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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타고 위풍당당 시가행진
서울에 올라와 8월 11일에 진사시, 8월 13일에 생원시를 치른 금난수는 이제나저제나 하며 과거시험의 결과인 방목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송나라 때 『요재지이(聊齋志异)』를 지은 작가 포송령(蒲松齡)은 과거에 여섯 번 낙방했는데, 그가 지은 글 「거자칠변(擧子七變)」이 방목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금난수의 마음을 대변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나, 과장에 들어갈 때는 온몸이 무거운 거지 몰골이요,
둘, 몸 수색 받을 때는 죄수 몰골이며,
셋, 칸막이 방에 들어앉으면 밖을 기웃거리는 새끼벌 몰골이요,
넷, 시험이 끝난 후 밖으로 나오면 병든 새 몰골이며,
다섯, 결과를 기다릴 때는 목이 묶인 채 안절부절 못하는 잔나비 몰골이요,
여섯, 낙방을 확인한 후에는 약 먹은 파리 몰골이요,
일곱, 홧김에 세간을 부수고 나면 제가 품은 알을 깨뜨려 버린 비둘기 몰골.

마침내 8월 19일에 방목이 나왔다. 방목에는 금난수의 이름이 식년시 소과의 생원시에서 선발된 100명 중 46위로 적혀 있었다. 평균 이상의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다음날 아침 금난수는 진사시의 장원 홍성민(洪聖民)과 생원시의 장원 조정기(趙廷機)을 만나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었다. 이후 낮에는 안동(安東) 경저(京邸)로 가서 같은 해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모이는 회합인 방회(榜會)를 열었다. 방회는 하룻저녁에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에는 삼청동(三淸洞)에서 다시 방회가 열렸다. 이후로 며칠간 금난수는 서울에 있는 아는 사람들을 만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신세진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다녔다.

방목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은 기쁨을 느낀 날로부터 보름이 지난 8월 29일, 마침내 창방식(唱榜式)이 열렸다. 합격자의 이름을 부르고 패를 수여하는 의식인데, 소과에 합격한 금난수는 백패(白牌)를 받았다. 보름간 이날 입을 공복(公服)을 마련해 놓은 것은 물론이었다. 다음날에는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은숙배(謝恩肅拜)를 거행하였다. 임금 뿐 아니라 공자 및 성현들에게 감사하는 일도 잊어서는 안 되었다. 그리하여 다음날에는 급제자들이 모여 성균관의 문묘(文廟)에 참배하였다.

같은 날에는 사마시(司馬試, 생원‧진사시)의 합격자들이 말을 타고 서울 시내를 누비는 유가(游街)를 하게 되었다. 장원인 조정기의 집에 모인 급제자들은 장원을 한 조정기가 대열의 맨 앞에 세워 제마수(齊馬首)로 삼았다. 악대를 동원해 신나는 음악을 울리며 친지, 선배 등의 집에 방문해 감사인사를 올리는 유가는 며칠간 성대하게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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