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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위에서 적벽대전을 떠올리다
『삼국지(三國志)』는 현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로 남아, 여러 매체에서 소스로 사용하고는 한다. 당연히 조선시대 양반들도 『삼국지』를 즐겨 읽었으며, 또한 그 호방한 기분을 일상으로 끌어들이기도 하였다. 김광계는 1637년 7월 17일에 임진(任振) 어른, 그의 아들 임일보(任一甫), 동생 김광악(金光岳), 우처인(禹處仁), 금씨 아재와 함께 강에 배를 띄우고 서서히 중류로 내려왔다. 배 안에서 『삼국지』의 극적 장면 중 하나인 적벽대전에 대한 고사를 읽었다. 기나긴 장강 위에 끝없이 떠 있는 군선들과, 줄지어 서 있는 용맹한 장수들이 연환계로 말미암아 동풍을 타고 한낱 불티로 승화하는 장면을 떠올리자니 술이 절로 들어가고 시가 줄줄 나왔다. 강가의 집에 도착한 뒤에도 흥취는 옅어지지 않아 다시금 술을 마시니, 날개가 돋은 신선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임진 어른 등과 함께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고, 마침 아들 김렴(金𥖝)이 곁에 남아 시중을 들었다. 그 다음 달인 8월 5일에도 또 배를 띄울 일이 생겼다. 동생 김광악과 함께 탁영담(濯纓潭)에 배를 띄우고, 탁영담 가운데의 반타석(盤陀石)에 줄을 매어놓고 노닐며 시를 읊었다.

그 후 2년이 지난 1639년 6월 15일, 다시 적벽을 떠올리며 뱃놀이를 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임진 어른이 함께하였고, 여러 벗들이 함께 해가 진 후 천연대(天淵臺) 아래에서 배를 띄웠다. 이번에는 노도 젓지 않고 삿대도 짚지 않은 채 강물이 흐르는 대로 배를 내 맡겼다. 모두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에서 했던 그대로였다. 배가 서서히 흘러가 애일당(愛日堂) 아래에 이르렀다. 하늘을 바라보자 동쪽 산봉우리에 달이 떠오르고 구름이 걷혀 훤하게 빛났다. 이 역시도 「적벽부」의 풍경과 같아, 배 위에서 술을 마시고 「적벽부」를 두 수 외우니 시인이 말한 그대로 허공에 뜬 듯, 바람을 탄 듯하였다.

赤壁賦(적벽부)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泛舟 遊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임술년 가을, 칠월 보름 다음날,
소자가 객과 더불어 배를 띄워 적벽 아래에서 노니는데.
맑은 바람 서서히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님에게 권하며, 명월의 시를 읊고 그윽한 구절을 노래하노라.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白露橫江 水光接天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 如馮虛御風 而不知所止
飄飄乎 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於是飮酒樂甚 扣舷而歌之
歌曰 桂櫂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
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조금 있으니 달이 동산 위에 떠올라,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에서 배회한다.
흰 이슬은 강을 가로지르며, 물빛은 하늘에 닿았는데.
마치 한줄기 갈대와 같이, 만경창파를 넘어 아득히 가노라.
드넓은 허공에 기대어 바람을 탄 듯, 멈출 바를 모르는 듯,
표표히 속세를 떠나 홀로 서있는 듯,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된 듯.
그리하여 술을 마시고 흥겨워,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도다.
노래하니 '계수나무 노와 목란 삿대로 맑은 달그림자를 치며 흐르는 빛을 거슬러 오르네. 아득하구나 나의 회포여, 미인을 기다린다 하늘 저편에'
손님 중에 퉁소를 부는 이가 있어, 그 노래에 맞추어 회답한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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