창들의 소리를 즐기는 음악문화도 상당히 축적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시와 글(책 또는 글씨), 술과 음악으로 채워지는 풍류는 그 규모의 대소(大小)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비슷한 유형을 보여준다.
한편 여럿이 어울리는 풍류의 이면에는 또 혼자서 즐기는 풍류의 세계가 넓게 펼쳐져 있다.
혼자 즐기는 풍류의 세계는 더불어 즐기는 풍류의 세계보다 더 관념적으로 기울어 있다. 풍류하는 그 자체보다 풍류를 통하여 도달하고자 하는 어떤 세계에 더욱 관심이 많다.
따라서 혼자 즐기는 풍류의 세계는 대단히 생략되어 있고 모든 것이 절제되어 있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초현실적·비현실적인 세계로 표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문인들은 자신의 초당에서 스스로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할지라도 자기가 머무르는 곳은 중국고사에 나오는 ‘∼당(堂)’이거나 ‘∼루(樓)’이고, 거문고는 칠현금(七絃琴)으로, 음악은 고사에 나오는 유명한 곡〔俄陽曲 등〕으로 대비시켜 시를 짓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곧 자신의 풍류생활은 도연명(陶淵明)이나 소동파(蘇東坡)의 세계와 같이 놓게 되며 거기에서 관념적인 즐거움도 함께 누리는 것이다.
이를 잘 나타내주는 정황이 곧 〈춘향가〉 초두에서 이도령이 남원 광한루로 단오놀이 나가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기산영수 별건곤 소부 허유 놀고/적벽강 추야월에 소동파도 놀고/채석강 명월야에 이적선도 놀아있고/시상리 오류촌 도연명도 놀고/상산에 바둑두던 사호선생도 놀았으니……/내또한 호협사라……/동원도리 편시춘 아니놀고 무엇하리.”
겨우 광한루로 놀러 나가면서 스스로는 중국 명문장가들을 들먹이며 같은 세계에 있노라고 자부하는 듯한 노래이다. 이와 같은 생각이 문인들이 혼자 즐기는 풍류에 만연되어 있는 생각이다. 따라서 문인들의 풍류세계는 항상 도연명의 무현금(無絃琴) 세계로 향하고 있으며, 백아(佰牙)와 종자기(鍾子期)와 같은 벗을 구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나서 벗으로 인정한 것은 구름·갈매기·청풍(淸風) 등으로 곧 자연과의 합일을 꿈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신흠(申欽)의 시조를 보자.
그는 소동파가 적벽강에서 노닐었다는 풍류를 본받고 있는 듯 하며, 자신의 거문고를 ‘요금(瑤琴)’이라 부름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사대부들의 세계로 옮겨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선비들이 혼자 즐기는 풍류에서는 거문고가 으뜸이었고, 이 거문고 음악에 간단히 시를 얹어 음영(吟詠:시를 읊는 일)하는 정도였다. 이는 관현악·판소리 등 기생들의 노래가 어우러져 즐기는 풍류에 비해 조촐하고 담백하였다.
더욱이 선비들의 음악은 ‘애이불비(哀而不悲)’해야 한다는 정악관(正樂觀)이 뿌리 깊었으므로, 느릿느릿 무미하게 지속되는 거문고 음악이 선비들의 이상을 담아내기에 적합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곧 중국에서 금(琴)이 누리던 세계였다. 거문고와 시의 음영은 조선 중기를 넘어서면서 가곡이라는 음악 갈래로 정착될 수 있었다. 그 뒤 가곡은 풍류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된다. 매체 없이 곧 자연 속에 뛰어들 수 있는 달관의 경지이다. 이 시조는 작자 미상의 시인데, 이와 비슷한 정서도 매우 일반화되어 있다.
한편 이황(李滉)과 같은 도학자들도 풍류를 그의 시에 그려 놓았다. 〈도산 12곡〉 중 넷째곡인데, 술 마시면서 뱃놀이 하는 중에 거문고 타고 즐기니 무한지경에 이르렀노라는 내용이다.
