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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석에서 패전 소식을 듣다
1637년 2월 3일에도 김광계는 병을 앓으며 여러 사람의 병문안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전해지는 소문은 그저 실망스러운 것들뿐이었다. 관찰사가 예안과 안동의 사람들에게
죽령(竹嶺)
을 지키라고 하였는데, 의병도 대장 전식이 의병들로 하여금 행군하여 죽령을 넘으라고 하자 각 읍의 군인들이 대부분 도망가고 흩어졌다고 하였다. 장차 도망간 군인들을 잡아올 것이라고는 하였지만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다.
김확(金確)
도 다녀가며 의병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갔다. 계속되는 사무에 밤에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병이 다시 도져서 며칠간 계속해서 몸조리를 해야 했다.
2월 6일에는 고을 사람이자 의병진의
중군
을 맡았던 박용보(朴龍普)가 와서 영주 의병장을 맡았던 김광계의 자형
박회무(朴檜茂)
의 편지를 전해주었다. 편지에는 충격적인 소식이 적혀 있었다. 임금이 있던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임금은 성을 나와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자는 인질이 되고, 마찬가지로 둘째 왕자인 봉림대군과 비빈들도 함께 잡혀 갔다고 하였다. 임금이 계신 서쪽을 향해 통곡하였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절망하였다.
넷째 동생인 김광악과 함께 재종숙 김령을 만나러 갔는데, 서로 바라보니 눈물이 날 뿐이었다. 동네의 친지들도 이 괴로운 소식을 전해 들으며 상심하다가 밤이 늦어서야 헤어졌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매원일기(梅園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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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광계(金光繼)
주제 : 전쟁
시기 : 1637-02-03 ~ 1637-02-06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광계, 김확, 박용보, 박회무, 김광악, 김령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령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박회무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광계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확
◆ 삼전도에서 항복하다
1637년 1월 30일, 용골대(龍骨大)와 마부대(馬夫大)가 남한산성 밖으로 와 인조의 출성을 재촉하였다. 인조는 남색으로 염색한 의복 차림에 백마를 타고, 아무런 의장 없이 시종 50여명만을 거느리고 정문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서문을 통해 성을 나갔다. 인조의 뒤를 소현세자가 따랐다. 산에서 내려가자 용골대가 영접하러 나왔다. 인조는 삼공 및 판서ㆍ승지 각 5인, 한림(翰林)ㆍ주서(注書) 각 1인을 대동하였고, 세자는 시강원(侍講院)ㆍ익위사(翊衛司)의 제관(諸官)을 대동하고 삼전도(三田渡)에 나아갔다. 삼전도에는 이미 칸이 황색 장막을 펼치고 앉아 있고, 그 주위에는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칼로 무장한 자들이 즐비하였다. 또한 악기를 진열하여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 방식이 중국의 예법을 따른 것이었다. 인조가 그 사이를 걸어 진에 이르렀는데, 용골대가 먼저 진중에 들어가 칸의 말을 듣고 인조에게 전하였다. 칸은 “지난날의 일을 말하려 하면 길다. 이제 용단을 내려 왔으니 매우 다행스럽고 기쁘다.”라고 말하였다. 이후 인조는 미리 마련된 단 아래에 북쪽을 향해 자리를 잡고, 청나라 사람의 여창(臚唱)에 따라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를 행하였다. 곧 강화도에서 잡혀온 여러 대군 이하가 당도하여 모두 자리에 앉에 하고 연회를 베풀었다. 이 때 문관들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고, 또한 내외명부 부인들로 하여금 칸에게 절하도록 하여 더욱 굴욕감을 느끼게 하였다. 여러 물건의 하사를 마지막으로 하여 칸이 인조를 드디어 도성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왕세자와 봉림대군 등을 인질로 두고 도성으로 돌아가는 인조의 행차를 보며 인질로 잡힌 만여 명의 사람들이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라고 하며 울부짖었다.
◆ 원문 정보
三日. 癸酉. 頃者方伯沈公, 使安·禮二邑, 把守竹嶺, 而義兵都大將竹嶺改傳令, 使各邑行軍踰嶺, 而此邑之軍多逃散. 不意龍普·李華來告悶, 將推捉逃軍. 而實又暫來. 陣中多事, 夜不安寢. 六日. 丙子. 權晦卿·朴子敬來見. 日暮朴龍普·李華來傳朴兄簡, 南漢城見陷, 主上出降, 東宮被執, 二王子及妃嬪皆被執. 西向慟哭, 欲死無地. 與以直, 往拜司諫叔侍, 相向慟哭. 洞親皆來會, 夜久乃散.
◆ 원문 번역
정축년(1637, 인조 15) 2월 3일 계유 지난번에 관찰사 심공沈公이 안동과 예안 두 고을을 시켜 죽령竹嶺을 지키게 하였는데, 의병 도대장都大將이 죽령竹嶺에서 전령을 바꾸어서 각 읍으로 하여금 행군하여 죽령을 넘으라고 하니, 우리 읍의 군인들은 대부분 도망가고 흩어졌다. 뜻밖에 용보龍普와 이화李華가 와서 걱정을 고하면서 장차 도망간 군인을 뒤쫓아 잡아들일 것라고 하였다. 이실而實이 또 잠깐 왔다. 진중에 일이 많아서 밤에도 편안히 잠들 수가 없었다. 2월 6일 병자 권회경權晦卿과 박자경朴子敬이 보러왔다. 날이 저물어서 박용보朴龍普와 이화李華가 와서 박형朴兄의 편지를 전해 주었는데,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주상께서는 성을 나와 항복하고, 동궁은 잡혀 가고, 둘째 왕자 및 비빈妃嬪들도 모두 잡혀갔다 남한산성이……잡혀갔다 : 인조는 45일간 남한산성에서 청과 대항하다가 1637년 1월 30일 삼전도(三田渡, 송파) 청 태종의 진영에 나와 항복하였고, 소현(昭顯), 봉림(鳳林) 두 왕자 등이 인질로 잡혀갔다. 고 하였다. 서쪽을 향하여 통곡하였는데, 죽으려 해도 죽을 곳이 없다. 이직以直과 함께 사간 재종숙을 가서 뵙고 서로 바라보며 통곡하였다. 동네의 친지들도 다 와서 모였다가 밤이 깊어서야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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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자호란이 시작되다
1636-12-13
경상북도 안동시
2
예안의 의병을 모집하다
1636-12-23
경상북도 안동시
3
예안의병이 군사행동을 시작하다
1636-12-30
경상북도 안동시
4
전쟁은 끝났지만 의병장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1637-01-30
경상북도 안동시
5
병자호란의 재발을 염려하다
1637-01-30
경상북도 안동시
6
피난 온 사람들
1637-01-30
경상북도 안동시
7
전란 중의 제사를 고민하다
1637-03-06
경상북도 안동시
8
퇴계의 제자가 명과 청의 전쟁 소식을 전하다
1637-04-04
경상북도 안동시
9
명나라 군대가 바다를 건너온다는 소문이 돌다
1637-04-29
경상북도 안동시
10
병자호란의 전후처리에 대해 한탄하다
1637-05-09
경상북도 안동시
11
병자호란으로 나뉜 운명의 명암
1637-05-26
경상북도 안동시
12
예안에서 의병을 조직하려 하다
1627-01-26
경상북도 안동시
13
한여직의 며느리가 오랑캐의 포로가 되다
1637-03-17
경상북도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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