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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의 은혜에 감사드리러 가는 먼 길
제릉 참봉에 제수된 금난수는 일단 서울에 가서 관직을 내려주신 임금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사은숙배를 해야 했다. 관직을 받은 뒤 30일에서 40일 내에는 반드시 사은숙배를 해야 했다. 만일 사은숙배를 하지 않으면 임명이 취소되기 때문이었다.
금난수는 6월 7일, 온계(溫溪: 현 도산면 온혜리)와 고감(高甘: 현 예안면 삼계리)를 거쳐 봉화현 관아에 다다랐다. 하루를 머무르는데, 비가 많이 와서 도저히 길을 나설 수가 없어 결국 다음날까지 봉화에 발이 붙들렸다. 다음날에는 가마를 타고 내성천을 건넜다. 이날은 서천일(徐千一)의 집에 투숙하였고, 날이 밝자 바로 사촌 매제 배삼익을 방문했다. 배삼익의 집에는
영천(榮川)
에서 온 구경서(具景瑞)가 머무르고 있었는데, 금난수는 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산 넘고 물 건너는 일정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에는 힘든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죽령을 넘어가야 했던 것이다. 죽령을 넘어 겨우 단양(丹陽)에 도착했다. 단양부터 서울까지는 고단한 뱃길을 가야 했다. 얼마 전 비가 많이 와서 수량이 늘어나 불안하기도 했다. 충주로 갔을 때는 머무를만한 곳이 없었는지 달천(達川: 현 달천동)의 배 위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했다. 다음날 아침을 먹은 뒤 바로 배를 타고 출발하였는데, 이날은 갈산리(葛山里)에서 하룻밤을 머물렀고, 이튿날인 6월 14일에는 한강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안동을 떠난 지 이레 만이었다.
서울에서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김돈서(金惇叙)가 금난수에게 종과 말을 보내주었다. 금난수는 봉화
경저(京邸)
에 들어가 임시로 거처하기로 하였고, 밤에는 이곳으로 김돈서와 이봉원(李逢原)이 찾아와 먼 길을 온 수고를 위로하였다. 서울에 도착한 뒤 사흘간 여러 손님이 금난수를 방문하거나 안부를 물어왔다. 마침내 6월 18일, 금난수는 궐에 들어가 사은숙배를 하였고, 마찬가지로 참봉에 제수된 성효선(成孝先), 안몽열(安夢說)이 찾아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는 잠시나마 풀어놓았던 짐을 다시 꾸리고 부임지인 제릉으로 출발할 때가 되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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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성재일기(惺齋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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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금난수(琴蘭秀)
주제 : 관직생활
시기 : 1579-06-07 ~ 1579-06-18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금난수, 서천일, 배삼익, 김돈서, 이봉원, 성효선, 안몽열
참고자료링크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배삼익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금난수
◆ 조선시대 관직 임명자의 상경 풍경
삼남지방에서 수도인 서울에 이르는 길은 크게 세 갈래가 있었다. 제1로는 전라도 지방에서 시작하니 목포에서 나주, 전주를 지나 천안을 거치고 수원을 지나 과천으로 이르는 길이었다. 제2로는 진주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함양, 거창을 지나 김천, 상주를 거치고 문경 새재를 넘어 충주, 장호원, 이천을 지나 광주를 지나는 길이다.
제3로는 부산의 동래 지방에서 밀양, 대구, 안동을 거쳐 죽령을 넘고 단양, 제천, 원주, 횡성, 홍천, 양평을 지나 서울로 들어온다. 이상의 삼남대로는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죽령은 풍기와 단양을 잇는 고갯길이다. 죽령은 소백산 도솔봉과 제2연화봉 사이에 있다. 예로부터 죽령을 아흔아홉 굽이에 내리막 30리 오르막 30리라고 했다. 한양과 경북을 잇는 최단 경로인 탓에 사람들은 힘들어도 이 험한 고개를 넘었다. 죽령 고개는 문경의 문경새재, 영동의 추풍령과 함께 영남과 한양을 잇는 3대 관문으로 꼽힌다. 조선시대에는 영남에서 서울로 공물과 진상품을 수송하는 통로였으며,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하는 선비, 봇짐과 행상을 지고 힘든 길을 이어가는 보부상, 영남지방의 양반과 생원, 진사대감의 행차길이었고, 부임한 지역을 오가는 관리 등의 모든 사람들이 죽령을 통해 오갔다. 삼국시대의 죽령은 고구려와 신라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군사적 요충지였다. 진흥왕 12년(551년) 신라의 장수 거칠부가 백제와 연합해 고구려를 죽령 이북으로 패퇴시켰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해진다. 또 이곳은 평강공주의 남편인 고구려 장수 온달이 죽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길에는 옛 이야기가 많이 얽혀 있다. 퇴계 형제가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고도 하고, 향가 모죽지랑가의 주인공 죽지랑에 대한 얘기도 전한다.
오대산 상원사 동종에 얽힌 얘기도 재미있다.
조선 세조 때에 안동도호부 남문루에 있던 동종(3천3백근)이 오대산의 상원사로 옮겨가기 위해 죽령을 넘을 당시 눈물겨운 사연이 전해오고 있다. 동종은 경주의 에밀레종보다 100여년 앞서 주조된 것이라 하며 금.은.동.주석을 녹여 만든 종으로 높이 1.4M, 직경 1.2M로 용신을 틀로 하여 사방을 구분할 수 있는 비천선녀무늬가 있고 사방에 각각 가로 세로 3개씩 불교에서 쓰는 3자 삼삼으로 배열된 젖꼭지 36개가 돌출하여 종의 청아한 울림을 떨리게 잡도록 함으로서 은은하고 끊어질듯하면서도 백리까지 울려 퍼졌다한다
원래 절의 범종이었는데 조선 초기 억불정책으로 절이 쇠퇴하자 안동도호부의 시간을 알리는 관가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되었다한다. 그러던 중 세조가 등극한 뒤 12년 후인 1466년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위의 상원사를 확장하고 임금의 원당사찰로 만들면서 전국에서 가장 소리가 좋은 종을 찾기 위해 상원사운종도감의 직책을 주어 전국을 수소문하던 중 선택되었다 한다. 3천3백근의 종을 나무수레에 싣고 500여명의 호송원과 100여필의 말이 끌어 상원사로 옮기던 중 죽령고개를 10여M 남겨두고 종이 꼼짝하지 않게 되었다.
