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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제사는 꽃과 함께
『가례』에서는 설․동지와 매달 초하루․보름마다 집안 사당(가묘, 家廟)에 지내는 제사를 참례(參禮)라고 부른다. 이 참례가 변하여 요즘에도 설과 추석에 올리는 차례가 되었다. 김광계 역시 집안 사당을 갖춘 양반으로서 매달 두 번씩 참례를 올렸으나, 참례를 올렸다는 이야기를 일기에 꼬박꼬박 쓰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634년 봄 3월 15일의 참례는 다소 평소와 달랐으므로, 김광계는 친구와 친지들을 만난 일 외에 참례를 올렸다는 사실도 함께 기록해 놓았다. 그 날의 참례에는 ‘새 꽃을 따서 만든 전병’을 올렸던 것이다.

양력을 쓰는 현대인들에게 3월은 아직 추울 무렵이지만 김광계가 살던 조선시대의 음력 3월은 봄 날씨가 한창 따스하게 무르익을 때였다. 특히 음력 3월 3일인 삼월 삼짇날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축제와도 같은 날로, 여성들은 그 날 하루만은 집안일을 그만두고 들로 나와 봄꽃을 따서 화전을 부쳐 먹고 노래를 부르며 즐길 수 있었다.

화전은 봄날의 화창함을 만끽하기에 딱 알맞은 음식이었다. 삼짇날이 지난 뒤라도 봄꽃이 피어 있는 동안에는 드물지 않게 상에 올랐을 것이다. 3월의 참례 혹은 여타 제사에 새 봄꽃으로 만든 화전을 올린 것은 김광계만이 아니라 같은 마을에 살던 김광계의 재종숙부 김령의 일기 『계암일록』에서도 몇 차례 확인된다. 1636년 김령은 이상 기후로 날씨가 너무 추워서 꽃이 피지 않아 화전을 올리지 못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로 보아 평소에는 3월 제사에 화전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양반가라 해도 예법과 격식만 깐깐하게 따져 상을 차리기보다는 때에 맞는 음식, 제사를 올리는 사람들 자신도 즐겁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차려 올리는 것이야말로 조선시대 사람들이 조상에게 정성을 들이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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