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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산을 자랑스럽게 여기다
김명범(金明範) 조선 사람들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중국의 산에 비해 조선의 산이 뒤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서불(徐巿)의 전설에 나오는 삼신산(三神山)도 조선의 산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서불은 진시황을 설득해서 어린 남녀 3천 명을 데리고 일본에 도착했다는 설화가 있다. 신유한(申維翰)은 「해유록(海遊錄)」에서 일본의 부사산(富士山)과 상근령(箱根嶺), 반대암(盤臺巖)을 삼신산으로 보았으나, 김명범은 조선의 지리산, 풍악산(楓岳山), 한라산이 삼신산이라는 생각이었다. 삼신산은 해동(海東 : 조선을 지칭)에 있다는 이야기가 많으며, 두보(杜甫)의 시에 붙어있는 주석에도 방장산이 대방군(帶方郡)의 남쪽에 있다고 하였는데, 대방은 남원의 옛 이름이기 때문이다. 즉, 지리산이 곧 방장산인 것이다. 그는 세 산 중에서도 남원에 있는 풍악산이 가장 아름다워서 중국 사람들도 보고 싶어 할 정도인데, 가까운 곳에 있는 영남 사람들이 이를 보러가지 않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하였다.

그가 보기에 가야산은 삼신산에 뒤지지 않는 명산이었다. 가야산은 작은 금강산(小金剛)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우며, 유명한 절인 해인사가 있고 신라시대의 학자인 최치원의 유적이 있으며 매년 봄꽃이 필 때나 가을에 단풍이 들 때면 시인과 학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김명범은 어릴 때 가야산 아래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가야산을 직접 유람한 일은 없었다. 그래서 매일 같이 가야산의 푸른 경치를 보았어도 가야산에 대해서 누군가가 묻는다면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70대를 앞둔 어느 해 9월에 이르러서야 친구 노계심(盧啓心)의 권유로 가야산을 둘러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김명범은 노계심의 권유가 자신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반가웠다. 김명범과 노계심을 비롯한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출발하여 저녁에 용기암(龍起菴)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길이 험하여 나이든 김명범의 몸으로는 산행이 힘들었다. 중건된 일요사(日曜寺)를 보고나서 발길을 돌리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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