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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집에서 지붕 없이 지내다
사랑에 앉아 식사를 기다리고 있던 노상추는 벌떡 일어났다. 타는 냄새가 진동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부엌에서 음식을 잘못해서 태우는가 싶었는데, 그 정도 냄새가 아니었다. 창문을 여니 사람들이 불을 끄러 다니느라 분주했다. 노상추는 일단 중요한 문서들과 아이들을 챙겨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행히 곧 불길이 잡혔고, 노상추와 가족들이 기거하는 건물에는 불이 옮겨붙지 않았다. 하지만 부엌과 연결된 행랑 10여 칸이 다 타버렸다. 이엉을 이어놓은 지붕은 모조리 다 무너져 내렸고, 행랑채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노비들이 기거하는 행랑채에 지붕이 없으니 사람이 살 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빨리 새로 지붕을 얹어야 하는데 5월이라 지붕을 덮을 짚이 있을 시기가 아니었다. 마구간 지붕도 모두 타버렸기 때문에 말들은 비가 내려도 비를 피할 수가 없었다. 노상추는 궁리 끝에 차라리 이번에 화재에 강한 기와와 벽돌로 집을 짓기로 했다. 노상추의 옛집 한편에는 오래된 기와가 쌓여 있었는데, 이 기와는 20년 전에 불이 났을 때 역촌(驛村)에서 사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집안에 초상이 계속 났고, 기와를 얹을 엄두를 못 내서 그저 쌓아두기만 했었다.
일단은 지붕을 무엇으로든 덮어 비바람을 막기는 해야 했다. 노비들의 원성이 자자했기 때문이었다. 노상추는 관아에다가 불에 탄 건물이 수십 칸이라는 내용의 문서를 제출하여 곡식을 담는 데 쓰는 빈 섬 300닢(立)을 내려달라고 청하였다. 일단 이것도 짚은 짚이고, 다행히 여름이니만큼 바람만이라도 임시로 막아두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관아에서는 고작 15닢을 내려줄 뿐이어서 노상추는 해도 해도 너무한 수령의 처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얼마 전 새집을 짓는 사람은 화재를 당하지도 않았는데 관아에서 빈 섬 300닢을 얻어갔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기에 더욱 화가 났다.
노상추가 화를 내 봤자 관아에서 빈 섬을 더 내려줄 것도 아니었다. 일단 노상추는 집으로 돌아가 집을 짓는 데 쓸 못 등을 만들 야장(冶匠)과 기와를 만들 목수 신덕기(申德器)를 불러왔다. 엿새 만에 기와를 모두 만든 신덕기에게 노상추는 100동(銅)을 주었다. 기와를 이을 개장(盖匠) 소통(小通)은 벽돌이 운반되기 전에 도착하여 일을 바로 시작할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역촌에 있는 기와와 벽돌을 옮겨오게 하고 싶었으나, 당장 급한 일은 지붕보다는 모내기였다.
닷새 후에 드디어 모내기까지 일단락되자 노상추는 동군(洞軍)들에게 역촌의 기와를 옮겨오게 하고, 일단 돌아갔던 개장 소통을 불렀다. 소통은 다음 날 노상추의 집으로 와서 바로 기와 얹는 일을 시작했다. 기와를 얹는 일도 하루 이틀 만에 되는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날씨도 도와줘야 했다. 날이 맑으면 작업이 수월하지만, 비라도 내리면 전혀 작업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노상추의 노비들은 불이 난 이래로 거의 한 달 가까이 지붕 없는 집에서 매일 지내야 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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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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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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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노상추(盧尙樞)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772-05-14 ~ 1772-06-03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구미시
일기분류 : 관직일기, 생활일기
인물 : 노상추, 신덕기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노상추
◆ 조선시대의 집 짓기
1. 집터 고르기
좋은 집터를 얻으려면 삼대가 적선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좋은 터를 얻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유명한 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집터를 잡을 때는 첫째가 지리(地利)이고 둘째가 생리(生利)이며 셋째가 인심(人心)이다. 그 다음이 산수(山水)인데, 이 네 가지가 모두 갖추어져야 좋은 집터다”라고 말했다.
지리란 집이 들어갈 자리가 밝고 바람 적당하고 흙이 윤택하되 험악하지 않고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풍수지리를 말한다. 생리는 주변에 악취, 오염 등의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인심이란 주위 사람들의 성품을 말한다. 산수란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인격함양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2. 설계
솜씨 있고 경험 많은 목수가 한옥설계서인 ‘양판’을 그려낸다.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평면구성이다. ㅡ 자 집인지, ㄱ자, ㄷ자, ㅁ자인지 정해야 한다. 안방, 출입문, 부엌, 화장실의 위치 결정이 중요한 배치다. 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인지에 따라 방의 수를 결정해야 한다. 내부 벽을 장지문으로 2~3중해서 벽이 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문을 떼어 넓게 쓰기도 하는 융통성을 부리는 것도 한옥의 장점이다.
3.치목
설계에 따라 기둥과 보, 도리 등 재목을 고른다.
