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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베고 나무 심는 능참봉의 일상
얼마 전 거센 바람이 불었다. 제릉 근처의 나무 몇 그루가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금난수는 몸소 제릉 근처의 산을 돌면서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을 살펴보았다. 산에 올라가는데 금난수가 빈손으로 갈리는 없었다. 금난수는 산행에 동행한 이반룡(李攀龍), 민린(閔嶙)과 함께 북쪽 봉우리 꼭대기에 앉아서 어느덧 시원해진 가을바람을 쏘이며 술 몇 잔을 마셨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8월은 추석(음력 8월 15일)을 전후로 하여 벌초를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금난수도 곧 제릉에 벌초를 하고 떼를 갈아입히는 일을 해야 했다. 번잡스럽게 여러 사람이 왔다 갔다 하고, 릉 봉분 위의 풀을 베느라 소란스러울 것이기 때문에 일단 신주를 다른 곳에 모셔 놓고 작업을 해야 했다. 신주는 사사로이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옮기기 전에 신주를 옮길 것이라 고하는 이안제(移安祭)를 지내야 했다. 이안제를 지내기 이틀 전인 8월 13일에는 서울에서 예조가 보낸 향과 축문이 도착했고, 제관으로 장단부사(長湍府使)와 김포현령(金浦縣令) 노극신(盧克愼), 양천현령(楊川縣令) 이대춘(李大春)이 제사 하루 전에 도착하였다.

8월 15일 새벽에 이안제를 무사히 마친 뒤, 바로 다음날부터 일꾼을 모아 벌초를 하였다. 선공감에서는 감역관 송훤(宋暄)을 보냈고, 도감 예조좌랑 송수(宋璹)도 함께 와서 일을 관리하였다. 모든 작업이 마무리 될 때까지 이들은 제릉의 원찰인 연경사에 임시로 거처하게 되었다. 금난수는 매일같이 감역관, 도감과 함께 능 위에 올라가 살피고 일을 논의하였다.

일이 대강 마무리 된 것은 그로부터 보름도 더 지난 8월 27일이었다. 다른 곳에 모셔놓았던 신주를 다시 돌려놓는 환안제(還安祭)를 지내기 위해 파주교수 김현도(金玄度)와 교동현감 박안민(朴安民)이 환안제의 전사관(奠祀官)으로 왔다. 또한 좌의정 강사상(姜士尙), 우참찬 성세장(成世章), 병조판서 정종영(鄭宗榮), 예조판서 류전(柳琠), 남응운(南應雲) 등 고관들이 모두 제릉에 도착하여 금난수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하여 8월 29일에는 작업의 마지막으로 봉분에 떼를 갈아입히는 개사토(改莎土)를 한 뒤, 환안제를 지내는 것으로 모든 절차를 마쳤다. 이제 곧 날씨가 차가워지게 되므로, 이 시기에 벌초 및 벌목을 잘 끝내 놓으면 다음 해 까지는 잡초가 잘 나지 않게 된다. 능참봉으로서 한 해의 큰 업무 중 하나를 끝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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