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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뒤 다시 찾은 물길, 뱃놀이를 하며 자연과 도리의 변화를 느끼다
1706년 권성구는 청량산을 향해 떠났다. 4월 5일, 20년전에 지났던 봉화의 강변을 따라 내려가니 이 물은 낙동강의 상류이다. 권성구는 병인년에 망선암(望仙庵)에서 연대사로 향했을 때 물결을 따라 내려갔다.
맑은 연못은 깊었으며 십 리에 걸쳐 한결같이 푸르고 굽이굽이마다 아름다웠다. 항상 다시 가고 싶어 했는데 훌쩍 이십 년이 흘러간 뒤에야 이 길을 지나게 되었다. 깊었던 연못은 바람과 모래흙만 아득했고 숨겨져 보이지 않던 돌은 드러나 메말랐다. 자연의 변화가 이러한데 하물며 세상의 도리는 얼마나 변하였겠는가?
말에서 내려 잠시 쉬는데 권화원(權和遠)이 그의 집에서 왔다. 아마도 물촌(勿村)에서 비진(飛津, 현 봉화군 명호면 풍호1리 비나리마을)으로 이주한 것 같다. 그와 함께 가다가 몇 리를 가면서 물가에 모임이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화원에게 물어보니 여포(餘浦, 현 봉화군 명호면 풍호2리) 사람들이 모여서 기다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모인 장소에 도착하니 김진세(金振世) 어른 및 김성경(金聖警), 남경천(南擎天) 등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위에 물을 바라보도록 대(臺)를 만들었는데 20여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였으며 그 이름을 물어보니 강림대(江臨臺)라고 하였다. 뱃놀이를 하기 위해 그 아래에 배가 멈추었다. 술을 몇 번 돌리고 지정과 지이가 배에 올랐으며 권성구도 따라갔다.
물결을 따라 오르내렸는데 넓고 깊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술을 들여오게 하고 성경의 계집종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소리가 거칠고 곡조도 부실하였지만 적적함을 위로할 만하였다. 자구가 이어서 노래를 부르고 나와 지정, 지이도 화답해 불렀다. 배 안에서 벌인 운치 있는 일이었다. 이런 때 시가 없을 수 없겠기에 오언
근체시
를 지었다.
夏木淸陰轉(하목청음전) 여름 숲 맑은 그늘 변해갈 때
輕舟棹碧瀾(경주도벽란) 푸른 물에 배 띄워 노를 젓네
峰回嵐翠倒(봉회람취도) 봉우리 돌아갈 젠 이내 낀 숲 기우는 듯
日暎纈紋團(일영힐문단) 햇빛은 비단 물결을 비추누나
濁酒豪情發(탁주호정발) 막걸리 한 잔에 호기가 드러나고
狂歌老興闌(광가로흥란) 미친 듯 노래하니 노인의 흥 다하누나
儘知塵市外(진지진시외) 알겠노라 속세의 바깥에
別有一溪磻(별유일계반) 별도의 한 강물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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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멀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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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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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성구(權聖矩)
주제 : 놀이와 유람, 풍류생활
시기 : 1706-04-05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봉화군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권성구, 김지이, 하청경, 오성창, 권집, 김지정, 김자구, 김여평, 권화원, 김진세, 김성경, 남경천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웹진 담談 2호
웹진 담談 74호
웹진 담談 2호
조선왕조실록
◆ 조선시대 뱃놀이문화
근·현대의 뱃놀이는 젊은 연인들이 즐기는 풍속도이지만 조선시대의 뱃놀이는 주로 양반들의 풍류 놀이였다. 선유(仙遊), 주유(舟遊)라고 일컫는 뱃놀이는 강과 배, 시(詩)와 술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그리는 놀이였다. 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사대부에게 뱃놀이는 시원한 물놀이의 하나이자, 자연을 감상하는 유람이었다. 뱃놀이는 물의 흐름을 따라 둥둥 떠가는 재미도 즐겁지만 강변에 퍼져 있는 자연의 화폭을 감상하는 것이 일품이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치수공사로 일직선의 초라한 강변이 보이지만 과거에는 용의 허리처럼 굽이쳐 흐르는 강과 우뚝 선 절벽들이 엮어낸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뱃놀이의 미학은 이러한 강변을 따라 흘러가면서 절경의 자연을 관조하는 쾌락에 있었다.
이렇게 사대부들이 뱃놀이를 하면서 술을 먹고 시를 읊는 풍속은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잘 알려졌듯이 송나라의 소식(蘇軾)은 황저우(黃州)에 유배되었다가 손님들과 적벽에서 배를 타고 노닐면서 ‘적벽부’라는 걸작을 남겼다. 조선시대의 사대부들도 모두들 선유(船遊)를 하다가 소동파의 적벽부를 한번 씩 떠올리고는 했다.
조선시대 선유(仙遊)놀이를 그린 화폭으로는,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平安監司饗宴圖》 중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와 혜원의 주유청강(舟遊淸江)을 들 수 있다.
