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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100주년을 맞은 가문의 학자, 그의 추모 사업에 힘써줄 것을 문중에 호소하다
분강서원 건립을 위해 1699년 6월 2일 인근 문중 일가에
공지문[通文]
을 보냈다. 특히 서로 나누어 맡을 재정적 분담금을 분명하게 밝혀 보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 우리 분천(汾川) 일대는 바로 선조(先祖) 효절공(孝節公)께서 대대로 살아오신 옛 마을이니, 남아 전해오는 기풍과 향기가 잠시 머물다가 거쳐간 보통 지역과는 전혀 다릅니다.
바위 기슭 위에 애일당이 우뚝 높게 서 있는데, 세대가 점차 멀어지고 자손이 날로 교체되어, 장차는 평천(平泉) 서업(緖業)이 마침내 사라져 전해지지 못할 형편이 될 것이니, 이 어찌 후손들이 깊이 부끄러워하고 듣는 사람들이 다 함께 개탄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이에 애일당 언덕에 알맞은 땅을 살펴 정사 하나를 창건해서 추모의 정성을 부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안은 자손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또한 한미하여 제각각 생업을 제대로 꾸려가지도 못하는 형편인데, 아무 것도 없이 일을 시작하였으니 어찌 크게 걱정하고 염려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먼저 상의를 해서 다음과 같이 분담하기로 하고 감히 알려 드리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집안사람 모두가 한 마음으로 호응하여 기한 내에 거두어 본소(本所)로 보내주셔서 큰 일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운운하였다.
나누어 맡을 몫은 한 사람 당 돈 1냥, 쌀보리 1말[斗], 술 1동이[圓]이고, 집안 형편에 따라 조금 더하고 덜함이 없지 않을 것이며, 또 가을걷이 때를 기다려 추가로 부담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7월 2일 예안현 이외에 사는 문중 일가들에게 보낸 공지문은 분강서원 건립의 당위성을 중심으로 알렸다.
엎드려 말씀드립니다. 저희들이 선조 효절공을 위하여 애일당 언덕에 정사를 하나 창건하여 그 당시 거처하시던 곳이 백대 후에도 사라지지 않도록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에 큰일을 벌여 일을 성취할 단서가 없으니, 저희들의 깊은 걱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이 막중한 일을 시작하면서 우리 일가들 간에 알리지 않을 수 없어서 이에 감히 통고합니다.
7월 11일 원근
외족(外族)
에게 보낸 공지문은 이 일의 중요성과 당위성, 그리고 물적·인적 지원을 호소하는데 중심을 두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상을 위하는 정성이 내파인가 외파인가에 따라 차이가 없고, 선조를 존숭하는 마음이 멀고 가까움에 따라 다르지 않습니다. 아, 우리 선조 효절공께서는 대대로 선성(宣城)의 분천리(汾川里)에 사셨고, 애일당은 바로 그 어버이를 즐겁게 봉양하시던 곳입니다. 그 자서(自序)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퇴도(退陶) 이황(李滉) 두 선생과 주고받은 글에 근거해 보면 이런 사실이 이미 자세합니다. 효절공이 세상을 떠나신 지 이제 100여 년이 되어, 세대는 점점 멀어지고 자손은 날로 바뀌어가건만, 애일당에는 신령한 빛이 우뚝 서려있는 듯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를 갖추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그 유적을 돌아보며, 방황하고 배회하여 차마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까지 하니, 그 후손된 사람들의 비통한 심정이야 또한 어떠하겠습니까? 애일당 언덕에 정사를 하나 세워 옛 영당의 제도를 본받고자 한 지가 오래 되었건만, 여태껏 미루며 시작하지를 못하였습니다.
