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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9년 여름, 그칠 줄을 모르고 내리는 비
1639년 여름에는 비가 유독 많이 왔다. 7월 8일부터 매일 큰 비가 내렸는데, 그 때문에 예안을 지나는 낙동강도 물이 많이 불어났다. 7월 10일에는 김광계가 연못의 연꽃이 빗물을 머금고 피어난 것을 바라보던 중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폭우가 지나간 뒤, 김광계는 말을 타고 강변으로 가서 물이 불어난 것을 구경하였다. 과연 연못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음 날에는 서당으로 가던 중 비를 만났다. 비에 옷이 모두 젖어서 그랬는지 자는 내내 몸이 불편하였다. 아마 감기에 걸린 것 같다.
병은 7월 13일이 되어서야 조금 차도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강물이 크게 불어나 있었다. 식사를 한 뒤 지팡이를 짚고 불어난 강물을 바라보며 산보하다가 한참동안 돌 위에 앉아 있었다. 강물의 기세가 넓고 아득하였으며, 파도가 세차게 일렁였는데 이를 보고 있자니
한유(韓愈)
의 시가 절로 떠올라 홀로 읊조렸다. “장맛물이 홀연 들을 집어삼키니 황폐한 평원이 아득히 펼쳐지네[滛潦忽飜野 平蕪渺開溟]” 풍취를 입 안에서 즐기고 있자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7월 17일에는 강물이 또 불어났는데, 다음날 나가보니 며칠 전 앉아서 강물을 바라보던 돌도 이미 잠겨 있었고, 그 위의 절벽도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아직도 쏟아 부을 빗물이 남아 있었던지,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 내렸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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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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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매원일기(梅園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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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광계(金光繼)
주제 : 재해
시기 : 1639-07-08 ~ 1639-07-18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광계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광계
◆ 조선시대 홍수의 피해
농업경제기반의 조선 시대는 비의 많고 적음이 농작물의 생산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비에 대한 기록은 매우 많고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이는 비의 종류에 따라 미우(微雨), 세우(細雨), 소우(小雨), 하우(下雨), 쇄우(灑雨), 취우(驟雨), 대우(大雨), 폭우(暴雨) 등 8가지(김연옥, 1984)로 상세하게 분류하고 있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중에서 홍수를 발생시키는 호우는 대우(大雨)와 폭우(暴雨)이며 그 외에도 대수(大水), 홍수, 물난리 등의 표현이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나타난 호우 기록은 '큰비'가 '457건', '큰물'이 '119건', '홍수'가 '102건', '폭우'가 74건', '물난리'는 '6건'으로 총 '827건'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조선왕조실록』에는 '798건'이 있었고 『승정원일기』에는 '29건'이 있었다. 그리고 『증보문헌비고』의 상위고(象緯考) 9권의 물이(物異)에서 '우이(雨異)'는 총 '82건'이었다.
조선 시대는 홍수의 재해가 '극심' 또는 '약'의 양극단의 특성으로 나타났다. 재해의 빈도는 중기-후기-전기의 순으로 나타났고, 재해의 규모는 전기-중기-후기로 갈수록 강해지는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홍수 재해는 50년을 주기로 증감하는 경향이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호우 발생빈도는 높았지만, 재해로 이어진 홍수의 빈도는 낮았고 대부분 '약'에 해당하는 재해가 발생했다. 전기 말인 1501~1550년대부터는 재해의 빈도가 크게 증가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재해의 빈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고 역시 '약'에 해당하는 재해가 대부분이지만 '중'이상의 규모가 증가했다. 조선 후기에는 중기보다는 약간 낮은 빈도로 발생했지만 대부분 '극심'에 해당하는 재해가 발생했다. 시기적 분포 특성으로는 홍수 재해의 규모와 빈도가 연대별로는 1651~1700년대에 가장 높게 나타났고 다음으로 1601~1650년대와 1701~1750년대가 높게 나타났다. 월별로는 5~8월에 재해가 발생했고 7월에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서 분포했다. 조선 전기와 중기에는 주로 6, 7월에 집중해서 분포하고 조선 후기에는 7, 8월에 발생빈도가 크게 증가하였다.
공간적 분포 특성으로는 홍수 재해의 규모와 빈도가 조선 전기에는 한성과 경기도의 양주목, 양근군, 광주목, 가평현, 고양군 등의 내륙지역에서 주로 발생했다.
조선 중기에는 경상도의 안동부, 군위현, 인동부, 영산현, 밀양부, 양산현, 사천현 등과 전라도 순천부, 광양현, 구례현, 용담현, 진안현 등, 충청도의 임천군, 충원현, 청풍군, 단양군, 영춘현 등의 내륙/해안지역에 분포했다.
조선 후기에는 평안도의 평양부 ,안주목 등, 함경도의 이원현, 명천부 등의 북부지역에서 빈도가 증가했지만 중기와 마찬가지로 경상도와 충청도, 전라도의 내륙/해안지역에서의 분포가 가장 많았다.
'영남(嶺南)과 관동(關東)에 홍수가 졌다. 영남의 인동(仁同)·영산(靈山)·안동(安東)·군위(軍威)·창원(昌原)·의흥(義興)·용궁(龍宮)·고령(高靈)·상주(尙州)·예안(禮安)·초계(草溪)·의령(宜寧)·김해(金海)·함안(咸安)과 관동의 회양(淮陽)·양양(襄陽)·금성(金城)·간성(杆城)·평강(平康)·홍천(洪川)·양구(楊口)·철원(鐵原)·춘천(春川)·횡성(橫城)·영월(寧越)·정선(旌善)·평창(平昌)·인제(麟蹄) 등의 재해가 더욱 혹심하였다. 산사태가 나고 죽은 사람과 가축의 숫자를 헤아릴 수 없었으며 관청과 민가가 거의 떠내려가고 깊은 산의 큰 나무들도 뿌리째 뽑혀 한강과 낙동강으로 떠내려왔다.'
