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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자리 송사 때문에 길을 나서다가 물에 빠져 죽은 시아버지의 원한, 며느리가 풀어드리다
1806년 5월 3일, 임천서당 회원인 나천(羅川)의 조원열(趙元烈)이 산송을 하러 가던 길에 그만 물에 빠져 죽었다. 애통하고 참담한 이 소식이 임천서당 중건 현장에까지 전달되었다.
그 다음날인 5월 4일에 임천서당 회원 일부가 약속한 대로 중건 현장에 모여 전병과 떡, 그리고 술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던 때였다. 갑자기 한 상놈이 두건이 벗겨진 채로 급히 와 절을 하며 하회 서방님을 찾았다. 하회 서방님은 김명운(金明運)을 일컫는 말이었다. 김명운은 참석하지 않았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급한 행색을 보고 궁금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이에 그 하인은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소인은 나천에 사시는 조 생원 댁 종입니다. 소인의 상전께서 어제 산송을 하러 가던 길에 물에 빠져 돌아가셨습니다. 시신을 찾아 수습한 후, 청상으로 계시던 부인께서 원통해하시며 친히 소송 상대편 놈의 최근 무덤과 예전에 투장한 무덤 3기를 파내고 곧바로 관가에 가서 직접 고발하였습니다.”
청상은 곧 김명운의 사촌 여동생이였고, 익사한 조원열의 며느리를 말한다. 이 사연을 듣고 모두들 놀라 슬퍼하였고, 그 며느리의 효성과 정열(貞烈)을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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