단원 김홍도가 그렸다는 《평안감사향연도(平安監司饗宴圖》 중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에는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의 장대한 뱃놀이 풍속이 잘 드러나 있다. 〈월야선유도〉는 대동강 변에서 평안감사 부임을 환영하는 선유(仙遊)놀이가 파노라마식으로 펼쳐져 있다.
평안감사가 탄 누선(樓船)과 수십 척의 배가 대동강을 흘러가는 모습도 장관이지만 횃불을 들고 성곽과 강 언덕에 구름처럼 모여든 양반과 백성들의 모습도 스펙터클(spectacle)한 광경이다. 그런데 이 〈월야선유도〉는 평안감사의 부임을 축하하는 향연도(饗宴圖)에 가깝다.
양반들의 진정한 뱃놀이 풍속은 혜원 신윤복의 그림에서 더 잘 나타난다.
일명 ‘선유도(仙遊圖)’라고도 불리는 혜원의 주유청강(舟遊淸江) 그림은 조선 후기 풍류적 뱃놀이 풍경이 잘 포착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는 바위산을 배경으로 양반과 기생, 악공과 사공 등 총 8명이 배 위에서 다양한 표정과 행위를 연출하고 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단연 세 명의 양반들인데 기생과 함께 뱃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백미이다. 장죽을 들이대며 기생을 희롱하는 양반, 강물에 손을 씻는 기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양반들의 모습이 자못 흥미롭다. 당시 양반의 흥취 있는 뱃놀이가 색(色)과 악(樂)을 겸비한 풍류였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18세기 중반 조선에서 뱃놀이를 제일 좋아하는 선비로는 아마도 안동의 이종악(李宗岳, 1726~1773)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고성 이씨인 그의 집안은 안동 일대에서도 명가(名家)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자연을 벗 삼아 시와 서화를 남겼다.
그는 정자를 지어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다가 마침내 작은 배를 타고 낙동강을 선유(船遊)하는 일에 빠지게 되었다. 허주(虛舟)라는 자호(自號)와 배에 항상 실려 있는 거문고·책·다기 등은 그가 배 위에서 즐기는 풍류의 방식을 잘 보여준다.
1763년 4월 4일, 낙동강 상류의 천변은 봄기운으로 완연하였다. 이날 이종악은 집안 아저씨 등과 함께 낙동강 일대의 12경승(景勝)을 유람하기 위하여 뱃놀이를 떠난다. 그가 기획한 뱃놀이는 배를 타고 낙동강 상류를 오르면서 절경을 감상하고, 친인척을 만나 모임을 여는 것이었다. 동호(東湖)에서 출발하여 선어대(鮮魚臺), 백운정(白雲亭), 칠탄(七灘) 등을 주유한 뒤 반구정에 도착하여 5일간의 뱃놀이를 마쳤다. 이 장기간의 뱃놀이는 《허주부군산수유첩(虛舟府君山水遺帖)》이라는 화첩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림에도 소질이 있던 이종악은 낙동강변의 경승과 뱃놀이의 장면을 실경으로 그려서 남긴 것이다.
그의 선유는 강변의 명승을 두루 유람하며, 명승에 도착해서는 지인들과 시회를 열고 거문고를 켜는 등 운치 있는 뱃놀이이다. 이것은 선비들이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는 유가적(儒家的) 뱃놀이이다. 그러나 유가들의 뱃놀이가 자연을 관조하는 철학적 놀이에 불과할 리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양반들의 풍류에는 색(色)과 악(樂)과 더불어 음주가 기본이다. 강의 풍치를 감상하고 시를 읊을 때에는 음주가무의 향연이 함께 따랐다.
또한 음주가무 뱃놀이를 좋아하는 인물은 농암(壟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였다. 이현보는 안동부사, 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인물이며 뱃놀이를 즐겼던 풍류가였다. 그는 안동시 도산면의 분강(分江) 기슭에 애일당(愛日堂)을 짓고 이곳을 거점으로 뱃놀이를 즐겼다. 강 가운데 ‘대자리’라는 넓은 평지가 있었는데 이현보는 이곳에 도착하여 흐드러진 술판을 벌였다. 술기운이 물오르면 원님, 백성, 종의 경계가 무너져 버릴 정도의 거나한 술판이 되었다. 농암은 디오니소스적 열광과 취기를 다음과 같은 시로 남겼다.
“술동이 앞에 어지럽게 혹 스스로 노래하고 재빨리 춤을 추니 누가 권해서인가. 누가 원님이고 누가 백성인가. 사위는 장인을 잡고 서로 춤을 추고 가비(家婢)는 술잔을 들어 함께 주고 받는다.” 술기운이 오르면 일행은 다시 배에 올라서 격렬하게 노래를 부르고 놀았는데, 농암의 표현에 의하면 이 모습이 “매미가 울고 벌이 잉잉거린다”와 같았다고 한다. 농암으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퇴계 이황도 이 뱃놀이 일행으로 함께 참여하였다. 후에 퇴계는 농암으로부터 자연의 즐거움을 깨달았으며, 농암을 참된 즐거움을 아는 은자(隱者)로 표현하였다.
