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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부인의 상을 치른 비부(婢夫)
겨울로 접어드는 10월, 하천(下川)의 족증조모 이씨(李氏)가 별세하였다. 올해 80세가 되었는데 곁에서 가까이 모시는 자식이 없이 쓸쓸하게 살고 있었고, 결국 임종을 한 자식도 하나 없었다. 친족들은 모두 원래 자식이 해야 하는 발상(發喪)은 누가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차에 비부(婢夫) 복삼(福三)이 머리를 풀고 나타나 상차(喪次)에서 망자를 부르며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복삼이는 세 살 때 부모를 모두 잃었다. 그를 불쌍하게 여긴 이씨 부인이 그를 거둬 키웠는데, 복삼이는 길러준 은혜를 잊지 않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도리를 다하기 위해 상차에 자리하여 곡을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천한 비부가 양반 부인의 장례에서 상주 노릇을 한다며 끌어내려하던 사람들도 이와 같은 사정을 듣고는 복삼이를 기특하게 여기며 천성이 아름답다고 칭찬하였다. 하지만 복삼이는 신분이 달랐기에 이씨 부인의 수양아들로 인정받을 수 없었고, 부모를 잃은 자식이 입는 상복도 입을 수가 없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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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전체이야기보기
저자 :
노상추(盧尙樞)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773-10-08 ~ 1773-10-10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구미시
일기분류 : 관직일기, 생활일기
인물 : 노상추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89호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노상추
◆ 망자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상복(喪服)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친소원근(親疎遠近)과 신분의 존비(尊卑) 등 망자와의 관계에 따라 달리 입는 다섯 가지 상복인 오복(五服)을 규정해 놓았다. 오복은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먼 관계 순으로 참최(斬衰)·자최(齊衰)·대공(大功)·소공(小功)·시마(緦麻)로 이루어져 있다. 기본적으로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부계로 4대에 이르는 상하 수직관계와 형제자매에서 삼종형제자매에 이르는 수평관계를 계산하여 자신에게 망자가 자신과 가까울수록 상복을 무겁게, 오래 입었다. 오복제는 조선 중기 이래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하여 널리 상민들에게도 전파되어 정착되었다.
참최는 상복 중 가장 무거운 것이며, 부친과 장자(長子)의 상을 당했을 때 3년간 입었다. 가공을 전혀 하지 않은 마포(麻布)를 사용해 옷의 가장자리를 꿰매지 않고 시접을 밖으로 나오게 한 상하의를 만들어 입었다. 참(斬)은 잘랐다는 뜻으로, 그저 자르기만 한 옷의 시접을 의미한다. 장식 역시 일절 하지 않았다.
자최는 입는 기간이 3년, 1년, 5개월, 3개월로 나뉘었는데, 모친에 대해서는 3년간 입고, 처(妻)에 대해서는 1년, 증조부‧증조모에 대해서는 5개월, 고조부‧고조모에 대해서는 3개월간 입었다. 가공하지 않거나 약간 한 마포를 사용해 상복을 만들었는데, 꿰맨다는 의미의 자(齊)에 따라 가장자리만 꿰맨 형태였다.
대공은 9개월간 입는 상복이었는데, 종형제‧자매, 질부(姪婦), 며느리(큰며느리를 제외한), 손자(장손을 제외한)를 위해 입었다. 이때에는 잘 가공한 삼베를 사용하여 상복을 만들었다.
소공은 5개월간 입는 상복이고, 그 대상도 범위가 더 넓어졌다. 종조부모(從祖父母), 종조고모(從祖姑母), 종숙부모(從叔父母), 종고모(從姑母), 형제의 처, 재종형제자매, 종질녀, 종손, 장손부, 종손녀, 장증손부(長曾孫婦), 장고손부(長高孫婦), 장현손부(長玄孫婦)의 상을 당했을 때 입으며, 정밀하고 섬세하게 다듬은 베를 사용해 상복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3개월간 입는 상복인 시마는 종증조부모(從曾祖父母), 종증조고모(從曾祖姑母), 재종증조부모(再從曾祖父母), 재종증조고모(再從曾祖姑母), 재종숙부모(再從叔父母), 재종고모, 삼종형제자매, 재종질(再從姪), 재종질녀(再從姪女), 종질부(從姪婦), 재종손(再從孫), 종손부(從孫婦), 중손부(衆孫婦), 재종손녀, 종증손(從曾孫), 중증손(衆曾孫), 중증손부(衆曾孫婦), 종증손녀(從曾孫女), 중고손(衆高孫), 중현손(衆玄孫), 중고손부(衆高孫婦), 중현손부(衆玄孫婦)를 위해 입었다. 가장 고운 베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출가한 여성의 경우에는 남편과 같은 수준의 오복제가 적용되었고, 시어머니와 큰아들에 대해서는 참최의 한 단계 아래인 자최를 3년간 입었다. 또한, 외가와 처가에 대해서는 아주 가벼운 상복인 소공과 시마를 입었다.
