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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 싸우는 것이 우선입니다! - 병자호란에 맞서는 원칙주의 성리학자 김상헌의 강한 주장
1636년 12월 17일에 청나라가 침입하여 임금이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피난하였다. 김상헌이 행재소(行在所)에 뒤따라가서 임금을 알현하고 아뢰기를, “오늘날의 계책은 당연히 먼저 싸우고 화친은 뒤에 하여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대신 이하의 신하들이 세자(世子)를 청나라의 병영에 볼모로 보내어 청나라 군대를 퇴각시키려 하므로, 선생이 간절히 책망하기를, “어찌 신하로서 세자를 적에게 주는 의(義)가 있겠소?”라고 하였다. 그의 말하는 태도가 준엄하여 대신들이 어쩔 줄을 모르고 곧장 대궐에 나아가 죄를 벌해줄 것을 청하였다. 이 때문에 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가는 것을 면하게 되었다. 청이 쳐들어오자 청과 싸우자는 척화론과 청과 화의를 맺자는 주화론이 있었다.
주화론자들이 세자를 볼모로 보내어 청에게 화의를 청하려고 하였던것을 김상헌이 적극 저지한 것이다. 당시 척화론은 조정의 대세였고 대표주자는 김상헌이었다. 명분을 저버릴 수 없고 청과는 화친할 수 없다는 성리학적 명분론의 원칙을 지키자는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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