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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에서 풍류를 즐기며 신선이 된 기분을 느끼다
1625년 9월 12일, 가야산을 여행 중이던 허돈(許燉)은 숙소에서 아침밥을 서둘러 먹고 해인사로 향했다. 허돈과 동행한 이는 7~8명 정도였다. 모두 말을 타고 길을 나섰다. 숭산(崇山 : 김천 지역)에 사는 어른인 이회부와 두 아들이 미리 해인사 입구에 도착해서 기다리고있었다. 이회부 어른은 허돈 일행이 가야산을 여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하고자하여 여기서 만났던 것이다. 모두 함께 무릉교를 건너 홍류동으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가을 정취 아래에서 여러 친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니 즐거웠다. 다만 모임의 흥을 돋울 노래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일행인 권백임이 피리를 잘 분다는 이남(李南)이라는 사람들 데리고 왔다. 모여 앉아 술을 몇 잔씩 하고 그 흥을 이어서 칠성대에 도착했다. 오래 전에 일곱 명의
호사가(好事家)
들이 이곳에 와서 놀았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위 구석에는 이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일행은 홍류동 계곡의 명승지들을 구경하며 거슬러 올라갔다. 광풍뢰, 낙화담, 분옥 폭포, 첩석대 등 유명한 풍경들은 역시 일부러 찾아가서 볼만하였다. 이곳저곳을 직접 보고 즐기며 마치 신선의 세상에 온 것 같이 노닐다보니, 세상을 떠나 신선이 되어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인사에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이회부 어른과 그의 아들 등 몇몇은 급히 말을 타고 먼저 갔다. 허돈을 포함한 네 사람은 뒤에 따라갔다. 허돈은 뒤에 떨어진 김에 여유를 즐긴 듯하다. 말을 타고 가면서 이남에게 피리를 불게하고 따라온 어린 종에게 피리 소리에 맞추어 화답하게 하였다. 술기운도 오르고 하여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도 상쾌해지는 듯 했다. 허돈은 같이 가던 동료에게 “여기 함께 가는 이들 중에서 한 점이라도 더러운 생각이 있다면 산신령이 말고삐를 잡아 다른 곳으로 행로를 돌려버릴 것이다.”라고하며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농담으로 표현했다. 일행은 모두 기분 좋게 웃으며 길을 갔다.
소나무와 회나무 사이로 금빛과 푸른빛이 어우러져 은은하게 비치고 있었다. 절의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절에서 승려가 일행을 맞이하러 나와서 인사를 하였다. 눈썹이 짙고 흰 머리를 한 늙은 승려였다. 승려의 안내를 받아
일주문(一柱門)
으로 들어갔다. 일주문 위에는
임억령(林億齡)
이 지은 시가 있었다. 허돈도 이 시를 익히 알고 있었다. 일주문 밖에는 돌을 깎아 물이 흐르게 하여 술잔이 그 속을 떠다니게 만든 구조물이 있었는데, 최치원이 만든 것이라고 하였다.
이회부 어른과 함께 먼저 간 사람들은 종각에 올라 누워서 쉬고 있었다. 허돈은 이들을 쉬게 두지 않고 이회부 어른을 일으켜 세워 춤을 추자고 하였다. 모두 즐겁게 그날 하루를 보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유가야산기(遊伽倻山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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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허돈(許燉)
주제 : 여행, 풍류
시기 : 1625-09-12 ~ 1625-09-14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남도 합천군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허돈, 권백임, 이남, 이회부, 임억령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 속세를 떠나 은거한 허돈
허돈(許燉 : 1586~1632)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덕휘(德輝), 호는 창주(滄洲)이다. 노흠(盧欽)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이흘(李屹)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616년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유에 임명된 뒤 성균관 박사를 거쳐 예조정랑을 역임하였다. 그 때 (인목대비) 폐모설이 나오자 인륜의 기강이 무너졌다고 크게 한탄하면서 관직에서 물러나 와림천(臥林泉)에서 부모를 봉양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1623년(인조 1)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즉위하여 전라도사에 임명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1627년 후금(後金)과의 강화조약이 이루어지자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였으며, 또 친구 임진부(林眞怤)에게 준 시 300구절에서는 모두 시대를 한탄하고 나라를 걱정하였다. 그가 가야산을 유람한 1625년은 고향에서 은거하던 때이다. 허돈은 이 여행에서 세상의 일을 잊고자 한 듯 피리를 불게 한다거나 노래를 부른다거나 마음껏 술을 마시는 행동을 반복하였고 몇 번이고 신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또한 최치원과 임억령의 자취를 보며 선현(先賢)들의 언행을 생각했다.
