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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천은 두 주먹 뿐 - 바람으로 머리 빗고, 비로 머리 감는 산 사람들을 마주한 심상
1922년, 이 해 3월에 곽태종은 외롭게 지팡이와 나막신 행장(行裝)을 차려 두류산(頭流山, 지리산)으로 들어가 대충 간략하게 구경을 하였다. 예전에 산을 논하는 사람들이 방장산(方丈山, 지리산)은 장엄하나 수려하지 않다는 말이 참으로 잘 한 비평이라고 여겼다.
높이 솟아 하늘에 닿아 호남과 영남의 사이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남국(南國)의 진산(鎭山, 고을에 있는 큰 산)이 되었다. 산 둘레를 싸고 있는 이름난 도시와 웅장한 고을이며, 작은 마을과 큰 동네로 이루어진 특이한 구역과 이름난 산과 넓은 시내는, 전쟁을 하는 보루(堡壘, 요세)인 듯 근심스러워 보인다.
이름난 집안의 여러 촌락마다 크고 작은 집들과 절들에서 꽃이 피고, 기름진 들판에서는 벼와 조, 기장 등의 곡물이 난다. 인물도 훌륭하고 특출한 선비가 많아 세상의 줄기와 기둥이 되어 나라에 이름을 날린다. 그러니 참으로 우리 백성들이 낙토(樂土, 늘 즐겁게 살 수 있는 곳)를 얻어서 사는 것이다.
가까이는 울창하게 늘어선 박달나무나 회나무, 푸른 등나무가 천수(天壽)를 누리며 늙어가고, 구름 밖에 우뚝하게 솟은 여러 봉우리와 겹겹이 가파른 산이 기이한 자태를 드러낸다.
우뚝 솟아오른 바위와 깎아지른 벼랑, 우묵한 구렁과 깊숙한 웅덩이가 있으며, 달리는 길짐승으로는 곰과 호랑이, 이리와 노루, 원숭이 따위가 있고, 날짐승으로는 자고새와 매, 새매와 백로(伯勞, 때까치)가 울어댄다. 참으로 기이하고 괴상한 것이 많다.
신령한 약초로는 지초와 궁궁이, 산삼(山蔘)과 창출(蒼朮), 사향(麝香)과 황정(黃精) 등 신령한 잡초들이 많다. 곧 이러하기에 서생(徐生)이 진시황(秦始皇)을 속이고 함부로 왔다가 돌아가지 않은[진(秦)나라의 방사(方士) 서복(徐福), 혹은
서불(徐巿)
이 진시황(秦始皇의 명에 따라 동남동녀(童男童女) 수천 명을 이끌고 불로초(不老草)를 찾으러 바다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 고사]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는 음양(陰陽)이 있고 땅에는 화이(華夷)가 있어서 구역이 구분되었다. 옛날 하늘이 처음 열릴 때부터 화(華)는 중토(中土)에서 거처하고, 이(夷)에 사는 사람은 변두리 물가에 살며, 길짐승은 험한 곳에 기대어 굴을 파고 살아간다. 이렇게 각기 그 편한 곳을 얻어 안주(安住)하는 것이다.
곽태종은 두류산을 따라 유람한 뒤로 두루 보고 다 터득했다. 대개 천왕봉이 가까워질수록 사람이 살기는 해도 매우 성글었다. 세 집정도 사는 마을이나 열 사내조차 만나기 어려웠다.
좁은 집에서 풀[연초(煙草)]과 나무[이것을 잘라 그릇을 만든다]로 생업(生業)을 삼고 피나무와 도토리, 개암 따위를 먹으며 칡포〔葛布〕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산귀[山鬼, 산에 산다는 일종의 정령(精靈)]를 동반자로 삼고 사슴을 벗으로 삼아 온갖 고생을 하는데, 쑥대 같은 머리에 얼굴에는 때가 끼어 눈과 코도 가늠할 수 없어, 그 모습이 사람 같지가 않다.
