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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상과 겹친 김부필의 장례
김부필은 이황 문하의 유명한 학자이자 안동의 명유 중 하나였다. 도산서원과 역동서원 건립에도 주축이 되었기 때문에, 금난수는 학문의 선배를 대하는 마음으로 김부필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시시때때로 인사를 올리곤 했다. 또 금난수와 같은 집안인 금응훈, 금응협과는 고종사촌이었기 때문에 금난수도 그의 먼 인척 중 하나였다. 김부필은 1477년 10월에 사망하는데, 금난수는 같은 달 14일에 부음을 듣고 그의 빈소가 있는 오천으로 가서 곡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빈소가 차려져 있는 약 3개월간 김부필의 상례 절차마다 참여하였다. 11월 10일에도 김부필의 궤연에 전(奠)을 올렸으며, 같은 달 26일에도 도산서원 유사들과 금씨 집안에서 김부필과 가까운 촌수에 있는 친척들이 모여 다시 한번 전을 올렸다. 12월 12일에는 김부필의 발인이 있었는데, 그의 묘는 거인(居仁)에 정해졌다. 이때에도 금난수는 참여하여 반혼(返魂)까지 함께하였다. 그런데 이날로부터 엿새 전, 인종(仁宗)의 비인 인성왕후(仁聖王后)의 국상(國喪)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서 금난수는 다시 한번 상복을 갈아입는 성복(成服)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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