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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음식을 난입한 하인들이 탈취하다 - 화려한 황궁과 흔들리는 기강
1599년 10월 25일,
조익(趙翊)
을 비롯한 사신단 일행은 방물과 표문을 바치기 위해 사경(四更 새벽 1~3시)에 명나라 궁궐로 나아갔다. 이때
진주사(陳奏使)
로 온 윤이원(尹而遠) 역시 사은(謝恩)을 해야 하는 일로 함께 궁궐로 갔다. 일행은 장안문(長安門) 밖에서 문이 열린 시간을 기다렸다. 조익의 눈에 크고 화려하게 꾸민 돌다리가 들어 왔다. 조익은 황궁의 화려함에 탄미를 하고 있었다. 그 돌다리 양편에는 하늘을 떠받히는 옥기둥을 세워놓았다. 조익과 그 일행은 승천문(承天門)과 단문(端門)을 지나 오문(午門) 밖의 월랑(月廊)에서 잠시 쉬었다.
이윽고 이른 새벽 황제가 다니는 길에서 예식을 행하는 대열에 나아가 여러 명나라 관료들의 뒤에 서 있었다. 뒤에는 다시 여러 지역에서 황제에게 바치는
표문(表文)
을 올리기 위해 파견된 관료들이 섰다. 예식은 끝이 났다.
예식이 끝난 뒤
광록시(光祿寺)
의 주찬소(酒饌所)에서 음식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음식을 마저 놓기도 전에 하인들이 난입하여 음식물을 가지고 가 버린 것이다. 이 광경을 지켜 본 조익은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명나라 예부(禮部)의 관료들이 나와 있었는데, 그 광경을 보고도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조익은 명나라의 번화함과 조정의 화려함에 대한 감탄하기도 하였지만 명나라 조정의 기강에 대해서도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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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황화일기(皇華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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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익(趙翊)
주제 : 사행과 견문, 문물의 견학
시기 : 159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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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중국 북경
일기분류 : 전쟁일기
인물 : 조익, 윤이원
참고자료링크 : (참고자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사절단의 임무
명나라 사회는 만력제(萬曆帝, 신종) 시절부터 점차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만력제는 국고가 아니라 자신의 금고를 채우는 데 열중하였다. 만력제는 임진왜란에 구원병을 파견하기도 하였지만 실질적으로 정치는 방관을 하고 있었다. 사회는 혼란스러워지고 조정의 기강은 허물어졌다. 조익은 바로 이 상황을 목도한 것이다. 조익은 자신의 『황화일기』 1599년 11월 21일 기록에서 “해외의 미천한 신하가 명을 받들어 멀리서 와서 근엄한 의표(儀表)를 우러러보니 거의 지난날 사모하고 숭앙하던 마음과 부합하였다. 그러나 명나라는 만방에 군림하면서도 오래토록 조회(朝會)를 폐하고 있으니 황실의 행동이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라고 하였다. 지금도 역사계에서는 명나라를 망하게 한 황제가 만력제라고 한다. 이때 사신이던 조익이 명나라 황제를 보았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사신들은 명나라에서 외교를 관장하던 예부(禮部)와 일을 처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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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문
자금성 오문(午門)
1860년 자금성 오문(...
1901년 자금성 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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