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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병에 걸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1643년 봄부터 김광계의 아내는 병이 깊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먹고 마시지도 못하였다. 김광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침 또 김광계가 존경하고 따르던 재종숙의 대상이 다가오자, 김광계는 아끼는 이를 또 잃을까 하는 마음에 더욱 걱정하였다. 더욱이 아내가 병에 걸려 있어 부정이 탈까 싶어 재종숙의 궤연에 전을 올릴 수도 없었다. 여러모로 한스러운 상황이었다.
김광계는 종 무생(戌生)을 용성(龍城)에 보내 약을 처방받아 오게 하였는데, 의원은 김광계의 아내의 병세를 듣고 가감승마갈근탕(加減升麻葛根湯)을 처방하였다. 이 약은 신열을 내리고, 입이 헐고 목구멍이 아픈 증상을 치료하는 약이다. 김광계는 걱정도 되고, 자신의 노구도 병을 옮을까 싶어 강재(江齋)로 나와 지내기로 결정하였다. 동생 김광악,
김광실
, 김광보, 조카 김민 등 여러 사람이 김광계를 매일같이 찾아와 아내의 병세를 전하였는데,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들이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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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매원일기(梅園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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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광계(金光繼)
주제 : 질병
시기 : 1643-03-19 ~ 1643-08-18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광계, 김광실, 김광악, 김광보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광계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광보
◆ 조선시대 지방 공공 의료 인력과 심약
조선시대 지방 공공 의료 인력은 의학교수, 의원, 심약, 의학생도, 약부가 있었다. 의학교수와 의원은 6도에 각 1명씩, 총 16명이 있었고 심약은 경기도·전라도·황해도·강원도에 각 1명, 충청도·평안도에 각 2명, 경상도·영안도(永安道, 함경도)에 각 3명, 총 16명이 있었다. 의학생도는 숫자가 많아 전국적으로 3,148, 약부는 912명이 있었다. 총 4,092명의 의료 인력이 있었던 셈이다. 세조가 ‘나의 제갈량’이라고 부를 정도 총애를 입었던 양성지는 1469년 6월 29일 예종에게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린다.
“지방에는 비록 의생(醫生)이 있다 해도 숫자만 채울 뿐이고, 심약이 있다 해도 어찌 사람마다 구제받을 수 있겠습니까? 빈궁한 마을의 백성들이 뜻밖의 질병에 걸리면 심하게 괴로워하는 상황을 귀와 눈으로는 차마 보고 듣지 못할 것입니다. 현마다 1인, 군마다 2인, 도호부마다 3인씩 전의감(典醫監)에 소속시켜 1년이나 3년간 의서를 읽고 의술을 배우게 하고, (중략) 우리나라 약재를 사용해 백성을 구해 성과가 있는 자는 자급을 더하고, 감사로 하여금 칭찬과 나무람을 하게 하소서.”
그는 상소에서 각 지역에 의사를 보내는 일을 언급하고 있다. 심약(審藥)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곳도 바로 이 대목이다. 심약은 조선시대 궁중에 바치는 약재를 감사하기 위해 각 도에 파견된 종9품 벼슬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방 공공의료가 워낙 부실한 상황이다 보니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심약을 따로 배치할 것을 간청한다. 조선 전기에서 중기에 이를 때까지 심약의 역할에 대한 중앙정부의 기대가 컸다. 이런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제9대 왕인 성종은 1485년 1월 13일 "우의정 홍응이 먼 지방에 내려가는데 기침병을 심하게 앓고 있으니 의원 한 사람을 데려가도록 하라."고 하교한다. 그러자 홍응은 "종사관(從事官)이 있는데, 또 의원을 데려가면 반드시 번거로움을 이룰 것입니다. 하물며 그 도(道)에도 심약이 있어서 치료할 수 있으니, 데려갈 필요가 없습니다."라며 사양했다.
필요한 약재를 구하는 데 있어서도 심약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성종 20년(1489년) 6월 7일 실록에는 각 도의 관찰사들에게 진상하는 약재의 채취에 착오가 없도록 지시하는 내용이 남아있다. 지방관의 지시를 받아 약재 채취를 감시·감독하는 것이 바로 심약이다. 제대로 된 약재를 진상하지 못할 경우, 심약에게 엄중한 죄를 묻기도 했다.
"(약은) 비록 수량의 작은 차이가 있더라도 능히 사람의 생명을 상하게 한다. 하물며 참된 약이 아닌 것을 채취해 쓸 수 있겠는가? 내가 지난봄에 향약을 뒤뜰에 심으려고 각 도에 채취해 올리게 했는데, 경상도 심약 김우연이 진짜 자완(紫莞, 폐와 기관지에 쓰이는 약재)이 아닌 것을 채취해 올렸으므로 중죄를 물어 직을 파하였고, 약을 채취한 고을의 수령에게도 죄상을 묻고 따졌다. 무릇 진상하는 약재는 거두어 햇볕에 말리는 일을 의약서에 따라 착오가 없게 하라."
