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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친구와의 마지막 만남
1626년 10월 18일, 김광계는 밤까지 등불을 켜고 책을 읽다가 평소보다 늦게 잠자리에 누웠다. 까무룩 잠이 들려는데 바깥에서 이상한 인기척이 났다. 누군가 문고리를 두드리더니 곧장 대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한숨 같은 소리가 들려와 누구냐고 몇 번이나 물었으나 대답이 없었다. 의문의 침입자는 곧이어 중문까지 열어젖혔다. 김광계는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침입자는 곧장 김광계가 자고 있던 방으로 들어오더니 그의 두 손을 덥석 잡는 것이었다.

김광계는 한참 살핀 뒤에야 그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오랜 친구 이지형이었다. 본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뱃놀이도 즐기고 술자리도 가지며 절친하게 사귀던 사이였으나, 1623년 이지형이 그만 풍증(風症)이라 불리는 정신질환 증세를 나타내면서 왕래가 끊긴 지 이미 몇 년째였다. 정신질환의 기전이 밝혀지지 않았던 이 시기 정신질환자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증세가 심한 경우에는 가족에 의해 감금되어서 오래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지형 역시 집안 사람들에 의해 갇혀 있었는데 어쩌다 틈을 타 탈출해서는 가까운 거리도 아닌 친구의 집까지 용케 찾아왔던 것이다.

이미 자정을 넘은 시각이었다. 김광계는 침착하게 옷을 걸치고 등불을 다시 밝힌 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지형은 기뻐하면서 김광계와 함께 놀았던 옛일을 떠들고 학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놀랍게도 전혀 미친 사람 같지 않았다. 이지형은 그렇게 김광계와 한참 이야기하다 예를 갖춰 읍을 하고 떠나갔다. 몇 년이나 집에 갇혀 제대로 대화다운 대화도 나누지 못했던 이지형은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도 김광계에게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다. 김광계는 멀쩡할 때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친구의 병이 못내 안타까웠다. 1632년 이지형이 죽으면서 결국 이 밤의 대화는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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