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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정상에서 인간의 욕심에 대해 생각하다
1696년 7월 6일, 가야산을 등반하던 이시선은 쉬다 가다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가야산 정상에 올랐다. 그가 오른 봉우리는 장군봉(將軍峰)이었다. 이 봉우리는 적석봉(積石峰)과 장장봉(將將峰)과 마찬가지로 바위보다는 작은 돌들 사이에 소나무들이 자라있는 형태였다. 사람들이 ‘신선이 바둑과 장기를 두던 곳’이라고 일컫는 유명한 장군봉의 자갈밭이었다.
이 자갈밭에는 “이 곳을 유람할 때에는 반드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뒤에 와야만 한다. 아니면 안개가 끼거나 비가 내리거나 다른 나쁜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시선은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일단 행동을 조심하기로 마음먹었다.
안내를 맡은 승려가 또 하나의 옛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바람이 불면 자갈 사이에 바람이 들어가
비파(琵琶)
를 연주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파자갈이라고 합니다. 또 자갈 사이에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이를
신선의 복숭아(仙桃)
라고 합니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은 보았으나 열매가 맺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라는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조카 손자들이 자갈밭에서
석이(石耳)버섯
을 캐왔다. 석이버섯의 모양을 보니 거칠고 검은 부분은 안에 들어가 있고 매끄럽고 흰 부분은 바깥에 있었다. 이시선은 겉은 부드럽고 속은 거친 모양을 보고 마치 이단(異端)이 참된 가르침을 어지럽히는 모습과 같다고 생각했다.
승려가 이번에는 산등성이의 바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바위에는 석이버섯이 많이 납니다. 옛날에 보림암의 승려가 석이버섯 10여 송이를 캤다고 합니다. 그 후에 제자들을 데리고 석이버섯을 캐러갔습니다. 다른 승려가 따라오자 자신이 석이버섯을 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석이버섯이 있다고 하여 보낸 후에 자기들만 석이버섯을 잔뜩 캤습니다. 다른 곳으로 갔던 승려가 멀리서 석이버섯이 그곳에 있는지 큰 소리로 묻자 없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만 말이 끝나자마자 바위에서 떨어져 결국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석이버섯이 많이 나는 저 바위에는 아무도 가까이 가려하지 않습니다.”
이시선은 당시 세상에도 이 이야기에 나오는 승려처럼 욕심을 탐하는 행동을 취하는 이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유가야산기(遊伽倻山記)
전체이야기보기
저자 :
이시선(李時善)
주제 : 옛 이야기
시기 : 1696-07-06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남도 합천군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이시선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 이시선의 자유로운 학문적 경향
이시선의 문집 「송월재집(松月齋集)」은 일반 문집이 문장, 시, 상소문 등 문체별로 구성된 것과 다른 체제로 이루어져있다. 유학 경전에 대한 자신의 평가와 해석, 새로운 방식의 역사서술, 소설적인 형태의 철학서술 등 여타 조선시대 학자들과는 구분되는 독특한 구성과 문체로 구성되었다. 즉 그의 학문적 경향은 박학주의, 즉 세상의 모든 사물과 사상에 대한 방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한 학문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이시선은 어릴 때부터 호방한 기질을 가지고 과거시험이나 세속적인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 유학자들이 기본으로 여기는 유학 경전은 물론이고 지리·복술(卜術)·역사서 등을 일정한 스승 없이 섭렵하여 스스로 깨우쳐나갔다. 당시 다른 곳에서 공부를 배우고 있던 둘째 형이 그러한 이시선을 걱정하여 논어의 몇 부분을 뽑아 그 뜻을 묻자 막힘없이 이야기하여 놀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평생 동안 홀로 공부하면서도 ‘바가지에 콩알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置匏投豆)’ 치열한 자세를 유지했다. 또한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남에게 이를 구하지 않겠노라”라고 선언할 정도로 확고한 원칙을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정신은 그의 삶에도 반영되었다. 당시에 유행하던 문장을 멀리하였고 기발한 생각을 담아낸 글들을 남겼는데, 이는 독자들이 이시선이 하고자하는 말이 무엇인지 판단하게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의 여행기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옛 이야기에 대한 관심과 그에 대한 냉철한 평가는 이러한 자유로운 정신세계,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철저했던 학문적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원문 번역
동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를 우러러 보니, 이것이 바로 가야산이다. 풀을 헤치고 올라가니 다리 힘이 비록 피곤하나 자주 다리를 쉬었다. 자주 쉬니 곧 힘이 생겨서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이 정상과) 적석봉(積石峰)과 장장봉(將將峰)의 세 정상이 마찬가지여서 큰 바위도 없고 지표면의 흙도 없으며 초목도 없다. 오직 두 곳에는 노송과 해송이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고 있다. 또 여러 곳에 자잘한 돌들이 자리를 펼쳐 놓은 듯 평평하게 퍼져있다. 세속에서 말하길, ‘신선이 바둑과 장기를 두던 곳’이라 하니 이곳이 바로 가야산의 장군봉(將軍峰)의 자갈밭이다. 산속에서 경치를 바라보니 실제로 눈을 놀랠만한 기이한 형상은 없으나 자못 산을 유람하면서 느끼는 그윽한 정취는 있다. 말하는 이가, “이 자갈밭에서 노닐 때는 반드시 재계한 후에 와야 한다. 만약 깨끗하지 못하면 안개가 끼거나 비가 내리고 혹은 다른 불리한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모든 불결한 사람은 감히 이 자갈밭에 놀러 와서는 안 된다.” 라고 하였다. 내가 그 말의 허실을 증명할 수 없어서 짐짓 감히 내 맘대로 하지 못하였다. 승려가 산등성이의 기다란 돌밭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이 자갈 사이에 들어가 절로 비파 소리를 냅니다. 그러므로 ‘비파자갈’이라고도 하지요. 자갈 가운데 나무가 있는데 세속에서는 이것을 ‘신선의 복숭아〔仙桃〕’라고 한답니다. 봄이 되면 꽃은 피는데 열매 맺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삼천년 만에 한 번씩 열매를 맺는데, 대개 가지는 복숭아요 잎은 앵두나무로, 다른 곳에는 없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종손들이 자갈밭의 석이버섯을 가져와 보여주었다. 내가 보니 석이의 거친 검은 것은 안에 들어가 있고 매끄럽고 흰 것이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앞에 놓고 생각해보니 이단이 참된 가르침을 어지럽혀 분간하기 어려운 것과 같았다. 앞의 산등성이는 바위가 모여서 된 산이며 다음은 바위가 층계를 이룬 산으로 돌출하였다. 승려가 돌출한 곳을 가리켜 말하기를, “저 바위에 많은 석이버섯이 납니다. 옛날에 보림승(寶林僧)이 먼저 석이버섯 10여 송이를 캤다가 나중에 다시 제자와 더불어 갔답니다. 다른 승려가 그들을 따라오자 다른 곳을 가리켜 보내고는 그들만 언덕에 올라 섯이 버섯을 많이 캐면서도 만족할 줄 몰랐습니다. 따라간 승려가 석이버섯이 있나 없나를 소리 질러 묻자 제자로 하여금 거짓으로 없다고 말하게 했는데,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몸이 바위에 떨어졌답니다. 평지로 옮겼으나 목숨은 끝내 끊어지고 말았답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람들은 그 바위를 무서워하여 감히 접근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인하여 생각해보니, 세상의 이익을 탐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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