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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를 구매하러 동해로 몰리다
1736년 12월 27일, 계절 음식은 제때에 산지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조선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였으므로 동해, 서해, 남해에서 각기 제철에 나오는 음식이 달랐다. 음식이 다르다는 말은 곳 산물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다. 서해에는 꽃게, 동해에는 대게가 잡히듯이 각기 지역에는 자기 지역만의 특산물이 있었다.
울산 부사 권상일(權相一)은 서울에서의
추고(推考)
를 마치고 고향에 들러 잠시 쉬었다가 다시 울산의 임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도중에 영천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영천이 어떠한 곳인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대구에서 포항과 경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천을 지나야 했다. 영천이 그만큼 교통의 요지인 것은 조선시대도 다를 바가 없었다.
권상일의 눈에 청어가 들어왔다. 동해에서 겨울철에 잡히는 청어는 동해 어민들의 주 수입원이었다. 포항과 경주, 울산에서 잡힌 청어가 내륙의 백성들의 밥상에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천을 지나야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청어를 사러 온 자들이 말에는 싣고 사람들은 지고 앞뒤로 행렬이 이어지는 모습이 볼 만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바닷가의 물산이 얼마나 풍부한지 지레 짐작할 수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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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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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청대일기(淸臺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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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상일(權相一 )
주제 : 시장
시기 : 1736-12-27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영천시
일기분류 : 사행일기
인물 : 권상일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 조선시대 해산물의 유통
조선시대 해산물은 내륙에 어떻게 공급되었을까. 대표적인 어물에는 명태가 있었다. 그런데 명태를 살아 있는 그대로 육지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가공된 명태가 나타났다. 황태가 대표적이다. 겨울철 내내 칼바람을 맞으며 잘 말린 명태를 육지로 보내 오래도록 부패하지 않도록 했다. 젓갈 또한 마찬가지였다.
명태가 동해안 북부 지방의 대표적인 어물이었다면, 청어는 동해안 남부 지방의 어물이었다. 청어는 말리기도 하고 생물로도 옮기기도 했는데, 생물로 옮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얼음이 필요했다. 조선시대 빙고가 각 지방에 설치되고 얼음이 판매 유통되었던 것도 그와 같은 이유였다.
어물이 유통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했으므로 교통로가 확보되어야 했다. 명태가 서울로 운반되는 데는 철령이 중요한 교통로 구실을 했다면, 경상도 내륙으로 운반하기 위해서는 영천이 중요한 길목 중 하나였다. 동해안 남부의 포항, 경주, 울산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영천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 원문 정보
二十七日. 秣馬新寧邑, 宿永川邑. 昨今兩日, 靑魚貿來者, 馬載人擔首尾相續, 可知海部爲無盡藏也. 夜往見本倅而還.
◆ 원문 번역
1736년
12월 27일
신녕읍(新寧邑)에서 말먹이를 먹이고, 영천읍(永川邑)에서 잤다. 어제 오늘 이틀 동안 청어를 사러 온 자들이 말에는 싣고, 사람은 지고 하여 앞뒤로 서로 이어졌으니, 바닷가의 물산이 무진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밤에 영천 군수를 가서 보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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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일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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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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