이 밖에도 가사문학의 일가를 이룬 정철이 〈성산별곡 星山別曲〉에서 보여주는 풍류생활이나, 윤선도(尹善道)의 〈산중신곡 山中新曲〉에 나타나는 풍류도 감동적이다. 정철은 오랫동안 산거(山居)하였으므로 그의 풍류는 그리 헌사스럽지 않고 조용하며 내재된 멋이 배어 있다.
“엊그제 빚은 술이 어도록 익었나니 잡거니 밀거니 슬카장 거후로니 마음에 맺힌 시름 적으나 하리나다. 거문고 시욹 얹어 풍입송 이야고야 손인동 주인인동 다 잊어 버렸어라.” 술마시고 거문고 타니 현실을 잊었노라는 노래이다. 여기에서는 나와 거문고가 하나로 되었으며, 나와 벗이 하나가 되어 자연 속에 취하였다는 뜻도 된다.
즉, 윤선도에서는 바깥으로 드러나는 즐거움이 아니라 소리로서 마음을 드러내고 마음으로써 소리를 드러내는 마음과 소리의 교류를 즐긴 것이다. 이처럼 혼자 즐기는 풍류의 세계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대부분의 선비들은 글을 통하여 이적선이나 도연명·소동파의 풍류를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자신들의 풍류를 그들과 함께 같은 유(類)로 놓고 싶어하였고, 은거하거나 노후의 생활은 더욱 이 경지를 찾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절제와 내면세계로의 침잠이 곧 혼자 즐기는 풍류의 중요한 세계였으며, 이를 통하여 자연과 하나가 되고 소리〔琴〕와 하나가 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풍류가 그림으로 묘사된 것이 많이 있다. 18세기 것으로는 윤두서(尹斗緖)의 그림 〈송하관폭도 松下觀瀑圖〉와 정선(鄭敾)의 〈운송도 雲松圖〉가 있다. 둘 다 빼어난 산수를 배경으로 하고 노송(老松)을 그늘삼아 무릎 위에 칠현금을 안고 있거나 혹은 내려놓고 자연을 완상(玩賞:좋아서 구경함)하는 선비를 그리고 있다. 특별한 점은 거문고가 아니라 칠현금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금(琴)을 연주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이 그림들에서는 자연 속에서 무현금을 안고 노니는 도연명에 대한 화가의 애정이 표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19세기에 이르면 조금 더 사실적인 정경이 펼쳐진다.
윤재홍(尹齋弘)이 그린 〈송하관수도 松下觀水圖〉는 적갈색과 담회색의 맑은 색채로 산수를 즐기는 선비 한 사람을 대담한 필묵법으로 그린 것이다. 이 선비는 뚜렷이 거문고를 안고 있다.
김두량(金斗樑)·덕하(德夏) 부자가 그린 〈사계산수도 四季山水圖〉에서도 시절에 따른 선비들의 풍류모습이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차를 마시거나 바둑을 두거나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거나 낚시질을 하거나 비파와 젓대를 대동하고 조촐한 야연(野宴)을 베푸는 모습, 그리고 겨울 사랑채에서 무릎 위에는 거문고를 놓고 술을 가운데 두고 앉은 선비의 모습 등이 나타나 있다.
이렇듯 선비사회에서 풍류는 생활화되어 있고 또 독특한 그들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관념적으로는 풍류를 통하여 자연과 합일하는 것을 최대한 따르고 있었으며, 실제적으로는 흥청거림·표출·발산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도 매우 중시하고 있었다.