성종은 유난히 우리 약재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5년 뒤인 1494년 관찰사들에게 약재를 월령에 따라 맞게 채취하라는 명을 내렸다. 따르지 않으면 심약뿐만 아니라 지방관들도 벌을 면치 못한다고 경고했다.
심약은 약재를 다룰 뿐 아니라 지방 의료의 일선에 있었다. 연산군 3년(1497년) 9월 24일 황해도에 괴질이 돌아 방역책을 의논하는 가운데 대신들은 심약들이 순회하면서 병든 자를 치료토록 할 것을 간청한다.
"급히 심약을 선택해서 보내되, 약방문을 아는 의생(醫生)들이 심약에게 구호(救護)하는 방법을 가르친 뒤에 여러 고을로 나눠 보내고, 이들로 하여금 돌아다니며 치료하게 해서, 효과를 나타낸 자에게는 상을 주고, 제대로 구료하지 않는 자에게는 죄를 지우며, 이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는 수령들도 엄중히 따지게 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이처럼 심약은 지방에서 공공의료를 전담하고 있었다. 강혼도 자신의 병증을 치료받기 위해 심약을 보내줄 것을 감사에게 요청하였다. 보통 심약은 감사 일행과 함께 다녔다. 황사우가 임금의 전교를 받았을 때도 심약은 황사우의 병 치료를 위해 감사 일행과 떨어져 황사우와 함께 있었다. 이후에도 감사와 황사우는 크고 작은 병증을 앓는데 그때마다 심약이 치료를 맡아 하였다.
◆ 원문 정보
十九日 壬子 家有病患, 憂惱實深. 二十日 癸丑 室人自再昨得重病, 專廢食飮, 悶不可言. 明日乃司諫叔侍再期也. 午後與以道往, 洞親及外客多來會. 禹成憲父子·黃有章歷訪. 立夏四月節. 二十一日 甲寅 以家患不得往奠司諫叔侍几筵, 深以爲恨. 德昷·南君玉·李經漢諸人來見. 二十二日 乙卯 病患如昨. 騎馬出郊外觀稼, 仍往遊雲巖, 日暮來江齋. 二十三日 丙辰 誦韓. 以直來話. 二十四日 丁巳 密雲不雨. 旱氣太甚, 悶何可言. 敏童暫來. 戌生奴自龍城問藥來, 所命升麻葛根湯加減也. 二十五日 戊午 以健·金磅來言, 吾家病患差歇云. 二十六日 己未 讀韓. 以道携酒來話. 日入戌初初刻. 二十七日 庚申 誦韓. 二十八日 辛酉 日出寅正四刻. 以直來話終日, 病患漸向蘇境云.
◆ 원문 번역
계미년(1643, 인조 21) 3월 19일 임자 집안에 병환이 있으니 걱정되고 괴롭기가 실로 깊다. 3월 20일 계축 집사람이 엊그제부터 중병을 얻어 식음을 전폐하니 걱정을 말할 수 없다. 내일이 곧 사간 재종숙의 대상이어서 오후에 이도와 함께 갔다. 동네의 친지와 외부의 손님이 많이 와 모였다. 우성헌禹成憲 부자와 황유장黃有章이 지나는 길에 들렀다. 입하立夏 사월절四月節이다. 3월 21일 갑인 아내의 병 때문에 사간 재종숙의 궤연에 가서 전을 올릴 수 없으니 아주 한이 된다. 덕온德昷ㆍ남군옥南君玉ㆍ이경한李經漢 등 여러 사람이 보러 왔다. 3월 22일 을묘 아내의 병은 어제와 같다. 말을 타고 교외로 나가 농사짓는 것을 살펴보고 그길로 운암으로 가 노닐다가 날이 저물어서 강재江齋로 왔다. 3월 23일 병진 한유의 글을 읽었다. 이직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3월 24일 정사 구름이 짙게 끼었으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가뭄이 너무 심하니 근심을 말할 수 없다. 아이 민敏이 잠깐 왔다. 종 무생戌生이 용성龍城에서 약을 처방받아 왔는데, 가감승마갈근탕加減升麻葛根湯을 쓰라고 하였다. 3월 25일 무오 이건과 김방金磅이 와서 집사람의 병환이 조금 나았다고 하였다. 3월 26일 기미 한유의 글을 읽었다. 이도가 술을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가 술초戌初 초각初刻에 졌다. 3월 27일 경신 한유의 글을 외웠다. 3월 28일 신유 해가 인정寅正 사각四刻에 떴다. 이직이 와서 온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의 병이 점차 나아간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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