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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에서 백성들을 걱정하다, 광대의 피리 소리와 승려의 춤으로 울적한 마음을 떨치다
1489년 4월 17일, 지리산을 유람중이던 김일손은 5리를 가서 묵계사에 이르렀다. 절은 두류산에서 가장 빼어난 사찰로 이름이 나 있었지만, 와서 보니 전에 듣던 것처럼 빼어나지는 않았다. 다만 절간이 밝고 아름다우며 사이사이 금실을 넣어 특이한 비단으로 청홍색으로 만든 부처의 가사와 거처하는 20여명의 승려들이 묵묵히 정진하는 모습이 금대암의 승려들같이 볼 만하였다.
조금 쉬었다가 말을 돌려보내고 지팡이를 짚고 왕대 숲을 헤치며 나아갔는데, 길을 잃고 헤매다가 간신히 좌방사(坐方寺)에 이르렀다. 거주하는 승려는 3, 4명뿐으로 절 앞의 밤나무가 모두 도끼에 찍혀 넘어져 있었는데, 승려에게 왜 이렇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한 승려가 말하기를,
“백성들 중에 밭을 일구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는데, 못하게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김일손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높은 산 깊은 골짜기까지 이르러 개간하여 경작하려 하는 것을 보면, 국가의 백성이 많아진 것인데, 그들을 부유하게 하고 교화시킬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조금 앉았다가 광대를 불러 생황과 피리를 불게 하여,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을 떨쳐버리려 하였다. 누더기 승복을 걸친 한 승려가 뜰에서 서성이다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이 배를 움켜잡고 웃을 만하였다. 드디어 그와 함께 앞 고개로 오르는데, 나무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서 그 위에 올라앉아 보니 앞뒤에 큰 골짜기가 있었다.
푸른 기운이 어스름한 저녁나절 생황소리가 피리와 어우러져 맑고 밝은 소리가 산과 계곡을 울려 정신이 상쾌해졌다.
흥이 다하여 바로 내려오면서 시냇가 넓은 바위에 앉아 발을 씻었는데, 이 날도 여전히 음산하여, 동상원사(東上元寺)에서 묵기로 하였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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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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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일손(金馹孫)
주제 : 경제와 재테크, 세금 부과
시기 : 1489-04-17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남도 하동군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김일손, 정여창, 김중돈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 조선말 농민의 피폐상
○ 조선말 농민의 피폐상
조선말 농민 피폐상은 원인은 삼정수탈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 체제가 주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이후 가혹하게 행해진 삼정수탈은 총액제 방식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극심한 조세수탈의 편중을 초래하였다. 당시 농민들은 한해 농사를 짓고도 전체 수확량의 2할을 겨우 손에 질뿐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서민지주나 부농층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조세부담에서 벗어났으며 이들이 내야 할 조세를 빈농층이 부담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농민층의 대응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균역부담을 지는 농민들은 서원의 노비가 되거나 세력 있는 양반의 노비가 되어 균역부담에서 벗어나기도 하였으며 관청에 신고도 없이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는 유리, 도망(진주의 경우 1858~1859년 2년 동안 전체 15,000호중 3,300호가 파산하였다.)하는 소극적 저항을 하기도 하였으며 탐관오리의 죄악상을 폭로하고 여론을 선동하는 괘서를 붙이거나 관청을 습격하는 등의 적극적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환곡의 기능은 흉년에 빈곤한 백성의 구제라는 구휼제도의 일종이기는 하였지만 오래된 군량미를 새 쌀로 바꾸는 기능을 동시에 가졌었다. 군현 창고에 보관된 환곡의 원곡중 반은 창고에 두고 나머지 반만을 농민에게 분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19세기에 가면 이러한 원칙이 무시되고 창고 안의 모든 곡식이 농민에게 분배되었다. 이것이 바로 진분화였다. 이는 중앙의 아문이나 지방관청에서 부족한 재정을 최대한의 농민수탈을 통해 메꾸려 함에 따라 이루어졌던 것이다. 환곡의 진분화에 따라 창고의 곡식은 줄어들게 되었고 환곡을 받은 농민들 중에서 계속되는 흉년으로 환곡의 이자는커녕 원곡도 갚지 못하는 농민이 늘어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수령과 결탁하여 행해지는 서리들의 중간횡령이 극성을 부렸다. 