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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관례, 빈으로 참석하다
1608년 2월 15일, 국상 때문에
천례(薦禮)
를 정지했다. 오후에 임 참봉의 아들 임지경(之敬)이 와서 그의 어른의 편지를 전해 주었다. 내가 그의 아들을 가르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2월 18일, 임 참봉의 아들이 글을 배우러 왔다.
2월 22일, 오시쯤 임 참봉과 누이의 편지를 보았다. 아이를 가르치는 일 때문이었다.
1611년 3월 6일, 임 참봉의 편지를 보니 8일날 아들의 관례에 초청을 하면서 서신의
의범(儀範)
을 빈례로써 하였다. 그 내자 되시는 누님이 따로 여종을 보내어 편지로 나를 청했는데 지극히 난처해서 감히 답장을 하지 못했다.
3월 7일, 오시에 임지대(任之大) 군이 갑자기 왔다. 다시 임 참봉 내외의 편지를 보니 나를 초청하는 것이 몹시 간절하였다. 임 군은 어제 저녁에 서울에서 돌아왔는데 지금 명을 받들고 왔으니 몹시 미안하였다. 부득이 점심을 먹은 후에 임 군·이실과 함께 비를 무릅쓰고 갔다. 지나가는 곳에 진달래와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봄빛이 무르익어 넘치니 경치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임 참봉댁에 도착하니 이미 밤이 되었다. 서울에서는 서인들이 활개를 치고 지금 주상은 덕을 잃어 어떤 벼슬아치라도 직언을 하면 즉시 퇴출된다고 한다.
3월 8일, 아침에 홀기를 보니 빠진 부분이 많았는데 어제 의논하여 결정한 것을 쓴 것이었다. 그래서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었다. 나는 힘써 빈을 사양하였으나 어쩔 수 없어서 이실을 찬자로 정했다. 밥을 먹고 행례를 마친 후에 법도대로 술 석 잔을 마셨다. 안으로 들어가 누님을 뵈오니, 창녕 누님도 또한 와 계셨다. 날이 이미 저물어서 드디어 주인과 작별하고 사안·민보·덕휘를 차례로 들러보고 이지·이실과 함께 돌아오니 이미 밤이 되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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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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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계암일록(溪巖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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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령(金坽)
주제 : 민속, 관례, 빈
시기 : 1608-02-15 ~ 1611-03-08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령, 임참봉, 임지경, 임지대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령
◆ 조선시대 관례
관례는 상투를 틀어 갓[冠巾]을 씌우는 의식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절차로서, 남자아이가 15세가 넘으면 관례를 행하고, 그 때부터 한 사람의 성인으로 대우하였다. 한편, 여자는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아주는 의식으로서 계례(筓禮)를 행하였다.
이와 같은 관례의식은 ≪가례≫의 유입과 더불어 우리 나라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례≫의 유입 이전인 고려시대에도 관례의 기록이 나타난다. ≪고려사≫에는 광종·예종·의종 때에 왕태자의 관례를 행한 기록이 보인다.
이로 보아 고려왕실에서도 유교식 관례를 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에서는 예서에 따라 관례를 행하였지만, 대부분의 경우 예서보다 간소하게 행하였다.
그리고 근래에 들어와서는 1894년 갑오경장 이후 단발령이 내려 머리를 깎았기 때문에 전통적 의미의 관례는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여자들의 계례만 남아 오늘날 구식 혼례식에 흡수되어 있는 정도이다.
① 택일(擇日):≪가례≫나 ≪사례편람≫에 의하면, 남자는 15세에서 20세 사이에 관례를 행하였다. 이는 15세 이상이 되어야 예(禮)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조건은 부모가 기년(朞年) 이상의 상중이 아니어야 된다고 하였다. 즉, 조부모나 백숙부의 상은 기년상(朞年喪)이기 때문에 이런 친족의 상중에는 관례를 행할 수 없었다.
또한, 대공복(大功服)을 입는 상을 당해서 아직 장사를 지내지 않았으면 관례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택일에 대하여는 좋은 날짜를 가려서 예를 행하되, 여의치 않으면 정월에서 날을 정하라고 되어 있다. 그때를 놓치면 4월이나 7월 초하루에 하도록 되어 있다. 그 이유는 관을 쓰는 것이 인도(人道)의 출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② 준비:관례일 사흘 전에 주인은 사당에 고하는데, 이때 축문을 읽는다. 다음은 관례일 전에 빈객을 청하는 절차이다. 관례에서 의식을 주관하는 사람이 빈객이다. 예서에는 종손의 친구 가운데 어질고 예법을 잘 아는 사람을 골라 빈객으로 삼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관례일 하루 전에는 대청의 동북쪽에 휘장을 쳐서 관례를 올릴 장소를 마련한다.
관례일이 되면 진설(陳設)을 하며, 아침 일찍 관복(冠服)을 꺼내어 준비를 한다. 그 뒤 주인 이하 차례대로 서서 빈객을 기다린다. 빈객이 찬자(贊者)와 함께 도착하면 주인은 그를 맞이하여 방으로 안내한다.