(『조선왕조실록』 선조38년(1605) 7월 1일)
'홍청도에 큰물이 져 금강이 크게 넘쳐 집 수십여 채가 침수되었다. 임천(林川)·충원(忠原)·청풍(淸風)·단양(丹陽)·영춘(永春) 등 고을에서는 침수된 민가가 1백 40여 채였고, 진천현(鎭川縣)에서는 물에 빠져 죽은 자가 4인이었으며, 평택현(平澤縣)에서는 들판의 여염집이 거의 다 침수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인조25년(1647) 7월 13일)
‘황해도 황주(黃州)에서 큰비가 퍼붓듯이 내려 서흥(瑞興)에서 부(府)까지와 부에서 바다 어귀까지 90여 리 사이의 평지가 바다로 변하였는데 떠내려가거나 잠긴 민가가 100여 호이고, 마소와 사람은 거의 피할 수 있었다. 신천(信川)·옹진(甕津)·수안(遂安) 세 고을도 마찬가지여서 산이 무너지고 냇물이 터져서 들판이 모두 침몰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36년(1603) 7월 2일)
주로 낙동강, 금강 등의 큰 강이 범람하여 재해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강의 하류 저지대뿐만 아니라 상류 내륙지역에서도 극심한 재해가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 원문 정보
八日 癸亥 泄瀉如昨. ○ 別監金瑴·權晦卿·金㬎暫過. 日暮驟雨移時. 九日 甲子 讀[韓]. 病暫歇. 午後又驟雨. 立秋七月節. 十日 乙丑 琴叔暫來. 向晩往見子開于書堂. 池中荷花盛開. 又暴雨移時. 雨過後騎馬, 遊覽江郊. 十一日 丙寅 食後將往書堂. 歷見二弟, 又見庶叔. 到槽巖遇雨, 到書堂雨勢尤急, 濕盡衣裳. 夜氣甚不平, 不得安眠. ○ 雨終日. 十二日 丁卯 又雨. 氣不平甚於昨日, 終日臥調. 磅冒雨而來. 講小學. 十三日 戊辰 氣稍蘇. 讀韓. ○ 朝起, 江水大漲. 食後杖策散步, 坐盤石移時. 水勢浩渺, 波濤洶湧, 因思退之, [淫]潦忽飜野, 平蕪渺開溟之句, 徘徊諷詠, 似有佳趣也. 又雨終日. 十七日 壬申 江水又盛漲, 加於前日數丈. ○ 山人德安來. ○ 日暮大雷雨, 終夜不止. ○ 看史. 十八日 癸酉 江又大至, 丙子之後始有此水, 盤石盡沒而石上不止數丈矣. 又雨終日終夜. ○ 看史.
◆ 원문 번역
기묘년(1639, 인조 17) 7월 8일 계해 설사 증세는 어제와 같았다. 별감 김각金瑴ㆍ권회경權晦卿ㆍ김현金㬎이 잠깐 들렀다. 날이 저물어서 한참동안 소나기가 내렸다. 7월 9일 갑자 한유의 글을 읽었다. 설사가 잠깐 그쳤다. 오후에 또 소나기가 내렸다. 입추立秋 칠월절七月節이다. 7월 10일 을축 금씨 아재가 잠깐 왔다. 저물녘에 서당으로 가서 자개子開를 만났다. 연못에 연꽃이 활짝 피었다. 또 한참동안 폭우가 내렸다. 폭우가 지나간 뒤에 말을 타고 강가의 들에서 노닐며 구경하였다. 7월 11일 병인 밥을 먹은 뒤에 서당으로 갔다. 지나는 길에 둘째 아우를 만나고 또 서숙을 만났다. 조암槽巖에 당도하여 비를 만났고 서당에 당도하니 비 내리는 기세가 더욱 세차서 옷이 모두 젖었다. 밤에 기운이 몹시 편치 못하여 편히 잠들지 못하였다. ○ 종일 비가 내렸다. 7월 12일 정묘 또 비가 내렸다. 기운이 편치 않은 것이 어제보다 심하여서 종일 누워 조리하였다. 방磅이 비를 맞으면서 왔다. 『소학小學』을 강하였다. 7월 13일 무진 기운이 조금 되살아났다. 한유의 글을 읽었다. ○ 아침에 일어나니 강물이 크게 불어났다. 밥을 먹은 뒤에 지팡이를 짚고 산보하다가 한참동안 반석盤石에 앉아있었다. 강물의 기세는 넓고 아득하며 파도는 세차게 일렁였는데, 그로 인하여 퇴지退之(한유의 자)의 “장맛물이 홀연 들을 집어삼키니 황폐한 평원이 아득히 펼쳐지네[滛潦忽飜野 平蕪渺開溟]”라는 시구를 생각하고는 읊조리며 배회하니 마치 아름다운 흥취가 있는 것 같았다. 또 종일 비가 내렸다. 7월 17일 임신 강물이 또 한창 불어났는데, 며칠 전보다 몇 길이나 불어났다. ○ 중 덕안德安이 왔다. ○ 날이 저물어서 크게 우레가 치고 비가 내렸는데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 『통감절요』를 보았다. 7월 18일 계유 강물이 또 크게 불어났다. 병자년(1636) 이후로 이와 같이 불어나기는 처음으로 반석盤石이 다 잠기고 그 위의 절벽은 다만 몇 길밖에 남지 않았다. 또 비가 하루 밤낮을 내렸다. ○ 『통감절요』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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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산 남쪽 절벽 아래 지은 벗의 서재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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