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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이 싫어 계회에 술을 폐하다
백련동(白蓮洞)에서 계회(稧會)가 열린다. 노상추는 서자 승엽(升燁)을 데리고 백련암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단구(丹丘)의 생물현(生物峴)의 고갯길이 있고, 고개를 넘으면 원지진(院旨津)에서 배를 타야 했다. 83세의 노인이 가기에는 이제 힘에 부치는 길이다. 그래서 구평(龜坪) 북로(北路)의 강일득(姜一得) 집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마침 강일득의 집에는 큰아들 익엽이 먼저 도착해서 노상추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상추는 아들 둘과 함께라면 힘이 덜 들 것 같아 곧바로 산을 올랐다. 이날 저녁에 묵는 용화전(龍華殿)은 내일 계회가 열릴 장소이다. 저물녘에는 둘째 손자 명여(明璵)도 용화전에 들어왔다. 네 부자가 한 방에서 자게 되니 각별한 느낌이다. 이곳에는 노승 진화(進華)도 있었는데, 이제 90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그는 노상추를 보고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너무 연로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노상추는 진화를 만류하고서 그대로 누워 있게 했다. 여전히 정신은 온전하니 이것이 다행일까 불행일까.
다음날 아침, 식사 후 계회가 거행되었다. 여러 계원이 속속 용화전에 도착했다. 종래에는 계회가 거행될 때면 술과 음식을 차렸다. 하지만 늘 술이 문제다. 술을 마시고 취해서 시끄럽게 떠는 사람이 많은 것이 노상추는 늘 못마땅했다. 그래서 근년에는 술 대신 흰 떡국을 차려서 대접하니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일이 없어져서 계회의 진행도 순조로웠다. 올해는 흉년이라 계회에서 거둬들인 곡물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그에 따라 곡물 값이 올랐기 때문에 돈으로 바꾸면 오히려 평년보다 수입이 갑절로 늘어나 120금을 넘었다. 계 입장에서는 큰 이익을 보았지만 농자가 흉작이니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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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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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노상추(盧尙樞)
주제 : 계회, 술
시기 : 1828-11-12 ~ 1828-11-13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구미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노상추
참고자료링크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노상추
◆ 점점 사라지게 된 향약계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사회에는 모임의 결속을 다진 다종다양한 계회(契會) 조직이 있었는데, 이러한 계회(契會) 조직이 향약과 결합된 계를 향약계(鄕約契)라고 한다. 원래 향약은 중국 북송(北宋) 말엽 산시성 남전현(陝西省籃田縣)의 도학자로 명성을 떨친 여대충(呂大忠) 4형제가 일가 친척은 물론, 향리 전체를 교화하기 위해 처음으로 마련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여씨향약(呂氏鄕約)』으로 『주자대전(朱子大全)』에 ‘주자증손여씨향약’이라고 실려있다. 향약은 주자학의 전래와 거의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에 전해졌는데, 우리의 전통적인 계조직과 결합하여 향약계가 만들어졌고, 이 중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세종 말년 즈음에 정극인(丁克仁)에 의해 실시된 전라북도 태인 지방의 고현동(古縣洞) 향약계이나 실시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본격적으로 실시된 것은 1475년(성종 6) 이후부터였으며, 500여 년이 넘게 시행되었다. 18세기로 내려오면서 재지사족(在地士族)들은 향약을 통해 수령들이나 관아의 간섭을 비교적 적게 받으면서 자체적으로 촌락주민들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 향약계를 더욱 강력한 조직으로 만들었다. 향약계는 주군현 단위에서 일어나는 하층민들의 저항운동이나 향안(鄕案) 파기(破棄) 현상을 실질적으로 막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지킬 것을 강조하기도 하고, 형벌권을 통해 하층민들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또 하층 약원(約員)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상층의 약원들이 구휼하고 위로도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동약원으로 상하가 협력하는 바람직한 동약계(洞約契)도 많았다. 그러나 18세기 말에서 19세기로 넘어오면 하층민들의 저항도 크게 일어났으나 상층 향사족(鄕士族)들이 수령들의 비호 아래 형벌권을 남용하자 민란을 촉발하기도 했다. 이런 향약계의 폐단을 여러 곳에서 목격한 실학자 정약용은 “향약의 폐는 도적보다 심하다”라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향약계들은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로 넘어와 근대적인 사법제도(司法制度)가 실시되면서 점차 향약적 성격이 퇴색되었다. 그리고 남붕의 일기를 통해 보듯이 경제 상황이 열악해지면서 운영의 어려움에 빠진 것도 알 수 있다. 이렇게 향약계는 점차 그 기능과 역할이 변질하기도 했고,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라는 사회의 변화와 대륙 진출을 꾀하던 일제의 수탈로 인한 경제적 궁핍과 이에 따른 운영난 등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 원문 번역
재정해일기 1827년(순조 27) 11월 12일(무신) 볕이 남. 백련동白蓮洞에서 계회稧會를 하는 일로 승엽升燁을 데리고 단구丹丘의 생물현生物峴을 경유하여 원지진院旨津을 건너 백련암으로 가는 길에 구평龜坪 북로北路의 강일득姜一得 집에 도착하였다. 흥덕興德 수령 아이가 화림華林에서 먼저 도착하여 여기에서 머물러 기다리고 있기에 함께 산에 올라가서 용화전龍華殿에 머물러 묵었다. 내일 계회稧會를 할 때에 이곳 용화전의 방房이 해당 차례이다. 저물녘에 둘째 손자 명여明璵가 뒤이어 도착해서 그대로 잤다. 이곳에 노승老僧 진화進華가 있는데 올해 나이가 89세이다. 비록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있지만 정신은 아직 온전하게 남아 있다. 11월 13일(기유) 볕이 나고 바람이 없음. 겨울날인데도 지금까지 2월처럼 따뜻하니 괴이하다. 아침 이후에 계회稧會를 행하였다. 해마다 술과 음식을 차리면 술을 마시고 시끄럽게 떠들기 때문에 통탄스러웠다. 그래서 근년에 술을 없애고 흰떡국을 차려서 거행했더니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일이 없어져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올해는 계회의 곡물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돈으로 바꾸니 평년보다 갑절로 늘어났다. 돈이 불어난 것은 큰 이익이지만 농사는 흉작이니, 매우 개탄스럽다. 올해는 돈이 120금을 넘었다. 오후에 계회를 마치고 백련동에 올라가서 묘소에 절하고 내려와 새 암자에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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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약속한 만남, 얼음 언 강을 건너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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