남성의 상복을 구성하는 요소는 상의인 최의(衰衣), 하의인 최상(衰裳)·중의(中衣), 굴건이라고도 불리는 상관(喪冠), 관 위에 써서 늘어뜨리는 수질(首絰), 허리를 매는 요질(腰絰)·교대(絞帶), 상제가 짚는 지팡이인 상장(喪杖), 왕골이나 짚으로 만드는 신인 구(屨), 행전(行纏)이다. 최(衰)는 눈물받이의 의미가 있는 작은 베 조각을 의미하며, 왼쪽 가슴 혹은 양쪽 가슴 부분에 달았다.
여성은 상복으로 대수장군(大袖長裙)·개두(蓋頭)·포총(布總)·계(筓)·수질(首絰)·요질(腰絰)·교대(絞帶)·상장(喪杖)·구(屨)를 갖추어 입었다. 대수장군은 큰 소매가 달린 상의와 긴 치마를 연결하여 만든 옷이다. 개두는 일종의 너울로, 개두 대신에 베로 싼 족두리를 쓰기도 했다. 포총은 머리를 묶는 헝겊이고 백댕기라고 불리기도 했다. 비녀를 의미하는 계는 특히 참최에는 대나무 비녀를 말하며, 자최에는 개암나무 비녀를 말하는 것이다.
◆ 원문 번역
계사일기 1773년(영조49) 10월 초8일(계사) 볕이 났지만 바람이 부니 날이 갑자기 추워짐. 신행에 따라 갔던 사람과 말이 별탈없이 돌아 왔다. 안동安東 송율松栗의 생원 하일청河一淸이 와서 조문하고 묵었다. 이날 묘시(오전 5~7시)에 하천下川의 족증조모 이씨李氏가 별세하셨다. 올해 나이가 80인데 옆에 아주 가깝고도 아끼는 피붙이가 없으니 살고 죽는 것이 더욱 비참하고 슬플 뿐이다. 10월 초9일(갑오) 볕이 나고 또 바람이 추움. 여차余次의 유택수柳宅洙가 찾아왔다가 곧 돌아갔다. 비부婢夫 복삼福三이 태어나 겨우 3살 때에 그의 부모를 모두 잃었는데 하천下川의 증조모가 그 생명을 가련하게 여겨서 키웠으므로 오늘날까지 살아있게 되었다. 그 놈이 자신을 길러준 은혜를 잊지 않고 오늘 상차喪次에서 머리를 풀고 발상發喪을 했으니, 그 정리로 볼 때에 배은망덕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상服喪의 절차에는 상하 신분의 의리가 다름이 있으니 상놈을 수양收養한 도리와 같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상복을 입을 수는 없었지만 그가 발상한 것으로 말한다면 이것이 진실로 천성에서 저절로 나온 것이니, 그 사람됨이 아름답다고 하겠다. 10월 초10일(을미) 볕이 났지만 추움. 여차余次의 수촌樹村 족숙이 상차에 와서 조문하고서 머무시면서 잠시 이야기를 하고, 저녁에 가셨다. 월동月洞 족형과 족종族從 사범士範이 복용卜用이 투장한 것에 대한 산송에서 끝내 파내서 이장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으로 관에 소지를 낸 뒤에 들렀다가 즉시 돌아갔다. 하천下川의 족조모 상사喪事는 오늘 입관을 하고 운구하여 거무리居無里 선영 곁에 고빈藁殯하였다. 하회의 류안춘柳顔春 어른께서 들렀다가 곧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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