그러나 이 사람들도 모두 하늘로부터 오성(五性)을 성품으로 부여받았고, 우리 선대 성왕(聖王)의 교육을 받고 사는 사람이다. 깊은 인자함과 두터운 혜택이 사람에게 깊이 파고 들어가서 거의 성품을 받은 처음부터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처럼 가난하여 먹는 것이 거칠고 입는 옷이 남루하며 고생이 심한데도, 오히려 인의(仁義)를 좋아하고 명분(名分)을 지켜낸다. 그리고는 스승을 맞이하여 자식을 가르치고, 효제(孝悌)로 훈도(訓導)한다. 이로써 사람의 성품이 선(善)함을 징험(徵驗)할 수 있으니, 우리 선왕(先王)이 베푸신 은택이 깊지 않다면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또한 그들에게 이렇게 된 내력을 물어보면, 동서(東西) 간에, 의관을 갖춘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피하려한다고 말한다. 아, 세상을 피하는 것이 사람을 피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공자(孔子)가 어진 사람은 세상을 피하고 그 다음은 땅을 피하고, 그 다음은 색을 피하며 그 다음은 말을 피한다고 하였음.≪논어(論語)≫ 헌문(憲問)에 보임.] 사람을 피하는 것이 자신을 수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데, 어찌 자신을 수양하고 자산을 보존한다면서, 우리 낙토· 친척과 친구며 허다한 좋은 것, 즐거움을 버리고, 높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 이처럼 온갖 고생스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가?
또 인물이 나는 데는 각기 거처가 있어서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 초목(草木)이나 조수(鳥獸, 새와 짐승), 산림(山林)이 그렇고, 교룡(蛟龍, 뿔이 달린 커다란 뱀)이나 어별(魚鼈, 물고기와 자라), 내와 연못이 또한 그렇다.
오직 사람은 평평한 땅에 살아야 하는데, 누가 사람에게 살 땅을 잃고 살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으며, 또 누가 그렇게 살라고 권장이나 하겠는가? 지금 불행하게도 그 살 곳을 얻지 못하고, 그 낙토에서 벼나 조를 먹고 사는 것을 버린다면, 사방을 떠돌면서 새나 짐승들이 거처할 곳을 빼앗아 사는 것이다. 아, 저 초목이나 조수도 천지의 조화(造化) 가운데 살아가는데, 사람이면 어느 누가 진귀한 음식을 먹으며 낙토에서 살려 하지 않겠는가? 능히 이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서 믿으며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 그래서 지금 사람들은 지친(至親)을 도리어 월(越)나라 사람만도 못하게 여기며, 이웃 간에 서로 정이 멀어지고, 또한 몇 이랑의 농사를 지어서는 한 해를 살아갈 식량도 넉넉하지 않고, 백 냥의 엽전도 빌리기도 어려운데도 이렇게 떠나지 못하고 살아간다. 시인(詩人)이 이른바, ‘2월에 새로 뽑은 명주를 팔아 5월에 새 쌀을 사들이네.’〔二月賣新絲 五月糴新穀, 당나라의 시인 섭이중(聶夷中)이 지은 ‘상전가(傷田家)’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라는 것이 있는데, 그렇게도 못하는 형편에 지금 이처럼 어쩔 수 없이 산다.
그러나 밑천으로 삼을 것은 다만 두 주먹뿐이다. 바위굴을 집으로 삼고 구릉 골짜기를 밭으로 삼아 참마를 심어 벼로 대신하고, 나물을 캐어 고기로 삼으며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비로 머리를 감으며, 장차 한 해를 마치도록 부지런히 일하며 잠시도 쉬지 못한다. 비록 천신만고(千辛萬苦,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몹시 고생을 함)하더라도 어찌 전날 좋아하고 즐기던 것보다 못하겠는가? 오늘의 천신만고는 비록 나의 몸을 수고롭게 하지만 그 마음만은 진실로 달갑게 여기며 즐겁다. 전날의 이른바 백 가지 좋아함과 열 가지 즐거움은 내가 실로 즐거워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나의 심두(心頭)의 고기를 깎아낸 것이다. 지금의 입장에서 예전을 돌아보면 오늘 어려운 바는 어떠하며, 전날 즐거움은 어떠한가?
나의 밭을 내가 갈고 나의 술을 내가 마시며, 나의 책을 내가 읽는다. 새들이 지저귀는 것을 즐기고 사람이 타는 관현악을 좋아하며, 밝은 달 아래 호탕하게 노래 부르는 것이 이웃 벗이 칼을 품은 것보다 낫다. 그리하여 제 목과 몸에 치장을 해야 하는 풍속의 변화에 구애받지 않고, 누웠다 일어나 출입하며 마음껏 즐기니, 저 발도 편안히 하지 못하며 사는 자들에 비하면 어떠한가?