근래에 내외의 자손들이 서로 더불어 함께 도모하여 비로소 이렇게 의견을 모았지만, 어려운 시절에 큰일을 벌여 일을 진행할 단서가 없을 듯하니, 이 어찌 내외 자손 된 자들이 함께 걱정하고 염려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감히 이런 사정을 멀고 가까운 곳의 외파에 알려드리니, 엎드려 바라건대, 여러분들께서는 한 마음으로 호응하여 각각 재물과 인력을 출연(出捐)해서 조상을 위한 이 막중한 일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외족에게 보낸 공지문에는 뒤에 이 일에 찬성하는 예안현 원근의 외족들의 서명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여러 고을의 외족들에게 이 일이 단순히 영천이씨 문중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예안현 인근에 사는 그들 문중 사람들과 논의해서 결정한 것이라는 의미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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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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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분강서원창원일기(汾江書院創院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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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미상
주제 : 마을과 서원, 부조와 모금
시기 : 1699-06-02 ~ 1699-07-11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서원일기
인물 :
참고자료링크 : (참고자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서원 건립을 위한 재정 마련
이 시나리오에는 분강서원 건립을 위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원근의 문중과 외족들에게 각기 어떠한 내용의 글이 작성되었는지를 담고 있다. 원근의 문중 일가에게는 분담금이 분명하게 적시되었지만, 예안현 이외에 살고 있는 문중 일가에게는 분강서원 건립의 당위성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원근의 외족에게 보낸 공지문에는 예안현에 사는 그들 문중 사람들의 서명을 병기하여 이것이 일방적으로 영천이씨 문중에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논의를 통해 허락을 받은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만큼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외족들에게 보낸 공지문에는 이 일의 당위성 뿐만 아니라 재정적 지원에 대해서도 간절하게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정보
七月 十一日 ······ ○邀請地師任基 相地于愛日堂南 乃黃應祥古基也 坐向則乾巽也
◆ 원문 번역
1699년(숙종25) 6월 2일 문중 사람들이 애일당愛日堂에 모여 처음으로 정사精舍 창건을 발의하였는데, 자문을 구하며 의논하자, 다들 찬동하였다. 이틀 뒤 이장휘‧이장희‧이명하‧이동필 등이 사천재사沙川齋舍로부터 도곡재사道谷齋舍로 숙소를 옮겨, 곧 이어 통문을 발송해서 문중 사람들에게 알리고, 또 임원을 나누어 정하였다. 다음 날 일을 끝내고 돌아갔다. 통문에 말하기를, 아, 우리 분천汾川 일대는 바로 선조 효절공孝節公께서 대대로 살아오신 옛 마을이니, 남아 전해오는 기풍과 향기가 잠시 머물다가 거쳐간 보통 지역과는 전혀 다릅니다. 바위 기슭 위에 애일당이 우뚝 높게 서 있는데, 세대가 점차 멀어지고 자손이 날로 교체되어, 장차는 평천 서업緖業이 마침내 사라져 전해지지 못할 형편이 될 것이니, 이 어찌 후손들이 깊이 부끄러워하고 듣는 사람들이 다 함께 개탄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이에 애일당 언덕에 알맞은 땅을 살펴 정사 하나를 창건해서 추모의 정성을 부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안은 자손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또한 한미하여 제각각 생업을 제대로 꾸려가지도 못하는 형편인데, 아무 것도 없이 일을 시작하였으니 어찌 크게 걱정하고 염려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먼저 상의를 해서 다음과 같이 분담하기로 하고 감히 알려 드리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집안사람 모두가 한 마음으로 호응하여 기한 내에 거두어 본소로 보내주셔서 큰 일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운운하였다. 