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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때문에 문경새재가 막히다
1754년 12월 2일, 겨울에 들어서자 호랑이 피해가 속출했다. 들으니 문경새재에 호랑이 출몰이 잦아져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물려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문이 돌면서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에 상주
영장(營將)
과 충주 영장이 호랑이를 잡기 위해 많은 포수를 데리고 서로 만나 의논을 했다고 한다.
문경새재를 지나온 채감(蔡瑊) 군이 와서 말하기를, 문경새재에서 호랑이에 물려 죽은 사람이 무려 40여 인이나 되고 경상도 내에서는 호랑이 때문에 죽은 사람이 무려 100여 인에 이른다고 한다. 호랑이로 인한 피해 때문에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한편 충주 영장이 호랑이를 잡았는데 작은 호랑이 세 마리였고, 상주 영장은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한다. 경상감영에서는 문책을 피하려 군관까지 파견했는데, 만약 끝내 잡지 못한다면 장계를 올려 파면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못 잡을 만도 했다. 포수들이 모두 노숙하는데, 어느덧 15일째에 이르러 몰골들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번은 큰 호랑이와 마주쳤는데, 포수가 겁을 먹고 감히 총을 쏘지 못했다고 한다. 큰 호랑이는 마치 수레를 끄는 큰 소만했다고 한다.
나중에 듣기로는 상주 영장 또한 큰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아 감영에 보냈다고 한다. 이로써 경상감영에서도 문책은 피하게 되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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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청대일기(淸臺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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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상일(權相一 )
주제 : 호랑이 사냥
시기 : 1754-12-02 ~ 1754-12-21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상주시
일기분류 : 사행일기
인물 :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 호랑이 포획
조선 후기에는 호랑이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는 큰 육식 동물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만, 조선 후기에는 큰 육식 동물이 적지 않았다. 그 중 가장 상위에 위치한 호랑이의 경우에도 어렵지 않게 출몰 사실을 찾을 수 있다.
호랑이는 깊은 산속에 서식하고 있지만, 사람이 사는 평지에도 자주 출몰했다. 특히 가뭄이 발생하게 되면 자주 산 아래로 내려와 문제를 일으켰다. 조선 후기에는 호랑이 가죽인 호피(虎皮)를 각 지방에 징수하게 하였는데, 그것은 호피가 목적이라기보다는 호랑이를 일정하게 포획하도록 하는 조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호랑이는 대개는 포수가 포획했는데, 이들을 관장하는 것은 각 지방에 주재하고 있던 영장(營將)이었다. 영장은 5~6개 군현을 하나로 통합한 군사 훈련 담당관이었다. 영장의 역할은 주로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 도적 등을 진압하는 데 있었지만, 호랑이가 출몰하게 되면 관할 포수를 이끌고 산으로 들어가 호랑이 포획에 나서기도 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정보
初二日. 聞鳥嶺虎患特甚, 行人多囕死, 故行路不通. 本州營將·忠州營將, 多率砲手, 捉虎次相會云.
十三日. 衡湖庶婦新行來, 李君寅休帶來, 得子大書. 川前金郞來, 得退甫書. 蔡君瑊來見, 聞蔡君言, 今年內鳥嶺虎患囕殺人命四十餘人, 境內合百餘人, 此非小變, 忠州營將捉得三小虎, 尙州營將, 一無所捉, 巡營亦遣軍官, 若終不捉, 則當爲啓罷云云. 砲手皆露宿, 已過一望, 景像愁慘云. 逢一大虎, [㥘]不敢放砲, 大如車牛云.
二十一日. 順興洪德全甫來見, 此乃洪師傅之曾孫. 聞尙州營將捉一大虎, 送納巡營, 而日前還營云.
◆ 원문 번역
1754년
12월 2일
들으니 새재[鳥嶺]에 호환(虎患)이 아주 심하여 다니는 사람이 많이 물려 죽었기 때문에 길이 통하지 않아서, 상주 영장(尙州營將)과 충주 영장(忠州營將)이 많은 포수를 이끌고 호랑이를 잡으려고 서로 만났다 한다.
12월 13일
형호(衡湖) 서부(庶婦)의 신행이 왔다. 이인휴(李寅休) 군이 데리고 왔으며, 자대(子大)의 편지를 받아 보았다. 내앞[川前] 김 서방[金郞]이 왔고 퇴보(退甫)의 편지를 받아 보았다.
채감(蔡瑊) 군이 보러 왔다. 채군의 말을 들으니, 금년 동안에 새재[鳥嶺]에서 호환(虎患)으로 물려 죽은 인원이 40여 인이며, 지역 내는 도합 100여 인이니 이는 작은 변고가 아니다. 충주 영장(忠州營將)은 작은 호랑이 세 마리를 잡았고, 상주 영장은 한 마리도 잡은 것이 없다. 감영에서도 군관(軍官)을 보냈는데 만약 끝내 잡지 못한다면 마땅히 장계(狀啓)를 올려 파면할 것이라고 한다. 포수(砲手)가 다 노숙하는데 이미 15일이 지나서 몰골이 아주 처참하다 한다. 한 번은 큰 호랑이와 마주쳤으나 포수가 겁을 먹고 감히 총을 쏘지 못하였으며, 큰 것이 마치 수레를 끄는 큰 소만하였다 한다.
12월 21일
순흥(順興) 홍덕전(洪德全)이 보러 왔다. 이 사람은 곧 홍 사부(洪師傅)의 증손자이다. 들으니 상주 영장(尙州營將)이 큰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아 감영에 보내서 바치고, 며칠 전에 진영(鎭營)으로 돌아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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