껍질을 벗기고 통풍 잘되는 그늘에서 말려 쓰임대로 켜고 자른다. 대패질을 하고 끌로 홈을 파고 따서 쓰임대로 준비한다. 치목이 끝나면 한옥 짓기는 절반 한 셈이다.
4. 터파기
한옥은 주위 환경을 존중하며 자리를 잡았다. 무리하게 산을 깎지 않고 오히려 돋아서 터를 다듬었다. 수백은 피하고, 바람을 잘 이용해 통풍을 잘되게 해야 하며 집 뒤와 앞을 살펴 좌향(집을 바라보는 앞)을 잡는다. 남향만 고집하면 안된다. 주위환경에 따라 북향도 좋고 서향도 좋다.
5. 규준틀 매기
집짓기의 첫 과정은 집을 지을 자리를 정한 후 평탄하게 잘 고르게 하여 공사하기 좋게 만든 후 규준틀을 매는 일부터 시작한다. 규준틀은 주춧돌(초석)이 놓일 자리를 잡고 건물의 각도와 방향을 잡아 준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집주인의 의사표현과 참여가 중요하다.
6. 초석 놓기
초석을 놓을 자리는 잡석과 모래로 땅을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입사지정이라 한다. 입사 지정한 자리에 초석을 놓고 나면 집터의 골격이 완성된다. 이 초석들의 높이를 기준으로 나중에 집터를 다져 올리면 이것이 기단이 된다.
7. 기둥 세우기
기둥을 올려놓을 초석은 대개 높이와 평면이 고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기둥을 세우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기둥 옆면에 표시된 먹선과 초석위에 표시된 십반먹을 맞추어 기둥을 똑바로 세운다.(다림보기) 그 다음엔 초석의 울퉁불퉁한 표면 그대로 기둥의 밑면을 다듬어(그렝이질) 아무런 보조 장치 없이 기둥을 세워준다.
8. 골격 만들기
큰 기둥들이 세워진 후엔 그 사이에 툇보, 대들보, 종보 등이 올려 지는데, 못을 쓰지 않고 결구 방식으로 설치한다. 처마깊이는 기둥높이에 비례한다.
9. 지붕 올리기
기와를 올리기 위해 깐 적심의 막중한 무게 때문에 한옥은 아주 두툼한 재목을 사용한다. 장마에 억수로 퍼붓는 비나 겨울에 쌓이는 눈 무게도 집을 무겁게 하는 원인이다. 일본이나 중국의 집이 비교적 가볍게 짓는 것과 비교하면 한옥은 매우 장중하다. 우리나라 집 재목이 굵고 두꺼운 것이다. 기왓골을 유지하면서 지붕 무게를 가볍게 하는 일은 적심과 흙을 줄이는 방법이 가장 좋다. 그러나 추위와 무더운 뙤약볕을 막아 주는 흙을 쓰지 않으려면 대체할 자재가 있어야 한다. 우리 지붕은 모양이 썩 좋다. 용마루나 처마 곡선은 세계적이다. 그 곡선은 아무렇게나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깊은 고심과 숨은 노력이 쌓여야 한다. 흙의 역할도 크다.
지붕은 서까래 걸고 개판 덮으면서 목수 손을 떠나 기와장이에게로 넘어간다. 합각 차리는 일부터 산자 엮고 느리게 느리고 적심 받고 보토 까는 일이 진행된다. ‘보토’라고 하는 ‘바닥 흙’은 진흙으로 차질수록 좋다. 적심을 재고 그 사이에 흙을 가져다 부으면 지붕이 온통 진흙으로 질펀해지는데 흙을 짊어진 일꾼이 그 흙을 밟으며 작업을 계속한다. 자꾸 밟고 다니니 진흙이 나무 틈새로 비집고 들어가 흙과 나무가 한 몸이 되어 버린다. 순수한 진흙은 나무을 보호한다. 진흙 구덩이 속 나무말뚝이 잘 썩지 않는 이치와 같다. 일단 진흙과 나무가 한 몸이 되면 아무리 두드려도 잘 깨지지 않는다. 나무를 포장한 흙은 방수층 구실도 한다.
10. 수장 드리기
지붕에 기와 얹는 일이 한창일 때 목수들은 기둥 사이에 인방, 중방, 하방과 문지방, 머름대와 문얼굴을 만든다. 이를 ‘수장 드린다’라고 말한다. 벽체와 문짝과 마루 놓을 골격을 형성하는 일이다. 이 일이 끝나면 귀틀을 설치하여 우물마루 까는 일을 하고 한쪽에선 소목들이 문짝을 짠다. 한옥 한 채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11. 마루 깔기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하지만 더운 계절이 길다. 마루의 등장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뱀을 피하는 방법으로 돼지를 키우고 그 위에 사람이 거주하는 마루를 깔았다는 설이 있다. 집을 나타내는 ‘가(家)’자를 잘 살펴보면 이해 할 수 있다.