산중에 즐거움이 참으로 아득하도다. 드디어 노래하기를,
山重重兮雲深(산중중혜운심) 산은 겹겹인데 구름이 깊고
澗潔潔兮樹陰(간결결혜수음) 시냇물 깨끗하니 나무 그늘지네.
念虎號兮晝沈(념호호혜주침) 호랑이가 부르짖다 낮에 잠잠함을 생각하니
甘此山兮曾尋(감차산혜증심) 이 산을 일찍 찾은 것이 다행일세.
採藭歸兮窮霒(채궁귀혜궁음) 궁궁이 캐어 돌아오니 구름이 흐릿한데
放雞犢兮陽林(방계독혜양림) 닭과 송아지 양지 숲에 풀어놓네.
以人間之可好(이인간지가호) 사람을 좋아할만 하다지만
誰背知我說此心(수배지아설차심) 어느 누가 내 마음 말하는 것을 알아주랴.
라고 하였다.
돌아가 이를 기술하여 적었으니, 때는 곧 임술년(1922) 모춘(暮春, 음력 3월)이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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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순두류록(順頭流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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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곽태종(郭泰鍾)
주제 : 놀이와 유람, 유람과 감상
시기 : ( 미상 )
장소 : 경상남도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곽태종
참고자료링크 : (참고자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조선시대 화전민의 모습
지리산을 가는 도중에 보면, 이름난 집안이 사는 촌락들은 집들마다 꽃이 피고, 기름진 들판에서는 벼와 조, 기장 등의 곡물이 나고, 훌륭한 인물과 특출한 선비가 많아 세상에 이름을 날린다. 가히 진시황의 명령으로 불로초를 찾아 떠났던 서불이 돌아가지 않을 만한 낙토다.
그러나 하늘에는 음양(陰陽)이 있고 땅에는 화이(華夷)가 있어서, 사람 살아가는 데도 구역이 구분되는 것인가. 두류산을 따라 유람하며 두루 보면, 대개 천왕봉이 가까워질수록 산촌 사람들의 사는 형편이 어렵다. 바위굴을 집으로 삼고, 구릉 골짜기를 밭으로 삼아 참마를 심어 벼로 대신하고, 나물을 캐어 고기로 삼으며,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비로 머리를 감으며, 장차 한 해를 마치도록 부지런히 일하며 잠시도 쉬지 못하며 산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비록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몹시 고생을 하며 살더라도 어찌 전날 좋아하고 즐기던 것보다 못하겠는가? 오늘의 고생은 비록 나의 몸을 수고롭게 하지만 그 마음만은 진실로 달갑게 여기며 즐겁다. 전날의 이른바 백 가지 좋아함과 열 가지 즐거움은 내가 실로 즐거워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나의 심두(心頭)의 고기를 깎아낸 것이다. 지금의 입장에서 예전을 돌아보면 오늘 어려움은 어떠하며, 전날 즐거움은 어떠한가? 나의 밭을 내가 갈고 나의 술을 내가 마시며, 나의 책을 내가 읽는다. 새들이 지저귀는 것을 즐기고 사람이 타는 관현악을 좋아하며 밝은 달 아래 호탕하게 노래 부르는 것이, 이웃 벗이 칼을 품은 것보다 낫다. 또한 풍속에 따라 제 몸에 치장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누웠다 일어나 출입하며 마음껏 즐기니, 저 발도 편안히 하지 못하며 사는 자들에 비하면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산중에 사는 즐거움이 참으로 아득하도다.
◆ 원문 번역
이 해 3월에 내가 외롭게 지팡이와 나막신 행장(行裝)을 차려 두류산(頭流山)[ 지리산] 으로 들어가 한 면의 소략한 구경을 하였다. 예전에 산을 논하는 사람들이 방장산(方丈山)[ 지리산의 이칭] 은 장엄하나 수려하지 않다는 말이 참으로 그 비평을 잘했다고 하겠다.
높이 솟아 하늘에 닿아 호남과 영남의 사이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남국(南國)의 진산(鎭山)이 되고 둘레에 싸고 있는 것은 이름난 도시와 웅장한 고을이며, 작은 마을과 큰 동네로 이루어진 특이한 구역과 이름난 산과 넓은 시내가 전쟁을 하는 보루인 듯 근심스러운 마당을 볼 수 있다.
이름난 집안의 여러 촌락마다 꽃이 핀 크고 작은 집들과 절들, 기름진 들판의 두터운 땅에서는 벼와 조, 기장 등의 곡물이 난다. 인물도 훌륭하고 특출한 선비가 많아 세상의 줄기와 기둥이 되어 나라에 이름을 날린다. 그러니 참으로 우리 백성들이 낙토(樂土)를 얻어서 사는 것이라 하겠다.