죽령고개를 넘느라 힘이 빠져서 그렇겠지 하였으나, 5일이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아 묘책이 없었다. 운종도감은 묘안을 생각하던 중 100살도 못사는 사람도 고향 떠나기를 아쉬워하는데 하물며 800살이 넘어 숱한 애환을 지닌 범종이 죽령만 넘으면 다시는 못 볼 고향을 떠나는 것이 아쉬워 움직이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36개의 젖꼭지 중 한 개를 잘라서 고향으로 보내 안동남문루 밑에 묻고 정성껏 제를 올린 다음 죽령에 돌아와서 "이제는 길을 떠나시죠."하며 종을 당기니 그제서야 움직여 단양을 거쳐 제천, 원주, 진부령을 넘어 상원사에 안치되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죽령은 나그네들이 쉬어가는 주막이 많던 곳으로 특히 술 빚는 주정이 발달해 어느 곳보다 주막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이를 토대로 괴산 조령과 단양 죽령의 백두대간 양사면의 영로 주막을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났다.
먼저 조령은 백두대간 동쪽 사면(문경), 죽령은 서쪽 사면(단양)에 주막문화가 크게 발달했다. 조령 문경사면에는 7개, 연풍사면에는 2개의 주막이 존재했다. 반면 죽령 단양사면에는 8개, 풍기 사면에는 3개의 주막이 위치했었다.
주막거리를 지나면 길은 조금 더 가팔라지고 이내 죽령주막이 나온다. 막걸리와 파전, 나물전 등을 부쳐낸다. 이곳에서 고개 정상은 두어 걸음이면 족하다.
이제 죽령을 넘으면 단양, 제천이다. 그곳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한양에 과거보러 가던 선비들이 맑은 계곡 물에 땀에 절은 갓끈을 빨았다는 ‘탁사정’(濯絲亭)을 향한다. 탁사정의 행정지명은 충북 제천시 봉양읍. 북쪽은 강원도 치악산, 서쪽은 충주시와 구 중원군, 동쪽은 제천시와 영월군, 남쪽은 단양군과 맞닿아 있다. 치악산의 남쪽 주봉인 남대봉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남하하면서 강원도 신림면을 거쳐 충북과의 도계를 건너면 바로 탁사정이다. 죽령을 넘어 서울로 올라가다 깨끗한 계곡물을 만나 땀을 식힐만한 곳이다. 당연히 이 계곡물을 건너야 했기 때문에 갓끈도 빨고 탁족(濯足)도 했을 법하다. 그러니 물이 돌아가는 곳 언덕위에 작은 정자를 세웠을 것이고 여기서 잠깐 시상을 다듬을 짬을 내었을 것이다. 탁사정 계곡은 주위에 내노라하는 명승절경이 많다.
탁사정을 지나 내려가다 봉양 4거리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유행가로 유명해진 ‘울고넘는 박달재’가 나온다. 과거보러 가던 경상도 선비 박달과 충청도 처녀 금봉이의 애절한 사랑 전설이 깃든 곳이다. 이 천등산과 인등산을 넘으면 충주시다. 봉양 4거리까지 내려와 왼쪽으로 꺾으면 제천시로 들어가 의림지를 볼 수 있고, 물론 도담3봉과 단양8경을 자랑하는 단양군도 인접해있다. 이 길을 따라 원주를 거쳐 횡성, 홍천, 양평을 지나 한양으로 들어간다.
◆ 원문 번역
6월 7일 온계溫溪와 고감高甘을 거쳐 봉화奉化에 당도하였다. 6월 8일 비 때문에 현縣에 머물렀다. 6월 9일 가마로 내성천奈城川을 건너 구계응具季膺과 함께 서천일徐千一 집에 투숙하였다. 6월 10일 아침에 지나는 길에 풍기 군수 배여우裵汝友를 찾아갔더니, 구경서具景瑞 영공이 영천榮川에서 와서 머무르고 있었다. 구경서 영공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6월 11일 죽령竹嶺을 넘어 단양丹陽에서 잤다. 6월 12일 충■忠■ 김사칙金士則【이름은 수철守鐵이고, 나와 생원 동년同年이다.】집에서 아침을 먹고, 저녁에 달천達川 배[船上]에서 잤다. 6월 13일 아침을 먹은 뒤에 배를 타고 출발하였다. 갈산리葛山里에서 잤다. 6월 14일 한강에 배를 대니, 김돈서金惇叙가 종과 말을 보내주었다. 봉화 경저京邸에 들어가 임시로 거처하였다. 밤에 김돈서와 이봉원李逢原이 찾아왔다. 6월 15일 이자화李子華가 찾아오고, 류응현柳應見 형제가 안부를 물어왔다. 6월 16일 류응현과 류이현柳而見을 찾아보고 김돈서 집에 당도하였다. 취하여 돌아왔다. 6월 18일 사은숙배謝恩肅拜를 하였다. 참봉 성효선成孝先, 안몽열安夢說, 정자 권언회權彦晦가 보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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