③ 시가례(始加禮):처음 행하는 예를 시가례라고 한다. 시가례는 빈객이 관례자에게 읍을 하면서 시작된다. 관례자는 쌍계(雙筓:쌍상투)를 하고 예복인 사규삼(四衫)에 늑백(勒帛)이라는 띠를 두르고, 채리(彩履:무늬 있는 신)를 신고 자리에 나와 꿇어앉는다.
옆에 시중을 하는 찬자가 관례자의 머리를 빗겨 상투를 틀고 망건을 씌우면 주례가 치관(緇冠)을 들고 나와 관례자 앞에서 축사를 읽은 뒤, 치관과 계(筓)를 꽂고 건(巾)을 씌운다.
이어 찬자가 관례자에게 띠를 둘러주면 관례자는 방으로 들어가 사규삼을 벗고 심의(深衣)를 입으며, 큰 띠를 두른 다음 그 위에 수(修:실로 된 흰 띠)를 더하고 검은 신[履]을 신고 방에서 나와 남쪽을 보고 앉는다.
④ 재가례(再加禮):관례자가 정해진 장소에 앉아 있으면 빈객이 관례자 앞에 나아가 축사를 한다. 찬자는 건을 벗기고 빈객이 초립(草笠)을 씌운다. 이어 관례자는 방으로 들어가 심의를 벗고 조삼과 혁대를 두르고 혜(鞋)를 신고 나온다.
⑤ 삼가례(三加禮):관례자가 정해진 자리에 꿇어앉아 있으면, 빈객이 나아가 축사를 하고, 찬자가 초립을 벗기면 빈객이 복두(銃頭)를 씌워 준다. 관례자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조삼을 벗고 난삼을 입으며, 혁대를 두르고 신을 신고 나온다.
⑥ 초례(醮禮):술을 마시는 의례이다. 관례자가 정해진 자리에 남향을 하고 앉아 있으면, 빈객이 관례자 앞에 나아가 축사를 한다. 관례자가 두 번 절하고 술잔을 받으면, 빈객이 답례를 한다. 관례자가 상 앞으로 나아가 잔을 상 위에 놓았다가 이것을 다시 들고 물러나 맛을 본 다음, 찬자에게 주고 빈객에게 두 번 절하면 빈객이 답례한다.
⑦ 자관자례(字冠者禮):관례자에게 자(字)를 지어 주는 의례이다. 빈객과 관례자가 마당으로 내려가서 빈객이 관례자에게 자를 지어주고, 이어 자를 부를 때 축사를 한다. 관례자가 간단한 답사를 하고 절을 하면, 빈객은 절을 받되 답례는 하지 않는다.
이상으로 관례는 모두 끝났으나 예서에 의하면, 주인이 관례자를 데리고 사당에 가서 조상에게 알리면서 고사(告辭)를 읽으면 관례자는 두 번 절한다. 그런 다음 친척들과 빈객에게 두 번 절한 뒤, 밖으로 나와 선생과 아버지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절을 한다.
농촌에 있는 70세 이상의 노인 중에서 가끔 관례를 하였다는 노인을 볼 수 있다. 이들 촌로들의 관례경험을 보면 반드시 예서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그 중 ≪예서≫에 가까운 관례는 다음과 같다.
15세가 되어 관례를 올렸으며, 아버지가 친한 친구를 빈객으로 맞이하였다. 빈객은 사랑방에서 관례자의 머리를 빗겨 올리고 상투를 틀어올려 주고 모자를 씌워 준 뒤, 자를 불러 주었다. 관례자는 이어, 손님을 대접하는 잔치를 하고, 이웃 어른들에게 인사를 다녔다.
일반적으로 많이 행하여진 관례는 남자집에서 사주단자(四柱單子)를 여자집에 보낸 뒤, 좋은 날을 정하여 머리를 올리는 성격의 것이었다. 이때는 아버지가 머리를 빗겨 상투를 틀고 모자를 씌워 주었다.
그 뒤 부모에게 절을 하고 이웃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이와 같이, 실제의 관례는 대부분의 경우 혼례 절차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예서의 삼가례는 극히 간소화하여 행하여졌다.
장소는 사랑방에서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엄격한 사대부집에서는 예서의 절차에 따라서 관례를 행하였다.
관례는 구조상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례·초례·자관자례가 그것이다.
① 가례:머리를 빗겨 올려 상투를 틀고 모자를 씌우고 옷을 갈아입히는 의례이다. 이는 어린이의 세계로부터 분리하는 의식과 어른의 세계로 통합시키며 정화시키는 의식으로 개복(改服)이 있다. 그러나 관례 전체의 구조로 보면 가례는 분리의례의 성격을 띤다.
② 초례:술로써 예를 행하는 것으로 바로 과도기적인 단계로서 경과의례(經過儀禮)이며, 정화의례(淨化儀禮)이다. 의례에서 술을 마시는 의식은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행하는 의식의 하나이다. 술을 나누어 마시는 것은 새로운 지위나 관계, 그리고 질서의 형성을 상징하는 의례이다.
