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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端午)날에 씨름을 구경하다
1618년 5월 5일,
양경우(梁慶遇)
는 이날 잠자리에서 일어나 식사를 한 후 길을 나서려고 하였다. 그런데 흥양(고흥의 옛 이름)의 수령인 박유귀(朴惟僮)가 와서 출발을 늦춰달라고 했다. 박유귀는 무관 출신의 수령이기는 하나 공부를 나름 하였던 사람이라 말이 통해서 예전부터 친하던 사이였다. 그가 말하길 “오늘은 오월 오일로 명절(
단오(端午)
)입니다. 저희 고을에 비록 자랑할 만한 맛있는 음식은 없지만 어찌 공에게 하루 대접할 음식을 걱정할 정도겠습니까.”라고 했다. 양경우는 하루 더 머물기로 하였다.
문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니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박유귀가 하인에게 문을 열라고 하였다. 그러니 고을 백성 백여 명이 마당으로 들어왔다. 박유귀가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이 고을에서는 단오 때 각저희(角觗戲 : 씨름)를 합니다. 그렇게 해온 전통이 오래되었습니다. 우리 고을을 방문한 손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박유귀의 말이 마치기도 전에 씨름판이 벌어졌다. 몇 차례 승부가 이어졌는데 그 가운데 피부색이 검고 키가 큰 사람의 실력이 뛰어났다. 다리가 마치 기둥과 같이 튼튼했는데, 연속해서 7, 8명을 이겼다. 더 이상 그에게 승부할 사람이 없어졌다. 양경우 등이 관람하고 있는 곳의 계단 아래에 그가 엎드려 “놀이가 다 끝났습니다.”라고 하니, 박유귀가 부일목(浮一木)이라는 나무로 만든 사발을 상으로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키가 작고 말랐으며 얼굴이 하얀 것이 마치 유생(儒生)과 같은 어린 나이의 사람이 나오더니 “저 사람과 겨루게 해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박유귀가 놀라서 물러가게 하려고 했으나 씨름하던 사람들의 간청에 경기를 하게 하였다. 승부가 시작되어 서로 어깨를 붙이고 겨루기에 들어갔다. 바라보니 마치 개미가 나무를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구경하던 백여 명이 모두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던 그 때, 갑자기 작은 쪽이 기합을 지르며 힘을 줬다. 큰 사람이 그에 대응하여 움직였다. 한참 그렇게 대치하며 씨름장을 빙빙 돌다가 두 사람이 함께 쓰러졌다. 모래 먼지가 가득 피어올랐다. 먼지가 가라 앉자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깔고 쓰러져 있었다. 작은 사람이 이긴 것이다. 양경우는 박유귀와 함께 환호하고 크게 웃으며 작은 사람을 앞으로 나오게 했다. 나이를 물어보니 큰 사람보다 한 살 어리다고 했다.
박유귀가 말하길 “이 사람은 서울의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인데, 장사를 위해 이 마을에 왕래하여 안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힘이 쎈 사람인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작은 사람에게 쌀과 베를 상으로 줬다. 이렇게 씨름 경기가 끝났다.
