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 검색

상세검색

디렉토리검색
검색어
시기
-
높고 낮은 요성의 관리들이 사신단에게 터무니없는 뇌물을 요구하다
1599년 9월 17일, 조익(趙翊)을 비롯한 조선 사신단들은 요성(遼城 중국 요녕성 요양)에 도착했다. 도착하여 요성의 관리들과 인사를 하고 오후에는 요성을 들러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숙소로 들어갔다.
그런데 요성의 도사(都司)장인(掌印) 숙응명(宿應明)이 은자 다섯 냥을 보내왔다. 이와 함께 자신들이 원하는 조선의 토산물을 요구하며 그 목록을 보내왔는데 너무나도 많은 물품이 적혀 있었다. 진무(鎭撫) 네 명도 요구하는 물품이 있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집요하게 요구하고 온갖 농간을 부렸다. 조선 사신단은 가지고 있던 짐을 다 풀어도 이 요구를 들어 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또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면 방물(方物)을 운반할 수레를 얻어내지도 못할까 걱정이었다.
다음날인 9월 18일 조선 사신단은 그대로 요성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어제 명나라 관리들이 요구한 물품들을 약소하게나마 마련하여 문서를 써서 주었다. 그러나 진무 등은 자기 뜻에 차지 않는다고 하고서는 끝내 준비한 물품을 받아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매번 와서는 음식과 술을 요구하였는데, 이 역시 만만찮은 부담이었다. 유총병(劉摠兵)은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일로 성 바깥에 있어서 만나지 못하였는데, 예방(禮房)의 낮은 벼슬아치조차 물품을 요구하였다.
다음날 9월 19일 진무가 아침 일찍 왔다. 그는 계속 조선 사신단의 숙소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사신단이 준비한 물품을 가지고 갔는데, 여러 사람의 물품도 함께 받아서 갔다. 조선 사신단의 입장에서는 명나라 관리들의 요구대로 다 하지는 못하였어도 많은 물품을 준 것인데, 그래도 그 사람들이 이를 받아서 갔으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유총병 등도 은자를 보내 활 두 자루를 요구하였다.

닫기
닫기
관련목록
시기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장소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