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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목욕여행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말, 금난수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처남이 현감으로 있는 봉화현 관아로 향했다. 봉화에는 약수가 나온다고 하는
초정(椒井)
이 가까웠는데, 여름에 이 약수로 목욕을 하는 것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피서법이었다. 봉화에 도착한 다음날, 금난수는 가족들을 관아에 남겨둔 채 혼자 초정에 가서 목욕을 하였다. 금난수 이외에도 안제, 정원건, 권순, 권윤번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초정에서 목욕을 하였다.
관아에서 8월 1일 초하루 제사를 지내고, 다음날에는 향교에서 이루어지는 석전대제에 참여한 금난수는 이틀간의 제사 때문에 땀을 한 바가지 흘렸는지 저녁에 식구들을 데리고 초정으로 가서 한 차례 목욕을 했다. 저녁 목욕에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해가 뜨자마자 초정에서 다시 네 차례 목욕을 하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속속 여러 사람들이 자기 식구들을 데리고 초정에 도착했다. 초정은 초만원이었다.
금난수는 질리지도 않는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목욕을 하였고, 그러는 중에도 금난수와 함께 목욕하는 사람들은 계속 교체되었다. 목욕을 하러 봉화에 온 사람들 때문에 관아는 거의 객사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초정에서 목욕하는 것은 인기 있는 피서 방법이었다. 초정에서 열흘간 거의 매일같이 줄기차게 목욕을 한 금난수는 이제야 어느 정도 만족하였는지 8월 9일에 식구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성재일기(惺齋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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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금난수(琴蘭秀)
주제 : 목욕, 여행
시기 : 1577-07-29 ~ 1577-08-09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봉화군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금난수, 안제, 정원건, 권순, 권윤번
참고자료링크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금난수
◆ 조선 최고의 약수, 애전(艾田)의 초정 약수
애전 약수탕은 현재 경북 봉화군 물야면 문수로에 위치하는 오전 약수탕을 말한다. 애전(艾田)은 쑥밭이라는 뜻인데, 그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이 지역이 물이 합수되는 지역이라 하천이 범람하여 항상 늪지대였기에 그런 뜻으로 수전(水田)이라 하였는데, 다른 말로 쑤뱅이라 불리던 것이 쑥밭으로 변경되었다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이곳 약수물이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문둥병 환자들이 약수를 먹고 몸을 씻고 이 지역에 있는 쑥으로 피부에 뜸을 뜨고 달여 먹고 하여 병을 고쳤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쑥밭이라 불리웠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의 약수는 물야면 오전리 후평장과 춘양 서벽장을 드나들며 장사를 하던 봇짐장수[褓負商] 곽개천이라는 사람이 서벽장을 보고 주실령을 넘어 후평장으로 가던 어느 날 쑥밭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와 이르기를 “네 옆에 만병을 통치할 수 있는 약수가 있다.”라고 하였다. 잠에서 깨어 옆을 보니 과연 약물이 솟고 있었고, 조선 제9대 성종(1469 ~ 1494)때 발견된 이 약수는 이듬해 가장 물맛이 좋은 약수를 뽑는 대회에서 전국 최고의 약수로 뽑혔다고 한다.
이 약수는 탄산성분이 많아 톡 쏘는 맛이 일품이며 주요성분은 유리탄산, 망간, 마그네슘이온, 염소, 중탄산, 칼슘이온, 철분으로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고, 한국의 7대 약수의 하나로 이미 조선초기부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초수정(椒水井)또는 초정(椒井)으로 불렸다. 청주의 초정에 버금가는 물로 서울에서 이곳으로 오는 거리가 멀어 조선시대 왕들이 이곳에 오지 않고 청주의 초정을 방문해 목욕하곤 했다고 한다.
초정은 영천(榮川, 지근의 영주)지역에 속해있었는데 초정 옆에 20여 칸의 욕실이 있어 해마다 가을철이면 원근에서 선비들과 여성들이 모여들어 목욕했고, 당시 영천 군수 황시(黃是, 영천군수 재임년 1596~1599)가 초정 위에 기와집 한 칸을 지어 비를 피했다. 하지만 1616년(광해 8)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 ~1620)가 “볕이 들지 않으면 매운 기운이 약해진다.”라며 초정위의 기와집을 철거시켰다.
