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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끌려간 술자리, 정신을 차리니 창고
나흘에 걸쳐 진사시와 생원시를 모두 마친 금난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과거시험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함안에서 와 함께 과거시험을 치른 조자앙과 신뢰(申磊)는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여 전별하였다. 금난수와 함께 남원리(南院里) 이동(李同)의 집에 기거하며 과거시험을 준비했던 남인록과 권자유는 삼가에 남아 있었는데, 금난수는 이들 중 남인록과 함께 과거시험으로 인해 쌓인 피로도 풀고 벗들도 만날 겸 단계현으로 갔다.
단계로 가자
품관(品官)
이 나와 금난수를 맞이하고, 진주의 유생들이 술자리를 차려 금난수를 대접하겠다고 나섰다. 금난수는 아직 과거에 합격한 것도 아닌데 무슨 술이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길 한가운데에서 끌고 당기는 벗들의 강권에 못 이겨 술자리에 앉게 되었다. 과거 이야기도 하며 떠들썩하게 술을 마시다 보니 모르는 사이 술이 몇 순배나 돌았다. 술에 못 이겨 결국 자리를 떴을 때는 아직 대낮이었는데, 술기운 때문에 멀리 가거나 누구를 만날 수가 없어 근처의 창고에 들어가 쉬어야만 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성재일기(惺齋日記)
전체이야기보기
저자 :
금난수(琴蘭秀)
주제 : 유흥
시기 : 1561-02-22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남도 산청군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금난수, 조자앙, 신뢰, 남인록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금난수
◆ 사람이 술을 마시거나 술이 술을 마시거나
많은 전통과 관습이 바뀌거나 사라지고 있지만 술을 마시는 예법은 비교적 습관처럼 남아 있는 편이다. 처음 술을 마실 때는 어른 앞에서 술 마시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거나, 연장자 앞에서는 술잔을 가리고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마신다거나, 술을 따를 때는 두 손으로 공손히 따르고, 받을 때도 두 손으로 받는 모습 등은 어느 술자리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모습이다. 이렇게 전통적인 예법이 우리에게까지 몸에 배일 정도로 우리 조상들에게 술을 마시는 행위와 술을 나누는 자리는 매우 중요한 의례나 절차였고 그만큼 술자리는 관계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다보니 술자리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더욱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술을 마실 때의 예법을 중시하던 우리 조상들의 마음가짐도 과하게 마신 술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집집마다 맛과 향이 다른 가지각색의 가양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를 앞에 두고 권하는 술을 ‘적당히’ 마시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조선시대 양반들의 음주 문화에 있는 '순배'는 과음을 피하기 힘들게 만드는 문화이기도 했다. 일행들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면서 술잔은 하나만 준비하여 좌장이 먼저 한 잔을 마시고 그 술잔을 옆으로 돌리기도 하고, 한 바퀴 다 돌고 나면 다시 한 바퀴씩 또 돌려가며 술을 나누었는데 반드시 세 순배, 다섯 순배, 일곱 순배와 같이 홀수로 끝을 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더 이상 못 마시겠다."는 사람은 뒤로 물러나 앉고 그 술잔은 다음 사람으로 넘겼다고 하는데, 이것도 일단 술이 과해지면 적절한 시기를 놓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또, 술을 마시는 적당한 양에 대해서는 '일불(一不)', 삼소(三少), 오의(五宜), 칠과(七過)'라 하여 한 잔술로 끝내서는 안 되고, 세 잔으로는 모자라며, 다섯 잔이라야 적당하고, 일곱 잔이면 과하게 되니 더 이상 마시지 말라는 것인데 이런 말이 지켜질 정도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음주 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 관대한 문화도 과음의 한 요인이 되었다. 근본 원인을 사람이 아니라 술로 돌린다. 조선시대 숙종은 대제학 오도일이 종묘에서 술에 취해 실수를 한 일에 대해 이를 비난하며 잘못 기용한 것이라는 내용의 상소를 보고, “술로 실수한 것이 아주 나쁜 것인지 나는 모르겠고, 문형(文衡=대제학을 이르는 말)으로 그가 맞지 않다는 것도 나는 모르겠다.”(숙종실록 23년(1697) 윤3월 22일)고 했다.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왕은 특별히 신하들에게 술을 내리기도 했다. 이를 선온(宣醞)이라 한다. 유희춘이 선조와 저녁 공부를 한 뒤에 왕이 내린 술을 마셨던 경험은 흥미롭다.
