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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볼 수 없는 강물의 위험
1580년 6월 1일, 제릉에서 초하루 제사를 지낸 뒤, 으레 그렇듯 음복을 하려고 다들 모양새를 갖추어 앉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제관으로 온 사람들은 개성부 교수 장백거(張伯擧)와 강화부사 곽영, 풍덕군수 박홍(朴泓), 통진부사였다. 강화부사인 곽영은 술도 좋아하고 풍류도 좋아하였는데, 지난 해 8월의 초하루 제사의 제관으로 제릉에 왔을 때는 음복을 너무 과하게 해서 재실에서 한참 쉬고서야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취했었다.

그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곽영은 이번에는 짐짓 점잖게 임지로 돌아가려면 배를 타야 하니 마실 수 없겠다며 음복을 거절하였다. 통진(현 김포시 통진읍)부사도 마찬가지로 배를 타고 임지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며 강화부사와 함께 떠나갔다. 통진은 얼핏 보면 섬이 아닌 육지이지만, 개성에서 오가기 위해서는 강화도와 마찬가지로 한강 하구를 반드시 건너야 했다. 남은 사람은 임지가 제릉인 금난수와 마찬가지로 임지가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풍덕군수와 개성부 교수 장백거였다. 이들은 임지로 돌아갈 걱정 없이 제릉의 비각 그늘에 앉아 술을 신나게 마셨다.

이때만 하더라도 금난수는 술을 마시는 것이 강을 건너는 데 위험하다는 사실을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몸소 깨닫게 되었다. 6월 11일에 금난수는 풍덕군 관아에 들어가 군수와 저녁때까지 만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마침 내린 여름비로 강물이 불어나 제방이 무너졌고, 평소 같으면 아무리 취해도 가뿐히 돌아올 수 있는 둑방의 길이 범람한 물로 엉망이었다. 술이 확 깨는 위험한 상황에 말고삐를 잡은 종자도 울상이었다. 다행히 아무런 피해 없이 제릉으로 돌아오기는 하였으나, 다음날 풍덕군수가 잘 들어갔냐는 안부를 물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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