나누어 맡을 몫은 한 사람 당 돈 1냥, 쌀보리 1말[斗], 술 1동이[圓]이고, 집안 형편에 따라 조금 더하고 덜함이 없지 않을 것이며, 또 가을걷이 때를 기다려 추가로 부담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임원 도감은 이장희‧이명하‧이백업, 유사는 이동필‧이기상‧이성장, 기와 굽는 일은 이여필‧이복‧이기백‧이필영‧이감, 재목 공급은 이몽필‧이명필‧이숙‧이성일‧이중영‧이언영‧이문‧이조‧이우영‧이성중‧이성대‧이기‧이여백이 맡았다. 7월 2일 애일당에 모여, 7월 11일 날 내외 후손들이 함께 모여 일을 의논하기로 날짜를 확정하였다. 외지에 사는 문중 일가들에게 통문을 발송하였다. 풍기‧순흥‧문경‧영해‧예천 지역인데, 통문 내용은 위와 동일하다. 또 영천‧안동‧영양 등 방계 종친들이 살고 있는 곳에 통문을 보냈다. 그 통문에, 엎드려 말씀드립니다. 저희들이 선조 효절공을 위하여 애일당 언덕에 정사를 하나 창건하여 그 당시 거처하시던 곳이 백대 후에도 사라지지 않도록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에 큰일을 벌여 일을 성취할 단서가 없으니, 저희들의 깊은 걱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이 막중한 일을 시작하면서 우리 일가들 간에 알리지 않을 수 없어서 이에 감히 통고합니다. 라고 하였다. 또 대구와 경주의 외손인 양씨와 임씨 두 집안에 통문을 발송하였다. 그 통문에 말하기를 “조상을 위하는 정성이 친손인가 외손인가에 따라 차이가 없고, 선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멀다고 해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운운하였다. 7월 11일 아침 식사 전에 이백업이 왔다. 아침 식사 후에 찰방 이극철 어른·예천 이고·김익달·이진표·김운·이관표·김주한·김○·윤상좌·김태국·박중환·이광·오시창·이재창·김도안·김두남·이두로·이규로가 왔다. 김중국이 지나는 길에 참석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갔다. 이동식은 날이 저문 뒤에 왔다. 다른 지역 외파에 글을 발송할 일을 좌중에 알렸더니, 한결같은 소리로 다 함께 찬동하였고, 내외의 자손들이 모두 그 통문에 서명하였다. 그 통문에 말하기를, 조상을 위하는 정성이 내파인가 외파인가에 따라 차이가 없고, 선조를 존숭하는 마음이 멀고 가까움에 따라 다르지 않습니다. 아, 우리 선조 효절공께서는 대대로 선성의 분천리에 사셨고, 애일당은 바로 그 어버이를 즐겁게 봉냥하시던 곳입니다. 그 자서自序와 회재 이언적·퇴도 이황 두 선생과 주고받은 글에 근거해 보면 이런 사실이 이미 자세합니다. 효절공이 세상을 떠나신지 이제 100여 년이 되어, 세대는 점점 멀어지고 자손은 날로 바뀌어가건만, 애일당에는 신령한 빛이 우뚝 서려있는 듯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를 갖추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그 유적을 돌아보며, 방황하고 배회하여 차마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까지 하니, 그 후손된 사람들의 비통한 심정이야 또한 어떠하겠습니까? 애일당 언덕에 정사를 하나 세워 옛 영당의 제도를 본받고자 한 지가 오래 되었건만, 여태껏 미루며 시작하지를 못하였습니다. 근래에 내외의 자손들이 서로 더불어 함께 도모하여 비로소 이렇게 의견을 모았지만, 어려운 시절에 큰일을 벌여 일을 진행할 단서가 없을 듯하니, 이 어찌 내외 자손 된 자들이 함께 걱정하고 염려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감히 이런 사정을 멀고 가까운 곳의 외파에 알려드리니, 엎드려 바라건대, 여러분들께서는 한 마음으로 호응하여 각각 재물과 인력을 출연해서 조상을 위한 이 막중한 일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이양직 등 60여 명이 서명하였다. 통문 일곱 통을 베껴서 여러 고을에 나누어 발송하였다. 유숙한 사람은 찰방 이극철·이진표·이관표·이백업·이두로·김도안이었다. 모인 장소는 애일당이었다. 지관 임기를 초청하여 애일당 남쪽에 터를 잡았으니, 곧 황응상黃應祥의 옛 터이다. 좌향은 건좌乾坐 손향巽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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