③ 자관자례:관례자에게 새로운 이름인 자를 주어 성인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의례로, 기성사회로의 통합을 의미하는 통합의례이다.
이와 같이, 관례는 구조상 분리의례·경과의례·통합의례가 분명한 통과의례이었다. 관례의 특징 중의 하나는 주인 이외의 빈객을 정하고, 그로 하여금 주된 임무를 담당하게 한 것이다. 즉, 관례는 주인과 대등한 빈객의 지위에 입각한 주인과 빈객의 균형원리를 나타내고 있다.
이때의 빈객은 천주교에서 말하는 대부(代父)에 해당한다. 빈객은 새로운 이름인 자를 지어줌으로써 성인으로서 제2의 탄생을 상징하는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 관례의 보다 큰 특징은 관례가 혼례에 흡수되어 있는 점이다. 이것은 10세가 넘으면 혼례를 서두르는 조혼의 풍속 때문이었다. 관례는 혼례과정에 흡수되어 그 사회적 의의가 약화되었기 때문에 단발령이 내리자 쉽게 흔적을 감추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무신년(1608, 선조41) 2월 15일 바람이 불고 추웠다. 국상(國喪) 때문에 천례(薦禮)를 정지했다. 오후에 임 참봉(任參奉)의 아들 지경(之敬)이 와서 그의 어른의 편지를 전해 주었다. 내가 그의 아들을 가르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무신년(1608, 선조41) 2월 16일 맑다가 오시쯤 흐렸다. 평보 형이 들렀다. 이보다 앞서 대행대왕이 보위에 있을 때, 류영경과 그 무리가 모두, 정인홍의 상소는 이산해(李山海) 부자 및 이이첨(李爾瞻) 등에게서 비롯되어 몰래 시킨 것이라고 의심하여, 주상에게 계(啓)를 올려 죄주기를 청했다. 이에 이경전(李慶全)은 갑산(甲山)으로 귀양 가고 이이첨은 삼수(三水)로 귀양 가게 되었는데, 산해가 경전을 이별할 때 부자가 서로 통곡했다. 영경의 형의 아들인 성(惺)은 산해의 딸을 전처(前妻)로 얻었다. 성의 처가 병이 들자 성이 손가락까지 잘라 간호했는데, 이에 이르러 성이 곧바로 산해의 집으로 가서 상소를 하도록 몰래 시킨 정상을 캐물으며, 언사가 패악스럽고 거만하여 어른을 대하는 예의가 조금도 없었다. 산해가 그런 일이 없다고 답하자, 성이 끝까지 따지고 물으면서 대감이라 부르고 장인어른이라 부르지 않았다. 성이, “만약 대답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약사발을 받들어야 할 텐데, 그때는 후회한들 소용 있겠소?”라고 하니, 산해가 분하고 민망한 마음을 견딜 수 없었다. 이때에 이르러 경전과 이첨이 모두 귀양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국상이 나게 되었다. 이날 임 참봉의 아들이 글을 배우러 왔다. 무신년(1608, 선조41) 2월 22일 흐림. 오시쯤 임 참봉 및 누이의 편지를 보았다. 아이를 가르치는 일 때문이었다. 신해년(1611, 광해군3) 3월 6일 맑음. 임 참봉의 편지를 보니 8일날 아들의 관례(冠禮)에 초청을 하면서 서신(書信)의 의범(儀範)을 빈례(賓禮)로써 하였다. 그 내자(內子)되시는 누님이 또 별따로 여종을 보내어 편지로 나를 청하였는데 지극히 난처하여 감히 답장을 하지 못하였다. 신해년(1611, 광해군3) 3월 7일 비가 내렸다. 오시에 임지대(任之大) 군이 갑자기 왔다. 다시 임 참봉 내외의 편지를 보니 나를 초청하는 것이 몹시 간절하였다. 임 군은 어제 저녁에 서울에서 돌아왔는데 지금 명을 받들고 왔으니 몹시 미안하였다. 부득이 점심을 먹은 후에 임 군·이실(而實)과 함께 비를 무릅쓰고 갔다. 지나가는 곳에 진달래와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봄빛이 무르익어 넘치니 경치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임 참봉댁에 도착하니 이미 밤이 되었다. 서울에서는 서인들이 활개를 치고 지금 주상은 덕을 잃어 어떤 벼슬아치라도 직언(直言)을 하면 즉시 퇴출(退黜)된다고 한다. 신해년(1611, 광해군3) 3월 8일 맑음. 아침에 홀기(笏記)를 보니 빠진 부분이 많았는데 어제 의논하여 결정한 것을 쓴 것이었다. 그래서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었다. 나는 힘써 빈(賓)을 사양하였으나 어쩔 수 없어서 이실을 찬자(賛者)로 정하였다. 밥을 먹고 행례(行禮)를 마친 후에 법도대로 술 석 잔을 마셨다. 안으로 들어가 누님을 뵈오니, 창녕(昌寧) 누님도 또한 와 계셨다. 날이 이미 저물어서 드디어 주인과 작별하고 사안(士安)·민보(敏甫)·덕휘(德輝)를 차례로 들러보고 이지·이실과 함께 돌아오니 이미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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