방에 들어오니 문을 열고 관기(官妓) 한 명이 들어왔다. 이름이 몽접(夢蝶)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얼굴을 보니 예전에 남원에서 3년간 양경우의 거처에 함께 있던 이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 노래를 잘 부르는 기생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이곳저곳을 떠돌게 되어 양경우도 그 생사를 몰랐는데 20년 만에 고흥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세상일에 우연이 많다고 느꼈다. 서로 옛날 이야기를 했고 또 그녀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들어보니 옛날과 같이 가냘픈 목소리로 노래를 잘했다. 박유귀가 이렇게 마련한 술자리로 밤늦게까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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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역진연해군현잉입두류상쌍계신흥기행록(歷盡沿海郡縣仍入頭流賞雙溪新興紀行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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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양경우(梁慶遇)
주제 : 놀이
시기 : 1618-05-05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전라남도 고흥군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양경우, 박유귀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 조선시대의 씨름
씨름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기예의 하나로, 두 사람이 샅바나 띠 또는 바지의 허리춤을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를 먼저 땅에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하는 민속놀이이자 운동이다. 조선시대에 씨름은 대중화되었다. 김홍도(金弘道)의 풍속도 속에 씨름그림(각력도)이 있는 것은 씨름이 그만큼 일반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예이다. 김홍도가 조선 후기의 사람인 것으로 보아 이때는 씨름이 나라 안에서 널리 행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개성지(開城誌)」 등의 문헌에는 단오에 사람들이 모여 씨름을 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양경우가 씨름을 관람한 장소는 그가 머문 고을 객사(客舍)의 널찍한 마당이었을 것이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무오년(1618년, 광해군 10년) 5월 5일 임진 맑음. 이부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장차 길을 나서려고 하였다. 고을 수령인 박유귀(朴惟僮) 군이 비록 무관이나 자못 문자를 알아 나와 오래전부터 친하였는데 나와서 만류하면서, “오늘은 오월 오일로 명절인데, 저희 고을이 비록 맛있는 음식은 없으나 어찌 공에게 하루 음식 대접하는 것을 근심할 정도이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내가 이에 걸음을 멈추었다. 문밖에 여러 사람들이 떠들고 웃는 소리를 지르니, 태수가 문을 열라고 지시한다. 고을의 백성 백여 명이 뜰 아래에 들어오니 태수가, “이 고을은 삼가는 것이 많아 단양절에는 각저희(角觗戲)를 합니다. 그 유래가 오래되었습니다. 요컨대 손님에게 웃음을 제공하고자 하여 불러들인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말이 마치기 전에 각저희를 하여 승부를 다투어 차례로 나아가는데, 가운데 키가 크고 흑색인 사람이 서 있다. 다리는 서 있는 기둥과 같은데 연이어 7, 8명을 물리치니 희장(戱場)이 드디어 비었다. 계단 아래에 얻드려, “놀이가 다 끝났습니다.” 라고 하니, 태수가 명하여 부일목(浮一木)로 된 사발을 상으로 주었다. 마르고 키가 작으며 얼굴이 유생처럼 하얀 나이가 어린 사람이 있었는데, 앞에 나와 청하기를, “원컨대 저 사람과 겨루고 싶습니다.” 라고 하였다. 태수가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손짓하여 물리치려고 하였는데 무리들이 힘껏 청하였다. 이윽고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하는데 바라보니 마치 왕개미가 나무를 흔드는 것 같다. 뜰에 있는 백여 명이 서로 마주보고 웃는데, 작은 사람이 갑자기 기합을 지르자 큰 사람이 이에 대응한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서로 돌다가 두 사람이 함께 넘어졌다. 모래와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는데 자세히 보니 작은 사람이 위에 있다. 내가 태수와 함께 소리를 지르고 크게 웃으면서 불러 앞으로 나오게 하였다. 나이를 물어보니 큰 자보다 나이가 한 살 적다고 한다. 태수가, “이 사람은 서울 저자의 소년으로 장사하면서 이 고을에 왕래합니다. 내가 또한 일찍이 그가 이처럼 힘이 센 줄은 몰랐습니다.” 라고 하였다. 곧 쌀과 베를 상으로 주니, 놀이가 마쳤다. 관기인 몽접(夢蝶)이란 이가 들어와 인사를 드리는데, 이 기생은 젊었을 때 노래를 잘 불렀다. 난리를 만나 떠돌아 다니다가 용성에 이르러 내가 거처하는 촌사(村舍)에 3년 동안 붙어 살았는데, 그 이후로 20년 간을 어디에서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문득 만나니 또한 세상사는 사람의 우연한 일이다. 서로 옛날 이야기를 하였고 그녀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아직도 옛날과 마찬가지로 한들한들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른다. 태수가 나를 위하여 술자리를 마련하니 밤 늦도록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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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단원풍속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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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날에 씨름 구경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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