‘한강집’ 연보를 보면 1616년(광해 8) 영천(榮川) 초정(椒井)에서 목욕했다.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도 휴가를 청해 영천(榮川)의 초수정(椒水井)에서 목욕했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도 영천군(榮川郡)에 초정(椒井)이 있는데 목욕한 자들이 대부분 효험을 보았다고 자신의 글에 기록하고 있다. 외재(畏齋) 이후경(李厚慶, 1558~1630)은 한강 정구 선생을 모시고 이곳을 다녀갔으며,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 오한(?漢) 손기양(孫起陽, 1559∼1617), 동리(東籬) 김윤안(金允安, 1562∼1620), 등암(藤庵) 배상룡(裵尙龍, 1574∼1655) 등 당대의 큰 학자들이 이곳 초정을 찾아 목욕하고 같다.
또한, 초정을 찾은 많은 인사가 시문을 남겼는데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 초수정(浴椒井)과 초정(椒井) 시 2수를 남겼으며, 단곡(丹谷) 곽진(郭瑨, 1568~1633),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1517 ~ 1563), 춘당(春塘) 오수영(吳守盈 1521~1606),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 1517~1586) 등의 시가 전해져 오고 있다.
◆ 원문 번역
정축년(1577년, 선조 10) 7월 29일 식구를 데리고 봉화奉化에 갔다. 가는 길에 온계에서 찰방 아재를 찾아뵙고 저녁에 봉화현 관아에 당도하였다. 초정椒井에서 목욕을 할 계획이다. 7월 30일 식구들을 관아에 남겨두고 혼자 초정에 가서 목욕을 하였다. 안여지安汝止【안제安霽의 자字이다.】도 식구들을 데리고 와서 목욕을 한지 벌써 3일이나 되었다. 정원건鄭元健 사강士强, 권순權諄 여회汝誨, 권윤변權胤卞 언사彦嗣, 권수증權守曾 사윤士胤, 권경생權慶生 중시仲時, 안담安霮 여숙汝叔이 함께 있었다. 저녁에 관아로 돌아왔다. 8월 8월 1일 관아에서 초하루 제사를 지냈다. 8월 2일 조사경 형과 함께 향교에 가서 석전釋奠에 참석하고 음복을 하였다. 헌관은 금응신琴應侁 자진子振, 금응남琴應南, 권사온權士溫, 곽안인郭安仁이고, 훈도는 권겸權謙이다. 저녁에 식구들을 데리고 초정에 돌아가 한 차례 목욕을 하였다. 8월 3일 네 차례 목욕을 하였다. 8월 4일 병사 김백영金伯榮(김부인金富仁)이 왔다. 이윤량李閏樑과 김부생金富生이 배행하여 왔다. 이수李壽 인로仁老도 식구들을 거느리고 왔다. 8월 5일 네 차례 목욕을 하였다. 안여지安汝止(안제安霽)가 식구들을 거느리고 정자강鄭子强, 권순權諄 등과 함께 모두 돌아갔다. 이민도李敏道가 보러왔다. 8월 6일 정랑 권동보權東輔와 봉화 수령이 보러왔다. 저녁에 병사 김백영이 집안 식구들을 이끌고 관아에 들렀다. 8월 8일 관아에서 시제時祭를 지내고 바로 고감高甘에서 누님을 뵙고 지나는 길에 영해 부사寧海府使 댁을 뵈었다. 저녁에 병사 김백영이 관아에 들렀다. 8월 9일 식구들을 거느리고 돌아왔다. 지나는 길에 문촌文村에서 주부 금응석琴應碩을 찾아보고 온계에 들러 생원 금사임琴士任(금보琴輔)을 만나보았다. 이보경李輔卿(이빙李憑)과 오겸중吳謙仲(오수영吳守盈)이 다 보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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