나아가 지방 관청에서는 중앙에 상납할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을 때 우선 창고에 있는 환곡으로 상납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19세기 중엽에 이르면 대부분의 군현에서는 창고에 한 톨의 곡식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허류화(虛留化)였다. 이러한 허류화의 가장 기본적 원인은 서리층의 중간횡령(포흠)이었다. 그들은 장부에만 받은 것으로 기록하고 농민들이 낸 환곡으로 사복(私服)을 채우기 일쑤였다. 때문에 장부상에는 환곡이 원액 그대로 있었지만 실제 창고에는 곡식이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이처럼 환곡이 허류화되어도 중앙관청에 납부해야 할 될 환곡의 이자나 지방 관청 경비로 쓰였던 환곡이자는 반드시 마련하여야 했다. 그러므로 농민들은 봄에 한 톨의 곡식도 만져보지 못한 채 서리들이 붓만으로 분배한 양에 따라 가을에 이자곡을 바쳐야 하는 백상(白上)이 보편화되었다. 환곡은 정규적인 부세로서 이 시기 지방관청에서 주요한 농민수탈의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환곡수탈을 훨씬 가중시킨 것은 환곡의 분배, 수납 과정에서 관청이 화폐경제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지방관청에서는 원곡을 곡식이 비싼 봄에 화폐로 분배하여 곡식이 싼 가을에 미곡으로 징수하는 전환(錢還)을 시행하여 그 차액을 착복하는가 하면 곡물 가격의 높고 낮음에 따라 감사가 다른 지방의 곡식을 이무(移貿:지방의 관원이 자기 고을의 환곡을 비싸게 팔고 그대신 값이 싼 다른 고을의 곡식을 사들여 사사로이 이익을 채우는 일)하여 중간이득을 취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이방운(1761-?)이 그린 〈빈풍도〉는 조선 후기 양반지주들이 살아가는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박영대, 〈우리 그림 백가지〉 현암사) 너른 골짜기에 담장을 두르고 별당 안에서 주인이 손님을 대접하고 있다.
담장 안에서 주인과 친구들이 물소뿔 잔을 들고 염소 잡아 술안주 하며 문사철(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논하고 시서화를 즐기며 음풍 농월하려면 머슴과 노비, 하인 하녀들이 거들어야 한다. 조선시대 양반 지주들이 씨앗 한 번 뿌리지 않고, 거름 한 번 내지 않고 김 한 번 매지 않고, 타작 한 번 안하고도 살아갈 수 있던 것은 논밭에서 농부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겨울까지도 허리가 휘어지도록 뼈가 빠지도록 일을 하고 ‘병작반수’ , ‘분반타작’으로 수확물의 반 이상을 가져다 받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하는 농부들은 자기들이 먹고 살려고 일을 한다. 그 일이 일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먹여 살리는데, 정작 자신들은 먹고 살기에도 힘들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5리를 가서 묵계사에 이르렀다. 절은 두류산에서 가장 빼어난 사찰로 이름이 나 있었지만, 와서 보니 전에 듣던것 처럼 빼어나지는 않았다. 다만 절간이 밝고 아름다우며 사이사이 금실을 넣어 특이한 비단으로 청홍색으로 만든 부처의 가사와 거처하는 20여명의 승려들이 묵묵히 정진하는 모습이 금대암의 승려들같이 볼 만하였다. 조금 쉬었다가 말을 돌려보내고 지팡이를 짚고 왕대 숲을 헤치며 나아갔는데, 길을 잃고 헤매다가 간신히 좌방사(坐方寺)에 이르렀다. 거주하는 승려는 3, 4명뿐으로 절 앞의 밤나무가 모두 도끼에 찍혀 넘어져 있었는데, 승려에게 왜 이렇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한 승려가 말하기를,
“백성들중에 밭을 일구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는데, 못하게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내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높은 산 깊은 골짜기까지 이르러 개간하여 경작하려 하니, 국가의 백성이 많아진 것인데, 그들을 부유하게 하고 교화시킬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조금 앉았다가 광대를 불러 생황과 피리를 불게 하여,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을 떨쳐버리려 하였다. 누더기 승복을 걸친 한 승려가 뜰에서 서성이다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이 배를 움켜잡고 웃을 만하였다. 드디어 그와 함께 앞 고개로 오르는데, 나무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서 그 위에 올라앉아 보니 앞뒤에 큰 골짜기가 있었다. 푸른 기운이 어스름한 저녁나절 생황소리가 피리와 어우러져 맑고 밝은 소리가 산과 계곡을 울려 정신이 상쾌해졌다.
흥이 다하여 바로 내려오면서 시냇가 넓은 바위에 앉아 발을 씻었는데, 이 날도 여전히 음산하여, 동상원사(東上元寺)에서 묵기로 하였다. 한밤중에 깨었는데, 별과 달빛이 환하여 깨끗하고 두견새가 어지럽게 울어대 정신이 맑아져 잠이 오지 않았다. 나의 서형(庶兄) 김형종(金亨從)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일은 천왕봉에 상쾌한 마음으로 올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네.”
라고 하여, 일찌감치 행장을 꾸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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