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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이를 스스로 묻는 아버지, 비통함에 잠식되다
1604년 7월 9일, 오후에 내성(奈城)에서 종이 왔다. 장모님이 초이틀부터 이질(痢疾)을 앓아 몹시 고생한다고 전했다. 김령은 몹시 놀랍고 걱정되었다.
7월 11일, 김령은 밥을 먹은 뒤 내성으로 향했다. 날이 저물어 당도했다. 장모님의 증세는 조금 잦아들었다. 서늘한 달이 매우 좋았다.
7월 16일, 장모님의 병이 여러 날이 지났지만 차도가 없어 온 집안이 우려하고 있다. 권책(權策) 군과 정사경(鄭思敬) 군이 와서 종일 대화했다.
열엿샛날 저녁 달빛이 더 아름다웠다. 김령은 종 청산(靑山)을 집으로 되돌려 보냈다. 내일 집사람이 장모님을 문안하러 와야 하기 때문이다.
7월 17일 오후에 집사람이 도착했다. 장모님의 증세는 15일부터 조금씩 덜해졌다.
7월 26일, 그런데 김령의 큰 아이가 23, 24일경부터 이질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다.
8월 1일, 김령은 아이의 병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아 몹시 우려했다.
8월 4일에는 아이의 병이 이미 위급한 선을 넘어 버렸다. 오시가 못 되어 갑자기 손을 써 보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김령은 비참하고 아이가 가련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류계화(柳季華)가 하회(河回)에서 그의 처가에 당도하여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물었다.
8월 5일, 아침에 류계화가 위로하러 왔다. 오후에는 평보 형도 김령을 방문했다.
저녁에 여러 가지 장례 도구를 준비했다. 내일 길을 나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계화가 밤에 와서 같이 잤다.
8월 6일, 새벽에 죽은 아이를 들것에 담아 메고 조상 묘소가 있는 선산(先山)으로 길을 나섰다. 평보 형과 급하게 달려 방잠(芳岑)에 당도해서 선영(先瑩)의 왼쪽 산자락에 묻을 곳을 결정했다. 오후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집사람도 뒤를 따라왔다. 돌아갈 때 홍우형(洪遇亨)이 보호해서 집까지 따라갔다.
8월 7일부터 14일까지 김령은 일기조차 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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