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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합격을 원치 않는 과거시험
1639년 1월 20일, 안동에서 과거시험이 있었다. 평소와 달리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유생들이 과거를 보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난 병자호란 때 항복하여 청의 연호를 쓰게 된 일 때문이었다. 이를 굴욕적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그렇다고 과거를 일부러 보지 않는 일은 또 남과 다른 행동을 한다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에 다들 어쩔 수 없다고 중얼거리며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과거 시험장으로 향하였다. 이번 안동 시험장을 관리하러 파견된 경시관(京試官)은 임효발(任孝發)이고, 참시관參試官은 상주 목사 조계원(趙啓遠)과 성주 수령 윤득열(尹得說)이었다. 이 때 김광계의 재종숙 김령의 큰아들과 둘째아들이 과거를 보러 갔다. 과거 합격자의 자격조건을 확인하는 녹명관은 김산(金山) 수령 조정융(曺挺融)이었는데, 이 사람도 지난 관직에서 죄를 지은 바가 있어 그 사람이 응시자격을 확인하는 것 역시도 꺼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과거 응시자는 600명에 달하였다. 과거를 마친 뒤, 김광계의 집에 머물며 과거를 보러 갔던 사돈 집안의 곽유한이 1월 23일부터 25일까지 시험 후의 여독을 풀다가 갔다.

그 다음 달인 2월 3일에는 예천에서 소과 시험이 있었는데, 이 시험에는 김광계의 아들인 김렴도 자신의 사촌들과 과거를 보러 갔다. 이번에도 재종숙 김령의 아들들이 과거에 응시하였고, 곽씨 집안의 곽유녕(郭惟寧)이 멀리 현풍현에서 와서 김광계의 집에 머물며 과거 시험을 보았다. 이번 경시관은 임효달(任孝達)이었다. 과거 시험장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김령의 막내아들이 복통 때문에 과거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였다. 2월 14일에 과거 합격자에 대한 소식이 들어왔다. 오천에서는 오직 김광계의 재종형제인 김요형(金耀亨)만 합격했다. 김요형의 아버지 김령은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기 보다는 이런 굴욕적인 시기의 과거에 합격한 것을 씁쓸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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