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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세상을 떠나다
지난 해 봄에도 심하게 앓았던 김광계의 아내는 1644년 8월, 다시 몸져누웠다. 여름도 다 간 때였는데 이질에 걸린 것이다. 뱃속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하고 좀처럼 식사도 하지를 못했다. 이 때 아들 김렴이 서울에 갈 볼일이 있었기 때문에 김광계는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아들을 잘 돌보아달라고 하는 등 아내 몫까지 아들의 채비를 도와야 했다. 8월 10일, 아들이 드디어 길을 떠났고, 김광계는 신경 쓸 일이 끝나 한숨 돌리려고 하는 차에 다시금 아내의 병이 악화되었다.

김광계는 종에게 김렴을 쫓아가 돌아오라고 전하게 하였다.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 싶었는지 아내의 병세를 꼼꼼히 기록하여 두었는데, 또 다른 종에게 이것을 들려 용궁에 사는 이찬(李燦)에게 전하게 하였다. 이찬은 젊어서부터 병약하여 스스로를 고치기 위해 독학으로 의술을 공부했는데, 이것이 꽤나 훌륭하여 어의도 고치지 못한 인조의 병을 고친 것으로 유명해졌다.
김광계의 아내가 아픈 이때에는 마침 사직하고 용궁(龍宮)에 거주하고 있었다. 또한 김광계의 집안과 혼맥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김광계는 종종 이찬에게 의학적 자문을 구하고는 하였다.
종이 돌아올 때까지 김광계는 걱정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이틀을 보냈는데, 걱정이 심해서 그런지 본인 스스로도 몸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종을 보낸지 이틀이 되던 날인 8월 13일 오후가 되어서야 종이 용궁에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처방전이 들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인삼패독산(人蔘敗毒散)과 신험작약산(神驗芍藥散)을 쓰라고 적혀 있었다. 인삼패독산은 감기 증상에 쓰는 약이며, 신험작약산은 부인이 냉증으로 옆구리가 아플 때 쓰는 약이었다.

당장 다음날 아우, 조카들과 함께 처방대로 인삼패독산 두 첩을 조제하였다. 하지만 아내가 약을 먹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억지로 한 첩을 마시게 하였다. 하지만 다음날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고, 더 손 쓸 도리가 없어서 온 집안사람들이 흐느끼며 장사를 치를 준비를 하며 날을 보냈다. 김광계는 다시금 종 둘을 서울로 보내 아들 김렴에게 돌아오라 전하게 하였다.

그러나 아들을 보지 못하고 김광계의 부인은 8월 18일 밤 이경(9시~11시)에 숨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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