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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80리씩 집에서 멀어지다
사촌 형인 정복시(鄭復始)가 단성 현감이 되고, 류씨 아재가 삼가 현감이 되었으며, 동문수학한 황준량(黃俊良)이 성주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 부근에 있는 두류산과 가야산을 유람하고자 하는 결심이 선 금난수는 마침내 퇴계 선생을 찾아뵙고 하직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준비를 다 마친 11월 12일 오후, 마침내 집이 있는 예안현을 떠나 우선 아내의 오빠인 조목(趙穆)에게도 들러 하직 인사를 하였다.

다음날 아침, 외사촌 형인 남연복(南延福)의 집에 가서 아침을 얻어먹었다. 아침을 먹는 동안 남연복의 동생인 남연록(南延祿)도 얼굴을 비추었다. 외사촌들과 이야기를 적당히 나누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날 저녁에는 일직현(一直縣)에 도착하였는데, 지금 기준으로 예안현으로부터 약 39km나 떨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1월 14일에는 군위현에 도착하였는데, 이 역시 일직현으로부터 약 35km 떨어진 곳이다. 이날은 종 성우(成雨)의 아버지인 최씨의 집에서 묵었다.

이날 밤에는 눈이 내렸지만, 금난수는 굴하지 않고 다음날 아침 약 30km 떨어진 장림역(壯林驛)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여기부터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기 때문에 데리고 온 종 성손(成孫)과 짐말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뒤, 인동현(仁同縣)을 지나 배를 타고 칠진(漆津)을 건너 나루 상류의 오태리(烏太里)에 다다랐다. 성주에 먼저 가서 퇴계 선생이 성주 목사인 황준량에게 전하라고 한 서원 배향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11월 16일에는 약목(若木)에서 아침을 먹은 뒤, 비로소 성주에 당도하였다. 지금 도로 기준으로 약 170km나 이동해 온 것이다. 아마도 좀 더 돌아가는 길이 있었을 수도 있고, 배를 이용하였기 때문에 현대 기준의 이동거리를 적용하는 것이 마땅치는 않지만, 닷새 동안 외지에서 유숙해 가며 이 정도 거리를 이동하였으니 피로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금난수는 관아에 먼저 가서 목사에게 자신의 명함을 전해주라고 건네준 뒤, 근처의 민가에 숙소를 정하고 지친 몸을 쉬었다. 목사와는 다음 날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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