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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줄 알았던 매부가 되살아나다
1644년에는 예안과 인근 지역에 전염병이 여러 차례 돌았다.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 강재(江齋)로 가서 머물고 있던 김광계의 귀에 매부
이시명(李時明)
이 전염병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들어왔다. 비록 누이가 세상을 떠나고 이시명이 재취를 한 지도 오래 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가족은 가족이었다. 평소 매형, 매부와 가깝게 지내던 김광계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김광계는 자신도 모르게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김광계의 마음처럼 며칠간 계속 비가 내렸다.
나흘이 지난 뒤, 막내동생
김광악(金光岳)
이 김광계에게 찾아와 말하기를 “회숙(이시명)이 전염병에 걸린 것이 몹시 중하여 기절한 지가 여러 날인데 한참만에야 다시 깨어났다”라고 하였다. 이시명이 죽은 듯 기절해 며칠이 지났기 때문에 다들 죽은 것이 아니냐고 수군거리고,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입으로 이 이야기를 전하다가 결국 죽었다는 소문이 나기에 이른 것이었다. 우스운 이야기였지만 한편으로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소식이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매원일기(梅園日記)
전체이야기보기
저자 :
김광계(金光繼)
주제 : 전염병
시기 : 1644-05-17 ~ 1644-05-21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광계, 이시명, 김광악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광계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이시명
◆ 조선시대 전염병과 대책
전염병은 병독(病毒)이 전염되는 질환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전염병을 역질(疫疾)·질역(疾疫)·여역(癘疫)·역려(疫癘)·시역(時疫)·장역(瘴疫)·온역(瘟疫)·악역(惡疫)·독역(毒疫)이라고 불러 왔다. 이 중 역(疫)은 널리 유행하는 전염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여(癘)는 좋지 않은 병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결국 오늘날의 처지에서 볼 때 역려란 좋지 않은 전염병이라고 해석되며 악성유행병을 의미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자 전염병 발생에 관한 기록은 더욱 자세하게 나온다.
특히, 조선시대에 크게 발생해서 문제되었던 질병을 보면 두창(痘瘡)·홍역·콜레라 등을 들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질병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밀접한 교류를 가졌던 중국대륙은 물론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유행되어왔다. 실제로 두창은 4~5세기경에 중국에서 크게 유행한 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아시아 각국에 크게 퍼졌으며, 콜레라는 1819년에 중국에 들어와 1820년에 중국 대륙을 휩쓸고 1821년에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한 뒤, 1822년에는 일본에 파급되어 아시아 전체에 공통된 질병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점차 역병을 두창이나 홍역 같은 발진을 수반하는 전염병과 말라리아 및 콜레라를 구별해서 기록하기 시작하였으며 개별적인 전염병의 기록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즉 조선시대 사람들은 발진을 일으키는 질병을 두창·수두(水痘)·마진·풍진·홍역으로 구별할 수 있었으며, 장티푸스와 발진티푸스를 의미하는 온역과 해병(咳病) 등이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지 병명만으로 과거의 전염병 유행을 구체적으로 감별하기는 어려우며 사관(史官)에 따라서는 혼동해서 기록한 경우가 없지 않으나 점차 전염병이 구체화되고 세분화되어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조선 개국 후 처음으로 발생한 역병은 1396년(태조 5) 3월에 발생한 전염병이다. 특히 “경축성 역부 역려유행(京築城役夫 疫癘流行)”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도성을 쌓기 위하여 소집한 인부들에게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였다는 것이다. 1525년(중종 20)에 이르자 조정에서는 전염병 유행에 대응하기 위하여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을 지어 반포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간단하게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을 수록해서 알리도록 힘썼다.
1550년(명종 5)에 이르자 말라리아가 크게 돌고 황달이 심해져 조선 정부는 『황달학질치료방(黃疸瘧疾治療方)』을 만들어 배포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에도 계속 전염병이 돌자 광해군 때에 이르러 새로운 『벽온방(辟瘟方)』과 『벽온신방(辟瘟新方)』이 발행되었으며, 효종 때에 이르자 또다시 『벽온신방(辟瘟新方)』이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전염병의 발생에 즈음해서 많은 사람들은 우선 역귀 때문에 무서운 전염병이 발생한다고 믿었다. 불교에 의한 인과응보설이나 유교적 배경에서 나온 운기불화설(運氣不和說)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의 유행은 귀신의 조화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전염병이 많이 돌 때는 여제(癘祭)를 드렸다. 실제로 여제에 쓰였던 제문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편찬된 각종 의서를 보면 계절이나 기후의 변화 때문에 전염병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일단 환자를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부터 격리시켰다. 궁궐도 마찬가지고, 지방의 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기에 나오는 유곡이나 금곡은 아마도 환자를 격리시켰던 곳이 아닌가 한다. 인적이 드문 곳에 환자를 격리시켜 두고 의원들을 보내어 처방을 하거나 약을 먹였던 것이다.
◆ 원문 정보
十七日 甲辰 往棲江齋. 聞晦叔以染患, 遂不起疾, 不覺失聲慟哭, 驚愕慘怛, 不自堪忍. 是日少雨卽止. 夏至五月中. 十八日 乙巳 誦書, 密雲小雨. 十九日 丙午 誦書. 還家. 歷入濯淸亭, 見而實兄弟琴縱成諸人. 礎再昨自龍宮來, 宿[吾]家. 二十日 丁未 細雨終日. ○ 誦書. 二十一日 戊申 又細雨. 以直自才山來云, 晦叔得染疾甚重, 氣絶數日, 久乃復甦云, 喜不可言. 邇來連日小雨沾灑, 而未見大注, 農家之竭悶可知.
◆ 원문 번역
갑신년(1644, 인조 22) 5월 17일 갑진 강재江齋로 가서 머물고 있다. 들으니 회숙晦叔이 전염병에 걸려 마침내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목을 놓아 통곡하였으니, 놀랍고 참담함을 스스로 차마 견딜 수가 없다. 이날 비가 조금 내리다가 곧바로 그쳤다. 하지夏至 오월중五月中이다. 5월 18일 을사 『상서』를 외웠다. 구름이 짙게 끼고 비가 조금 내렸다. 5월 19일 병오 『상서』를 외웠다.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탁청정에 들어 이실 형제와 금종성琴縱成 등 여러 사람을 만나보았다. 초礎는 엊그제 용궁에서 와 우리집에서 잤다. 5월 20일 정미 가랑비가 종일 내렸다. ○ 『상서』를 외웠다. 5월 21일 무신 또 가랑비가 내렸다. 이직이 재산에서 와 말하기를, “회숙이 전염병에 걸린 것이 몹시 중하여 기절한 지가 여러 날인데 한참만에야 다시 깨어났다.”고 하니, 기쁨을 말할 수가 없다. 요즈음 날마다 비가 조금 내려 적시긴 했으나 크게 쏟아진 경우는 없었으니, 농가의 목마름과 근심을 알만하다.
애니메이션
조선시대의 전염병 치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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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명에게 시집간 누이가 당홍역에 걸려서 죽다
16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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