그 결과 선비들의 음악생활은 거문고와 관련된 음악문화를 축적시켰고, 그림에서는 선비들 스스로 사군자(四君子)에 자신의 정신세계를 투영시켰으므로, 일차적인 그림 풍류는 사군자 및 문인화의 세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직접적인 풍류묘사는 제3자의 시각으로 풍류모습을 그려놓은 인물산수화라 하겠다. 산수가 수려한 산중에 5, 6명의 선비들이 붓통과 찻잔들, 혹은 술병들을 가운데 두고 빙둘러 앉은 정경이나, 두세 명의 선비들이 초당 마루에 앉아 있는데 열린 방문으로는 책이 보이고, 뜰에는 소나무와 오동이 심어져 있으며, 여기에 한 선비의 무릎에 거문고가 놓여 있고 동자(童子)가 분주히 심부름하는 모습들을 조선시대 회화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이보다 훨씬 격식을 차린 계회(契會)의 모임이 그림으로 남아 있기도 하고, 또 혼자 산마루턱에 앉아 금(琴)을 어루만지는 선비의 모습도 있어, 역시 그림을 통해서도 선비들의 풍류생활을 아는 데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다.
이처럼 조선 선비들의 풍류는 홀로 있을 때와 문우(文友)들과 더불어 있을 때 추구하는 바가 다르며, 그 세계 또한 다른 모습을 가진다.
◆ 원문 번역
가을은 한창이고 물소리는 콸콸 흐르며 기암 괴석과 동굴은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큰 소나무가 하늘을 가렸는데, 푸른빛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나는 일행과 함께 발을 계곡 물에 담근 채 웃옷을 벗고 돌 위에 앉았다. 취사장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술과 안주를 풍성하게 준비하였다. 어떤 이들은 술잔을 물에 띄워서 마시기 내기를 하고, 어떤 이는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았다. 자제가 단풍나무 가지를 꺾어서 머리에 꽂았다. 나도 국화잎을 따서 술잔 위에 띄웠다. 취하니 기분이 좋았다. 박수도 치고 발을 구르기도 하였다.
거문고의 맑은 줄이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고 악공(樂工)들은 그 솜씨를 겨루니, 모두 천고에 드문 소리였다. 자방 형님이 말하기를,
“저 세 사람은 참으로 나라에서 제일의 악공이다. 오늘 악기 소리가 더 없이 맑게 느껴지는 것이 어찌 경치가 뛰어나기 때문이겠는가?”
라고 하였다. 세 악공이 말하기를,
“뛰어난 경치 뿐만이 아니고 오늘 신선들 모임에 어울리니 우리도 흥겨운 감정이 솟구쳐 음조가 저절로 높아졌다. 신의 도움이 있는 것같다.”
라고 하였다.
해가 질 때 모두 일어나 둥실둥실 어지럽게 춤을 추다가 모두 취해서 말을 타고 출발하였다. 퉁소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때때로 거문고도 연주하였다. 행인들이 우리들을 신선으로 보는 듯했다. 조금 후에 동쪽 하늘에 달이 떳다. 나는 또다시 흥이 났다. 말을 타고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황혼이 사령(沙嶺)[ 인왕산과 안산 사이의 무악재] 위를 비추었다. 선발대가 성문을 통과하는 것을 잠시 늦추었다. 성문 밖에 이르니 세상은 인적이 끊어졌지만, 달빛은 대낮같이 밝았다. 남는 술이 아직도 많다는 말을 듣고 수문장을 불러 오라 하여 같이 둘러앉아서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마셨다. 연주가 한창이므로 취해서 집에 가는 것도 잊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훨씬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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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수에 술잔을 띄워 보내며, 날이 저물어도 일어날 맘 없...
1879-08-05
9
구룡담에서 기문을 짓다
경상북도 영덕군
10
내연과 옥계의 풍광을 비교하다
경상북도 포항시
11
부임한 지 몇 개월 만에 경주를 유람하다
경상북도 경주시
12
신라 오릉의 유래에 대해 생각하다
경상북도 경주시
13
이언적 선생의 자취가 남아있는 옥산을 유람하다
1767-12-07
경상북도 경주시
14
중양절 국화를 보며 가족을 생각하다
1592-09-09
전라북도 장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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