“말씀이 끝난 뒤에 신 등이 물러나 자리에 엎드려 있으니, 내시들이 구리 쟁반에 안주와 과일을 담아가지고 여섯 신하 앞에다 놓았다. 승전색이 선온을 가지고 와서 은 종지로 술을 따라주는데, 그 종지가 해바라기 꽃 둘을 담을 만하였다. 희춘이 애써 마시는데 겨우 절반을 마시고 물러나 그 아래에 앉고, 다섯 신하들도 다 받아 마시고 선온을 끝냈다. 그런 다음 술잔을 세 번 더 돌린 뒤에 마쳤다. 예법으로는 안주와 과일을 많이 품고 나와야 하는데, 희춘은 크게 취해 몸을 가누기 어려워서 겨우 4분의 1을 집어 소매에 넣고 땅에 엎드려 나왔다. 섬돌을 내려와 뜰을 걷다가 다시 남쪽 계단을 오르는데, 취하고 약하여 힘들었지만 넘어질듯 하면서도 다행히 쓰러지지 않았다. 궁전문을 나서니 서리들이 좌우에서 부축해줘 겨우 내약방에 이르러 꺼꾸러지고 말았다. 다시 서리들에 업혀서 홍문관 방에 들어갔으나 두통이 그치지 않았다. 그렇지만 술 하사가 영예로운 은총이기에 토하지도 못하고 끝까지 참다가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미암일기』 1573. 2. 4.)
주인공이 술에 약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왕이 내리신 술이니 토하지 않고 참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중종이 왕세자의 선생들인 서연관에 내린 잔치 장면을 보면, 아직 파하기도 전에 이미 취하여 하인들의 부축을 받고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유희춘도 이런 식으로 부축을 받아 나왔을 것이다. 왕이 술을 금지하는 금주령을 내리기도 했다. 태종은 즉위한 직후에, 금주령을 내려도 술 마시는 자가 그치지 않는 것은 자신이 끊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여 술을 올리지 말라고 명령하자 나랏 사람들이 감히 마시지 못했다고 한다. 태종 17년(1417)에는 수원부사 박강생이 감찰하러 온 사람들을 초청하여 염소를 잡고 술자리를 마련했다고 하여 문제가 되었다. 농사철에 금주령을 내렸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그는 이전에도 전력이 있었으니, 사헌부에서 올린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박강생은 지난번에도 이웃고을의 수령과 관할지를 벗어나 안양사에 모여서 소주를 강권하다가 김문을 죽게 하였는데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태종실록 17년(1417) 윤5월 22일)
세종 때에는 술 마시는 것 자체를 금한 것이 아니라 취하도록 마시는 것을 금지한 것으로 보인다.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연회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시는 것을 엄중히 금지하고 있으나 밤을 이용하여 술자리를 벌이는 사람들이 흔히 있는데, 이것은 순찰하는 자가 체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밤에 술을 마시다가 발각되면 곧 그 날 그 지역을 순찰한 관리를 추궁하여 중죄로 다스리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세종실록 8년(1426) 1월 19일)
성종 때에도 술 한 병 정도는 금하지 않았다.
“임금이 대사헌 이서장에게 이르기를 ‘지금 바람이 계속 불고 비가 오지 않으니, 금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백성들이 술 한 병 정도 지니는 것은 금하지 말라’고 하였다.” (성종실록 6년(1475) 4월 9일)
그래서 중종 때에 박호는 “한 병의 술은 금지하지 않기 때문에, 심한 자는 죄를 받지 않으려 하여 술이 아무리 많아도 반드시 병으로 운반합니다.”고 지적하였다. 이리하여 중종 22년(1527) 5월에는 병술마저 금지했다. 중종 36년(1541)에는 술을 빚는 데에 쓰이는 누룩도 매매하지 못하게 하였다.
금주령을 아주 엄격하게 지시한 왕은 영조였다. 그는 재위 기간 내내 엄하게 금주령을 시행하였다.
“이때 임금이 엄한 법으로 술을 금지했으므로 이를 범한 사람이 종종 처형되었다. 또 이웃을 연좌시키는 법을 만들어서 한 집에서 금주령을 범하면 세 집이 같이 죄를 받게 하니, 백성들이 매우 두려워했고 뭇 신하들도 감히 간하지 못하였다.” (영조실록 39년(1763) 11월 22일)
◆ 원문 번역
2월 22일 조자앙과 신뢰는 함안으로 길을 나서고 남중수는 권자유와 함께 삼가에 남았다. 나는 남성중과 함께 단성으로 돌아와 단계에 들렀다. 단계 품관品官이 나와서 맞이하고 진주 유생이 술자리를 차렸는데, 길에서 친구가 만류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들어가 좌정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서 일어나 나와 창고 집에서 쉬다가 말을 달려 죽정竹亭에 들어가 류화중을 만나보았다. 류화중이 있었다. 단성에 당도하니 날이 벌써 어스름 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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