곧 가까운 것부터 말하면, 울창하게 늘어선 것이 박달나무나 회나무, 푸른 등나무가 천수(天壽)를 누리며 늙어가는 것임을 알겠고, 우뚝하게 구름 밖에 솟은 것은 여러 봉우리와 겹겹이 가파른 산이 기이한 자태를 드러내는 모습임을 알겠다.
우뚝 솟아오른 바위와 깎아지른 벼랑, 우묵한 구렁과 깊숙한 웅덩이가 있으며, 달리는 길짐승으로는 곰과 호랑이, 이리와 노루, 원숭이 따위이고, 나르는 날짐승으로는 자고새와 매, 새매와 백로(伯勞, 때까치)가 울어대니 이 기이하고 괴상한 것이 많다.
신령한 약초로는 지초와 궁궁이, 산삼(山蔘)과 창출(蒼朮), 사향(麝香)과 황정(黃精) 등 신령한 잡초들이 많으니, 곧 이는 서생(徐生)이 진시황(秦始皇)을 속이고 함부로 왔다가 돌아가지 않은 [진(秦)나라의 방사(方士) 서복(徐福), 혹은 서불(徐巿)이 진시황(秦始皇)의 명에 따라 동남 동녀(童男童女) 수천 명을 이끌고 불로초(不老草)를 찾으러 바다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 고사.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는 음양(陰陽)이 있고 땅에는 화이(華夷)가 있어서 구역이 구분되어 벌써 하늘이 처음 열릴 때부터 화(華)는 중토(中土)에서 거처하고, 이(夷)에 사는 사람은 변두리 물가에 살며, 길짐승은 험한 곳에 기대어 굴을 파고 살아가니, 이는 각기 그 편한 곳을 얻어 안주(安住)하는 것이다.
내가 두류산을 따라 유람한 뒤로 두루 보고 다 터득했으니, 대개 천왕봉이 멀지 않거니와, 사람이 많이 살긴해도 매우 성글어 세 집의 큰 마을이나 열 사내 조차 만나기 어려웠다.
좁은 집에서 풀 [연초(煙草)]과 나무 [이것을 잘라 그릇을 만든다.]로 생업(生業)을 삼고 피나무와 도토리, 개암 따위를 먹으며 칠포〔葛布〕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산귀(山鬼)[ 산에 산다는 일종의 정령(精靈) ]를 동반자로 삼고 사슴을 벗으로 삼아 온갖 고생을 하는데, 쑥대같은 머리에 얼굴에는 때가 끼어 눈과 코도 트이지 못하니, 모습이 사람 같지가 않다.
그러나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이 하늘로부터 오성(五性)을 성품으로 부여받았으니 또한 실로 우리 선대 성왕(聖王)의 교육을 받은 가운데 사는 사람이다. 깊은 인자함과 두터운 혜택이 사람에게 깊이 파고 들어간 것이 거의 성품을 받은 처음부터 배태(胚胎)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가난함이 이와 같이 곤란하고 먹는 것이 이와 같이 나쁘며 입는 옷이 이와 같이 남루하고 고생이 이와 같이 심한데도 오히려 인의(仁義)를 좋아하고 명분(名分)을 지켜야 함을 알아 스승을 맞이하여 자식을 가르치되 자제(子弟)에게 효제(孝悌)로 훈도(訓導)한다. 이로써 사람의 성품이 선(善)함을 징험(徵驗)할 수 있으니, 우리 선왕(先王)이 교육한 남은 은택이 깊지 않다면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그 내력을 물으면 동서(東西) 간에, 혹은 의관을 갖춘 후예로서 세상을 피하려 하는 것이다. 아, 세상을 피하는 것이 사람을 피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공자(孔子)가 어진 사람은 세상을 피하고 그 다음은 땅을 피하고, 그 다음은 색을 피하며 그 다음은 말을 피한다고 하였음.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보임.] 사람을 피하는 것이 자신을 수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어찌 자신을 수양하고 자산을 보존하여, 우리 낙토를 사양하고 친척과 붕우의 많은 좋은 것과 허다한 즐거움을 버리고 높이 깊은 산으로 들어가 이처럼 온갖 고생스러운 일을 하지 않는 것인가?
