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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상 복장으로는 설 참배도 할 수가 없네
1577년 11월 29일에 인종(仁宗)의 비인 인성왕후(仁聖王后)가 승하하였다. 국상 기간에는 국왕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백모(白帽)·백립(白笠)·백포(白袍)·백의(白衣)·백상(白裳)·백화혜리(白靴鞋履) 등 온통 백색으로 통일된 상복을 입어야 했다. 금난수는 12월 12일에 상복으로 성복(成服)하였고, 이 차림으로 이제 약 3년간 지내야 했다. 1578년 새해를 맞은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옷을 입고 새해 벽두를 흥겹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상복을 입은 채로는 흥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1월 1일에 가묘에 참배를 하고서 친척들끼리 서로 세배를 하며 다정한 시간을 보낸 뒤, 1월 3일에는 도산서원에 갔다. 퇴계 이황의 장손이자, 훗날 금난수의 셋째 아들 금개의 장인이 되는 이안도를 가는 길에 만나 함께 서원에 들어갔다. 참배를 하려고 하는데, 문득 자신이 지금 상복 차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차림으로는 사당에 배알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당 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안도와 금난수는 멋쩍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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