◆ 원문 번역
을축년(1625, 인조 3) 9월 12일 아침에 밥을 재촉해서 먹고, 해인사(海印寺)로 향하려고 하였다. 이경은 일이 있어서 지름길로 돌아갔고, 동행한 사람은 이제 경우 7, 8명인데 말을 채찍질하여 길을 나섰다. 미리 도달한 숭산(崇山)에 사는 어른 이회부(李晦敷)와 그 두 아들 이호(李皜)와 이환(李皖)이 길의 왼편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개 이장(李丈)이 우리들이 이번 여행을 한다는 것을 듣고 또한 함께 가고자 하였기에, 동행하여 무릉교(武陵橋)에 들어갔다. 가을빛은 비단과 같은데, 많은 친구들이 길에서 다정하게 앉아 술을 마시니 매우 즐거웠다. 다들 흥을 돋구어줄 노래가 없는 것을 한탄하였다. 이윽고 권백임이 피리를 잘 부는 이남(李南)을 데리고 왔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마침내 흥에 겨워하며 칠성대(七星臺)에 도달하였다. 옛날에 일곱 명의 호사가들이 이곳에 와서 놀았기에 그렇게 부른다. 돌 구석에 아직도 예전에 새기었던 일곱 명의 이름이 있다. (중략) 잠시 이리저리 구경하며 진원(眞源)을 거슬러 들어갔다. 광풍뢰, 낙화담(落花潭), 분옥 폭포(噴玉瀑布), 첩석대(疊石臺) 등의 여러 승경들은 차례대로 찾아서 볼만하였다.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신선 세계에서 노니니 사람으로 하여금 어느덧 세상을 떠나 신선이 되어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저녁이 다가오니, 해인사에 투숙하려고 이장과 그 두 아들 및 직보, 응보, 보이, 임백, 낙옹 등은 급하게 말을 타고 먼저 갔고, 백화, 여첨, 중밀과 나는 가장 뒤에서 갔다. 이남으로 하여금 피리를 불게하고 어린 종에게 교대로 화답하게 하였다. 취기가 올라 바야흐로 기분이 좋아지며 가슴이 상쾌하였다. 내가 여러 벗들에게 말하기를, “여기에 들어오는 자가 혹 한 점의 더러운 생각이라도 있다면 산신령이 장차 말고삐를 막아 행로를 돌릴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에 서로 웃으면서 길을 갔다. 이윽고 금빛과 푸른빛이 서로 빛나며 소나무와 회나무가 울창한 사이에 은은하게 비추는 것이 보이니, 바로 절의 건물들이다. 눈썹이 진하고 흰 머리의 늙은 승려가 나와 말머리에서 인사를 하였다. 일주문(一柱門)을 통하여 들어갔는데, 일주문 위에는 석천(石泉) 임억령(林億齡)이 지은 오언절구가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문 밖에는 돌을 깎아 빙 돌아가게 하여 유상곡수(流觴曲水)를 만들었는데 이것도 또한 최치원의 자취라고 한다. 이장과 먼저 간 두세 명은 종각에 올라서 누워서 쉬고 있었다. 나는 이장에게 일어나 춤을 추기를 요구하여 매우 즐겁게 보냈다. 이윽고 함께 탐진당(探眞堂)에서 잤는데, 이 당은 대적전(大寂殿)의 동협실(東夾室)이다. (중략) 14일에 원명사로부터 산을 따라 서쪽으로 갔다. 곧바로 정상에 오르려고 하였는데 혜원이 따라 왔다. 짚신과 명아주 지팡이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중소리(中蘇利)에 당도하였다. 중소리는 옛 절로서, 파괴되어 오직 벽에 불상만이 있다. 지팡이를 멈추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1리쯤 오르니 작은 암자를 만났는데, 이것이 ‘상소리암(上蘇利菴)’이다. 암자는 무너지고 훼손되어 중소리와 같았다. 들어가 처마 밑에서 쉬다가 학사(學士) 서거정(徐居正)이 찬한 기문을 보았다. 말이 지극히 현묘하여 읽어도 자못 뜻이 선명하게 통하지 않았다. 암자의 동쪽에 우물이 있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물은 매우 향기가 나고 시원하다’고 하므로 시험 삼아 몇 잔을 마셔보았는데, 그 맛이 별다른 것을 알지 못하겠다. 아마도 목마른 자들이 쉽게 갈증을 해소시켜줘서 그런가 보다. 그 서쪽에는 큰 돌이 우뚝 서 있는데 높이가 수십 길이 되었다. 위에는 십여 명의 사람이 앉을 수가 있는데, 이름은 남천대(南天臺)이다. 동행한 소년들은 모두 올라가서 사방을 구경하는데 나와 벗 몇명은 올라가지 못하였다. 여기서부터 상봉까지는 겨우 5리 거리인데, 돌 길이 겨우 새가 다니는 길로 통하였다. 이에 나무를 잡고 절벽을 타서 아주 조금씩 올라갔다. 매번 한걸음을 내딛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선(善)을 따르는 것이 등산하는 것과 같다’는 가르침을 이에 이르러 더욱 체험할 수 있었다. 봉우리 꼭대기에 오르니 마음과 눈이 상쾌하여 일찍이 어려움을 겪지 않은 듯 하였으니 사람이 안일한 곳에 처하여 위험을 잊어버리는 것이 자못 또한 이와 같은가. 돌을 털어내고 풀을 깔아 마음대로 앉아서 석운에게 명하여 노래를 부르게 하고 이남에게는 피리를 불게 하였다. 음조가 맑아서 위로 구름과 하늘까지 울리는 듯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어느덧 날개 달린 신선이 되고픈 생각을 일게 하였다. (후략)
그래픽
산속 누각위에서 피리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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