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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궁의 훙서를 알리는 예조의 관문이 도착하자 상례의 절차를 따르다
1751년 11월 19일, 조재호는 현빈궁(賢嬪宮)이 11월 14일에 훙서(薨逝)했다는 예조(禮曹)의 관문(關文)이 식사 후에 도착했기 때문에 천담복(淺淡服)을 입고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흑각대(黑角帶)를 두르고 가마 타고 객사에 가서 향을 피우고 망곡(望哭)하였다. 영장(營將)과 판관(判官)도 함께 참여하였다. 다시 관풍각에 앉아 있으니 판관이 문안하였다.
11월 20일, 맑음. 관풍각(觀風閣)에 머물러 있으며 공사소지(公私所志)를 결재하지 않았다.
11월 21일, 맑음. 관풍각(觀風閣)에 머물러 있으며 공사소지(公私所志)를 결재하지 않았다.
11월 22일, 맑음. 이 날은 곧 현빈궁(賢嬪宮)이 훙서(薨逝)했다는 부음을 들은 후, 제 4일째이니 성복(成服)하는 날이다. 동이 틀 무렵 가마 타고 객사 문 밖에 나가서 포사모(布紗帽), 포각대(布角帶), 천숙마(穿熟麻), 포단령(布團領)으로 고쳐 입고 전정(殿庭)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재배하며 슬픔을 곡진히 하였다. (…) 애례(哀禮)를 마친 뒤에 관아로 돌아왔는데 공사소지(公私所志)를 결재하지 않았다.
11월 23일, 맑음. 관풍각(觀風閣)에 앉아 공사소지(公私所志)를 결재하였다. 조회(朝會)를 실시한 것은 예조(禮曹)의 관문(關門)에 따른 것이다. 현빈궁(賢嬪宮) 상(喪)에 성복(成服)한 후에는 내직의 백관과 각 도의 외관들이 길복(吉服)을 착용하라는, 임금께서 결재하신 관문이 내려왔기 때문에 이 날 비로소 개좌(開座)를 하였다.
11월 29일, 맑음. 식사 후에 대전 진위전문(大殿陳慰箋文) 감봉 차사원(監封差使員) 창락찰방(昌樂察訪) 조경택이 들어와서 배알하고 전문(箋文)을 받들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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