마루는 위치와 구성에 따라 대청, 툇마루, 쪽마루, 마루방, 다락 등으로 나뉜다. 구조에 따라 우물마루와 장마루로 나눌 수 있다. 대청은 대개 우물마루로 한다. 귀틀이 골격이 되고 청판을 끼우는 홈을 만든다. 장마루는 멍에를 귀틀처럼 드려 기반을 조성하고 거기에 긴 널빤지를 못을 박아 고정시키는 것이다.
12. 벽체와 방바닥 만들기
벽체는 지붕과 함께 더위와 추위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구들이 놓인 방과 벽체에는 황토와 짚 등을 섞어 만든 반죽을 바른다. 잘 마른 후에 한지를 벽과 바닥에 바른다. 바닥의 한지장판에는 콩물을 들인다.
◆ 원문 번역
임진일기 1772년(영조48) 5월 14일(무신) 볕이 남. 우연히 청사廳事 부엌에서 잘못하여 불이 나서 연달아 이어진 행랑 10여 칸이 타버렸다. 청사는 겨우 보존하여 무너지지 않았고 정침도 화를 모면했으니 너무나 다행스럽고 너무나 다행스럽다. 지금은 짚풀을 거두는 계절이 아니어서 마구간의 지붕을 마련할 길이 더욱 난감하다. 류안춘柳顔春 어른이 아침 후에 바로 가서 화재는 보지 못하셨다. 5월 15일(기유) 볕이 남. 지붕에 덮을 풀만 없을 시기일 뿐만이 아니다. 임신년壬申年 화재 이후로 갑술년甲戌年 사이에 역촌驛村에서 기와를 샀다. 하지만 그 후에 계속해서 초상을 당한 나머지 아직까지 운반해 와서 지붕을 덮지 못했는데 지금 또 이와 같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벽돌을 운반해다가 기와집을 만들 구상을 하였다. 5월 17일(신해) 볕이 남. 정엽珽燁이 풍산豊山에 갔다. 불에 탄 건물이 거의 수 십 칸이라고 문서를 작성하여 관에 바쳐서 빈 섬 300닢立을 청하니, 제사制辭에 “15립을 내려라.”라고 하였다. 이것이 수령이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처사인가? 용렬하고 융통성 없는 처사가 아니겠는가? 들으니 엄청嚴淸 하구河球가 지금 바야흐로 큰 집을 지으려고 빈 섬을 청하여 300여 닢을 얻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화재가 난 곳에 대해서는 이처럼 소홀하니 이치에 맞지 않는 정사가 개탄스럽다. 들으니 우후虞候 정주신鄭胄新이 지난달에 상경했는데 당상관으로 품계가 오르고 게다가 이번에 또 상주진尙州鎭 영장營將에 제수되어 사은숙배했다고 하니, 이 사람의 벼슬길이 순조롭다고 하겠다. 5월 19일(계축) 볕이 남. 야장冶匠을 불러 집짓는데 들어갈 못 등을 만들었다. 전광규全光奎가 들렀다. 권사언權思彦【미경美卿】이 찾아 왔다. 5월 20일(갑인) 흐리고 비올 조짐이 있었음. 목수 신덕기申德器를 불러와서 청사에 쓸 기와 등의 물건을 만들게 하였다. 서족숙 수洙가 연부례延婦禮를 하였다. 이로李櫓가 요행繞行해 왔다고 하는데, 신부에 대해 칭찬하는 말이 없다. 관에서 백일장을 실시하므로 명언明彦 형이 희증希曾을 데리고 가서 응시하였다. 정청지鄭淸之【유목惟穆】가 왔다. 5월 26일(경신) 볕이 남. 덕기德器가 기와를 만드는 일을 끝내고 돌아가므로 100동銅을 주었다. 개장盖匠 소통小通이 도착했는데, 여러 날 동안 모내기하는 일이 지금 급하므로 마음처럼 벽돌을 운반해올 수가 없다. 그래서 일단 그를 보내면서 일이 시작될 즈음에 일하러 오라고 말하였다. 아버지 병환이 예전처럼 통증이 심해져서 드시는 것이 크게 줄었다. 증세록症勢錄에 적어서 내일 일직一直의 이춘보李春普 의원 집에 가려고 한다. 강물이 낮아졌다. 6월 초1일(을축) 볕이 남. 동군洞軍을 시켜 역촌驛村의 기와를 운반해 오게 했고, 개장盖匠을 불렀다. 6월 초2일(병인) 볕이 났으나, 오후에 비가 가늘게 내리다가 그침. 교촌校村의 채덕일蔡德一 어른이 와서 아버지 병환을 문병하고 가셨다. 아침에 개장盖匠이 와서 알현하고 기와 얹는 일을 시작하였다. 6월 초3일(정묘) 볕이 나고 조금 후덥지근하고 더웠음. 오늘 또다시 기와를 얹었다. 오후에 단비가 크게 물을 퍼붓듯이 내리다가 저녁 무렵에 비가 그쳤다. 지금도 기와 얹는 일을 마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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