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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부를 많이 동원하여 시신을 건지도록 하였다
1752년 2월 18일, 창원부 병선의 사공과 격군으로서 북관에 운반해갈 곡식으로 진주(晉州)의 곡식을 받아서 싣고 색리, 사공, 격군 모두 15명이 같이 배를 타고 출발하였다가 풍랑을 맞아 난파되어 곡물은 모두 물에 빠지고 8명은 죽고, 7명은 살아남게 되었다. 죽은 사람은 진주 색리 김순은(金舜殷) 나이 25세, 사공 물선군(物膳軍) 임악(林岳) 나이 42세, 격군 양인 유선(劉先) 나이 58세, 금위군(禁衛軍) 정정의(鄭正儀) 나이 43세, 사노(寺奴) 시돌이(時乭伊) 나이 43세, 칠장보(漆匠保) 김석제(金石諸) 나이 18세, 봉군(烽軍) 박선학(朴善鶴) 나이 32세, 봉군(烽軍) 장귀발(張貴發) 나이 25세 등 8명인데, 그 가운데 사노인 시돌이의 시신이 떠서 나왔기에 나룻가에 임시로 매장하였고 나머지 7명의 시신은 끝내 건져내지 못했기에 잠수부를 많이 동원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수색하고 건지도록 지시를 내린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영영일기(嶺營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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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재호(趙載浩)
주제 : 지방행정, 관찰사, 해난사고
시기 : 1752-02-18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남도 창원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조재호, 김순은, 임악, 유선, 정정의, 시돌이, 김석제, 박선학, 장귀발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웹진 담談 4호
조선왕조실록
◆ 우리나라 잠수어업의 역사
잠수기를 이용한 잠수법은 1870년대에 일본인이 남해안과 제주도에 도래하여 잠수기어업을 개시하였으니 『영영일기』에서 언급되는 잠수부는 맨몸으로 물에 들어가 잠수를 하는 나잠업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맨몸으로 잠수하는 나잠어업의 역사는 매우 길다. 당(唐)의 진장기(陳藏器)가 저술한 『본초습유(本草拾遺)』에 의하면, 신라의 해인(海人)은 허리에 새끼줄을 매고 잠수하여 신라의 깊은 바다에서 나는 대엽조(大葉藻)를 채취한다고 하였다. 이는 통일신라시대에는 나잠업이 행하여지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또한 남자였을 것이다. 잠수부라고 할 때 흔히 떠올리는 것이 제주도의 잠녀(潛女)라고 불리던 해녀들이지만, 조선시대에 뭍에서 여자들이 잠수를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하여도 나잠업에는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종사하고 있었다. 『순조실록』에 의하면, 1825년(순조 25) 좌의정 이상황(李相璜)이 어민의 참상을 논한 가운데 추운 겨울에 전복과 미역을 채취하기 위하여 남녀가 알몸으로 해저에 잠수한다는 구절이 보인다.
제주도에서 전복을 채취하던 남자들을 가리켜 포작간(鮑作干)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바닷물 속에 들어가 조개·미역 따위 해산물을 채취하거나 국가의 각급 제사에 쓰는 어포(魚鮑)를 떠서 소금에 말려 진상하는 신역(身役)을 담당한 사람으로 일정한 거처가 없었다. 혹독한 신역을 견디다 못해 뭍으로 나와 해안지대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들이 사용하는 포작선(鮑作船)은 가볍고 빨라 전선(戰船)으로 이용하기도 하였으며 격군(格軍)으로 동원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포작(匏作)에 대해서는 “보자기의 잘못, 보자기를 한자를 빌려서 쓴 말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보자기를 “바다 속에 들어가서 조개, 미역 따위의 해산물을 따는 일을 하는 사람. 