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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정랑이 되자마자 청탁을 받다
1720년 1월 하순, 정기 인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권상일은 지난해 성균관 직강으로 내부 승진이 된 상태였다. 그는 꽤 성균관에 오래 재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직강이 되었던 그가 정기 인사 대상에 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 그가 인사대상에 올라 있었다. 예조정랑 수망에 권상일, 부망에 홍구, 말망에 여길에 올라와 있었다. 결국 예조정랑은 권상일이 낙점되었다. 예조는 성균관의 상급 관청이었으므로 같은 5품직이라고 하더라고 성균관보다는 예조가 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자리였다. 또한 예조참판과 예조참의 또한 새로 교체되었으므로 예조 관원의 절반 이상이 이번 인사에서 새로 임명되었던 것이다.
그가 예조정랑으로 부임한지 하루도 안되어 청탁이 들어왔다. 역관과 의학 5~6명이 친구들의 청탁 편지를 들고 찾아왔던 것이다. 그 청탁 편지는 대개
취재(取才)
와
고강(考講)
에 대한 것이었다. 본래 과거는 문과와 무과만 있었다. 그런데 기술직 관원인
사역원(司譯院)
의 역관,
전의감(典醫監)
의 의학,
관상감(觀象監)
의 역학 등은 모두 취재를 통해 관원을 선발했다. 그런데 그 취재 담당 기관이 예조였던 것이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청대일기(淸臺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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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상일(權相一 )
주제 : 관원 청탁
시기 : 1720-01-21 ~ 1720-01-22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서울특별시
일기분류 : 사행일기
인물 : 권상일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 청탁
관직자가 되면 으레 청탁을 받게 마련이다. 그런데 권상일도 성균관에서 예조로 자리가 옮겨지자 청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성균관보다는 예조가 훨씬 권한이 많은 자리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과거를 들 수 있다. 예조는 문과를 주관하는 관청이면서 취재를 담당하는 관청이었다. 사역원의 역관들, 전의감의 의원들, 관상감의 역학관원들은 모두 취재를 통해서 선발했으므로 예조에 선을 넣고자 했다.
특히 기존의 역관, 의원들이 자신들의 친구나 친척들이 잡과 취재를 할 때 예조에 청탁편지를 넣는 경우가 흔했다. 왜냐하면 역관과 의원은 대부분 같은 가문 출신이 그 가업을 잇고 있었으므로 그러한 청탁이 흔했던 것이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경자년(1720, 숙종 46) 1월 21일 지난밤 3경 1점에 의관이 들어가 진찰해 보니, 주상의 환후는 가슴 속이 시원하지 못하고, 오른쪽 옆구리에 더부룩한 증세가 매우 심하여 호흡이 아주 불편하며, 며칠간 변비가 상당히 심하여 여러 번 매우틀에 올라갔지만 배변을 하지 못하였고, 오늘 소변을 볼 때 재차 나온 물질이 있었는데, 색은 흰색이며 쌀알 크기만 하여 요도가 매우 거북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증세로 뒤척이며 침수를 들지 못하였는데, 금로수(金露水) 네 홉에 생우황(生牛黃) 세 돈[錢]을 섞어 자신 뒤에 침수 들었다고 한다. 오늘 정사를 행하였다. 내가 예조 정랑 수망(首望)에 올라 낙점 받았다. 부망(副望)과 말망(末望)은 홍구(洪構)와 여길(汝吉)이었다. 예조 참판에 유명홍(兪命弘), 예조 참의에 홍치중(洪致中), 승지에 김상원(金相元), 공조 참판에 김연(金演), 병조 정랑에 서종섭(徐宗燮), 사성에 조언신(趙彦臣), 양주 목사(楊州牧使)에 이봉상(李鳳祥), 사복시정에 송성명(宋成明), 장악원정에 황선(黃璿) 등이 임명되었다. 밥을 먹은 뒤에 여길이 만칙의 처소에 왔기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언(明彦)도 왔다. 또 장몽주(張夢舟) 아저씨에게 문병 갔다가 날이 저물어서 흩어져 돌아갔다. 1월 22일 한사범(韓士範) 형제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관(譯官)과 의학(醫學) 대여섯 사람이 친구들의 청탁 편지를 들고 찾아왔다. 그들의 취재(取才) 고강(考講)을 예조에서 맡아보기 때문이다.
이미지
관상감터 안내석
관상감터 전경
권상일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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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이 있을 줄 알면서도 물건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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