가장 적극적으로 소동파의 적벽부를 본 따 뱃놀이를 한 인물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었던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다. 임오년(壬午年)인 1462년 7월 16일에 그는 벗들과 한강의 광진(廣津)에서 놀았는데, 그 날은 마침 소동파가 적벽에서 놀았던 날이었다. 소동파는 임술년(壬戌年) 7월 16일에 뱃놀이를 하였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모두 같은 임년(壬年)일뿐만 아니라 노는 장소 역시 적벽과 광진의 석벽이 모두 강의 절벽으로 같았다. 이 우연의 일치를 기뻐하며 서거정 일행은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뱃놀이를 즐겼다. 이후 서거정은 임오년의 ‘적벽놀이’를 떠올리면서 아래와 같은 시를 지었다.
“지난 임오년 칠월 열엿샛날에, 두어 친구와 함께 광나루에서 노닐면서. 풍류를 스스로 적벽의 신선에 비기어, 목란 삿대(배질할 때 쓰는 장대)·계수나무 노로 물결을 저을 제, 구름 새에서 달빛 솟아 황금물결 이루고, 맑은 술은 넘실넘실 황아(黃鵝, 빛깔이 좋은 술)가 둥둥 떴는데 … ”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이 물은 낙동강의 상류이다. 나는 병인년에 망선암(望仙庵)에서 연대사로 향했을 때 물결을 따라 내려갔는데, 맑은 연못은 깊었으며 십 리에 걸쳐 한 결 같이 푸르고 굽이굽이마다 아름다워 항상 다시 가고 싶어 했는데 훌쩍 이십 년이 흘러간 뒤에야 마침내 지나가게 되었다. 깊었던 연못은 바람과 모래흙만 아득했고 숨겨져 보이지 않던 돌은 드러나 메말랐다. 자연의 변화가 이러한데 하물며 세도의 변화는 어떻겠는가?
말에서 내려 잠시 쉬는데 권화원(權和遠)이 그의 집에서 왔다. 아마도 물촌(勿村)에서 비진(飛津)으로 이주한 것 같다. 그와 함께 가다가 몇 리를 가면서 물가에 모임이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화원에게 물어보니 여포 사람들이 모여서 기다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모인 장소에 도착하니 김진세(金振世) 어른 및 김성경(金聖警), 남경천(南擎天) 등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위에 물을 바라보도록 대(臺)를 만들었는데 20여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였으며 그 이름을 물어보니 강림대(江臨臺)라고 하였다. 뱃놀이를 하기 위해 그 아래에 배가 멈추었다. 술을 몇 번 돌리고 지정과 지이가 배가 올랐으며 나도 따라갔다. 물결을 따라 오르내렸는데 넓고 깊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술을 들여오게 하고 성경의 계집종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였는데 소리가 거칠고 곡조도 부실하였지만 적적함을 위로할 만하였다. 자구가 이어서 노래를 부르고 나와 지정, 지이도 화답해 부르니 배 안에서 벌인 운치 있는 일이었다. 이런 때 시가 없을 수 없겠기에 오언 근체시를 지었다.
夏木淸陰轉(하목청음전) 여름 숲 맑은 그늘 변해갈 때
輕舟棹碧瀾(경주도벽란) 푸른 물에 배 띄워 노를 젓네
峰回嵐翠倒(봉회람취도) 봉우리 돌아갈 젠 이내 낀 숲 기우는 듯
日暎纈紋團(일영힐문단) 햇빛은 비단 물결을 비추누나
濁酒豪情發(탁주호정발) 막걸리 한 잔에 호기가 드러나고
狂歌老興闌(광가로흥란) 미친 듯 노래하니 노인의 흥 다하누나
儘知塵市外(진지진시외) 알겠노라 속세의 바깥에
別有一溪磻(별유일계반) 별도의 한 강물이 있음을
배 안에서 상류에서 오는 어떤 사람을 바라보았는데, 자구가,
“원장(院長)인 김군집(金君執)인 듯 하다.”
라고 하였다. 배에서 내려 대에 오르니 과연 그 사람이었다. 오래 헤어졌다가 만나본 것이며 또한 젊은이 한 명이 따라왔는데 바로 도언(道彦) 오성창(吳聖昌)이었다. 둘러 앉아 장황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도 싫증나지 않아 해가 지는지도 몰랐다. 해를 돌아보며 출발하여 각각 흩어져 돌아갔다. 진세 어른과 지정, 지이, 청경, 군집, 도언 및 나는 말을 타고서 돌아와 함께 성경의 집에 들어갔다. 성경이 저녁밥을 들여왔다. 밤이 되자 나와 군집을 김씨 어른이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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