해인(海人)․포척(鮑尺)․해녀(海女)”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보재기는 ‘잠수부’의 방언(경남)이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천정일(泉靖一)의 『제주도』에서는 중국이나 일본의 고문헌에는 제주의 포작인에 해당하는 사람을 ‘잠수사(潛水士)’라고도 지칭하고 있다고 한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북관(北關)으로 옮겨가는 선운선(先運船) 2척이 장기현(長鬐縣) 청하(淸河) 경계에 이르러 난파된 연유를 이미 금히 보고드렸거니와 이번에 도착한 흥해 군수(興海郡守) 구세의(具世義)의 첩정(牒呈)은, 『이번 달 9일 미시(未時)쯤 흥해군(興海郡) 동하면(東下面) 소한진(小汗津)의 관리들이 와서 고하기를, 「아무 모양의 배가 먼 바다에서부터 풍랑에 밀려 바다 한가운데서 떴다 가라앉았다 하거늘 여러 척의 작은 배를 출발시켜 급히 가서 구출하니 생존자는 사공(沙工), 격군(格軍)이 겨우 7명인데 말이 통하지 않고 거의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우선 죽을 먹여서 살려내고 소생하기를 기다렸다가 곡절을 물어 보니 경상우도(慶尙右道) 창원(昌原)의 병선(兵船)이 진주(晉州)에서 옮겨가는 벼를 싣고 북관으로 들어가다가 난파되어 표류하였습니다.」하므로 구원, 치료할 뜻을 와서 고하였습니다. 제가 즉시 달려가서 조사해 보니 선척은 과연 병선으로 겨우 본판(本板)만 남아 있을 뿐이고 앞뒤 삼판(三板)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곡물은 건져내게 하였는데 합하여 73섬 6말 5되입니다. 생존한 사공 등에게 난파한 곡절을 심문한 내용에는, 「저희들은 창원부 병선의 사공과 격군인데 지금 북으로 운반해갈 곡식으로 진주(晉州)의 벼 350섬을 받아서 싣고 색리, 사공, 격군 모두 15명이 같이 배를 타고 출발하였습니다. 몇 달 동안 바람에 막혔다가 겨우 울산 구미진(九味津)에 도착하여 몇 달 동안 정박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달 6일에 비로소 순풍을 만나 장기(長鬐) 군영포(軍營浦)에 도착하여 하룻밤 머문 뒤 8일에 그대로 영해현(寧海縣) 죽산진(竹山津)을 향해 먼 바다로 배를 출발시켜 바람을 타고 돛을 달아 밤새 전진하였습니다. 거의 영해현의 경계에 이르렀지만 죽산진에 채 못 미쳤고 9일 축시(丑時)쯤 동북풍이 급하게 일어나서 파도가 하늘까지 일렁이어 배를 돌려 나루로 들어가기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풍랑에 맞아 치목(鴟木)이 먼저 꺾이고 삼판(杉板)이 또 떨어지고 곡물은 모두 물에 빠지고 색리, 사공, 격군 8명이 또한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저희들 7명은 풍랑에 밀려 이 나루의 근처에 이르렀다가 사람들에게 급히 구조되어 과연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하였습니다. 그 송부한 책자에 기록되어 있는 격군들을 이름대로 점고하고 살펴보니, 창원(昌原)의 격군 윤화득(尹禾得), 김대악(金大岳), 황진강(黃進江), 김작은놈이[金自隱老未], 이천이(李千伊), 안연락(安連樂), 이악선(李岳先) 등 7명은 생존하였습니다. 진주 색리 김순은(金舜殷) 나이 25세, 사공 물선군(物膳軍) 임악(林岳) 나이 42세, 격군 양인 유선(劉先) 나이 58세, 금위군(禁衛軍) 정정의(鄭正儀) 나이 43세, 사노(寺奴) 시돌이(時乭伊) 나이 43세, 칠장보(漆匠保) 김석제(金石諸) 나이 18세, 봉군(烽軍) 박선학(朴善鶴) 나이 32세, 봉군(烽軍) 장귀발(張貴發) 나이 25세 등 8명은 물에 빠져 죽었고 그 가운데 시돌이의 시신은 떠서 나왔기에 나룻가에 임시로 매장하였습니다. 7명의 시신은 끝내 건져내지 못했기에 잠수부를 많이 동원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수색하고 건지도록 하였습니다. 건져낸 곡물은 겨우 58섬 6말 5되였기에 살펴서 검사하고 말렸습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과 곡물을 수색해 건지는 사이에 날짜가 지체된 연유를 아울러 급히 보고합니다.』하는 첩정이었습니다. 이전선(移轉船)이 침몰했다는 보고가 이와 같이 잇따르고 물에 빠져죽은 사람이 무려 8명이나 되며 건져내지 못한 곡물이 또 290여 섬입니다. 바람 분 뒤에 배를 띄우는 것은 원래 뱃사람들이 꺼리는 일인데 조정의 명령에 몰리고 북녘의 진휼이 급하여 억지로 책망하여 몰아보냈다가 이런 의외의 환란이 생겼으니 남북녘 백성들의 일이 모두 몹시 애통할 정도가 아닙니다. 건져내지 못한 시신이 또 7명이나 되는 까닭에 지방관과 인근 고을에도 각별히 엄하게 신칙하여 건져내도록 기약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의 처자(妻子)는 원적지(原籍地)의 관아에서 특별히 구휼하라고 또한 분부하였습니다. 건져낸 곡식은 말리도록 하여 더해서 싣고 들여보낸 후에 뒤이어 보고하고 연유를 아울러 빨리보고할 일이기에 전차(詮次)를 아룁니다. ■ 임신년(1752) 2윌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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