또 인물이 나는 것이 각기 거처가 있어서 서로 침범하지 않으니 초목(草木)이나 조수(鳥獸), 산림(山林)이 이런 경우이고, 교룡(蛟龍)이나 어별(魚鼈), 천택(川澤)이 이런 경우이다.
오직 사람은 평평한 땅이 그가 사는 곳이니 나에게 살 땅을 잃고 살아라고 하는 것은 누가 그렇게 하겠으며, 누가 권장하겠는가? 지금 불행하게도 그 살 곳을 얻지 못하고, 그 낙토에 사는 것을 잃으며, 벼나 조를 먹는 것을 버린다면 사방을 떠도는 나머지 새나 짐승들이 거처할 곳을 빼앗아 사는 것이다. 아, 저 초목이나 조수도 천지의 조화(造化) 가운데 살아가는 만물이 아닌가? 그러니 사람이면 어느 누가 낙토에서 살고 진귀한 음식을 먹으려고 하지 않겠는가? 능히 이렇게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믿으며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 지금 사람들이 어찌 떠나지 않고 지친(至親)을 도리어 월(越)나라 사람만 같지 않게 여기고, 이웃 마을을 소원(疏遠)한 것이 더 나은 것만 같이 여기지 않으니, 몇 이랑의 농사를 지어서는 한 해를 살아갈 자본이 넉넉하지 않고, 백 냥의 엽전도 빌리기 어렵다. 시인(詩人)이 이른 바, ‘2월에 새로 뽑은 명주를 팔아 5월에 새 쌀을 사들이네. 〔二月賣新絲 五月糴新穀〕“라는 것이니,[ 당나라의 시인 섭이중(聶夷中)이 지은 ’상전가(傷田家)‘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 ]이것도 오히려 하지 못하는데 지금 이처럼 마지못할 일을 한다. 그러나 밑천으로 삼을 것은 다만 두 주먹뿐이다.
바위굴을 집으로 삼고 구릉 골짜기를 밭으로 삼아 참마를 심어 벼로 대신하고, 나물을 캐어 고기로 삼으며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비로 머리를 감으며, 장차 한 해를 마치도록 부지런히 일하며 잠시도 쉬지 못하니, 비록 천신 만고(千辛萬苦)하더라도 어찌 전날 좋아하던 것과 즐기던 바보다 낫겠는가? 오늘의 천신 만고는 바로 나의 힘을 수고롭게 하지만 그 마음만은 진실로 달갑게 여기며 즐거워하니, 전날의 이른 바 백 가지 좋아함과 열 가지 즐거움은 내가 실로 즐거워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의 심두(心頭)의 고기를 깎아낸 것이다. 지금의 입장에서 예전을 돌아보면 오늘 어려운 바는 어떠하며, 전날 즐거움은 어떠한가?
나의 밭을 내가 갈고 나의 술을 내가 마시며, 나의 책을 내가 읽는다. 새들이 지저귀는 것을 즐기고 사람이 타는 관현악을 좋아하며, 밝은 달 아래 호탕하게 노래 부르는 것이 이웃 벗이 칼을 품은 것 보다 낫다. 그리하여 제목을 수식하고 몸에 문채를 내는 풍속의 변화를 받지 않고 누웠다 일어나 출입하며 마음껏 즐기니 저 발도 편안히 하지 못하는 자들에 비하면 어떠한가?
산중에 즐거움이 참으로 아득하도다. 드디어 노래하기를,
山重重兮雲深(산중중혜운심) 산은 겹겹인데 구름이 깊고
澗潔潔兮樹陰(간결결혜수음) 시냇물 깨끗하니 나무 그늘지네.
念虎號兮晝沈(념호호혜주침) 호랑이가 부르짖다 낮에 잠잠함을 생각하니
甘此山兮曾尋(감차산혜증심) 이 산을 일찍 찾은 것이 다행일세.
採藭歸兮窮霒(채궁귀혜궁음) 궁궁이 캐어 돌아오니 구름이 흐릿한데
放雞犢兮陽林(방계독혜양림) 닭과 송아지 양지 숲에 풀어놓네.
以人間之可好(이인간지가호) 사람을 좋아할 만 하다지만
誰背知我說此心(수배지아설차심) 어느 누가 내 마음 말하는 것을 알아주랴.
라고 하였다.
돌아가 이를 기술하여 적었으니, 때는 곧 임술년(1922) 모춘(暮春, 음력 3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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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아래의 석굴, 승려들이 깨달음을 얻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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