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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러운 3년상, 어버이의 빈소에 올리지 않은 음식은 입에 대지 않는다
1608년 11월 28일, 임 형의 이야기가 내성의 참봉 이문규와 수군
홍동년
의 효행에 미쳤다.
이 참봉은 효성스러워 아침저녁으로 어버이 가묘에 평상시와 같이 밥상을 올렸는데, 퇴도(退陶, 이황) 선생이 ‘지나친 예’라고 말했으나, 이것은 귀한 일이다.
김령은 일찍이 이문규의 효행은 들었으나 홍동년의 일은 처음 듣는다.
홍동년은 생전에 효성스럽게 어버이를 모셨는데 돌아가시자 3년상을 지내는 동안 비록 보잘것없는 음식일지라도 어버이 빈소에 올리지 않고는 자기 입에 넣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는 그의 어버이 묘소에 성묘하러 가서 개암나무 열매를 따다가 절하고 올렸는데, 중이 지나가기에 불러 나누어 먹자고 하니, 그가 웃으면서 갔다고 한다. 이것은 비록 사소한 일이나 역시 그의 지성스러운 효심이 독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상에도 반드시 3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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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계암일록(溪巖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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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령(金坽)
주제 : 풍속, 삼년상
시기 : 1608-11-28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령, 이문규, 홍동년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31호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령
◆ 조선시대 최고의 가치 효(孝)
가계(家系)의 연속이 중요시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제도 하에서는, 넓게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좁게는 아버지와 아들간의 관계가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우선하는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흔히 부자관계(父子關係)로 표현되는 이 관계는, 부모와 자식이 각기 독립적인 인격자임을 상호간에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일방적인 예속과 종속에 따른 상하관계였다. 부자관계를 지배하는 행위규범은 효(孝) 또는 효도(孝道)로 집약될 수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지배한 전통적인 규범으로서의 효 또는 효도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정성껏 모시는 것뿐만 아니라 사망한 뒤에도 극진히 제사를 모시는 것 등을 포함한다. 이이(李珥)는 ≪성학집요 聖學輯要≫에서 사친(事親)의 도리를 언급하면서 “대체로 효도는 부모를 섬기는 일에서 시작하고, 임금을 섬기는 일이 중간이 되며, 입신하는 것을 맨 마지막에 둔다.”는 공자(孔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렇듯 자식의 일체의 행동은 효도와 관련하여 평가되었고, 자식은 그의 일생을 통하여 이 효도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무신년(1608, 선조41) 11월 28일 흐림. 비로소 온계(溫溪)에 가서 오 진사(吳進士) 어른의 초상에 조문했다. 이미 대상(大祥)이 가깝지만 이전에는 병으로 조문을 못했기 때문인데 늦은 것이 한스럽다. 이어 임 참봉의 집에 갔는데, 비가 크게 내렸다. 병약한 몸이라 추위를 무릅쓰고 돌아올 수 없어서 마침내 머물러 자게 되었다. 임 형의 이야기가 내성의 참봉 이문규(李文奎)와 수군(水軍) 홍동년(洪佟年)의 효행에 미쳤다. 이 참봉은 효성스러워 아침저녁으로 어버이 가묘에 평상시와 같이 밥상을 올렸는데, 퇴도 선생이 ‘지나친 예(禮)’라고 말했으나, 이것은 귀한 일이다. 나는 일찍이 이문규의 효행은 들었으나 홍동년의 일은 처음 듣는다. 생전에 효성스럽게 어버이를 모시다가 돌아가게 되자 3년상(喪) 동안에 비록 보잘것없는 음식일지라도 어버이 빈소에 올리지 않고는 자기 입에 넣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는 그의 어버이 묘소에 전묘(展墓 : 성묘)하러 가서 개암나무 열매를 따다가 절하고 올렸는데, 중이 지나가기에 불러 나누어 먹자고 하니, 그가 웃으면서 갔다고 한다. 이것은 비록 사소한 일이나 역시 그의 지성스러운 효심이 독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상에도 반드시 3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월천의 유고(遺稿)는 처음에 역동서원에서 편집하였는데, 바깥의 의론 때문에 용수사(龍壽寺)로 옮겼다. 김중청과 이립(李苙)이 일반 사람처럼 왕래한다고 한다. 임 형이, “저들이 바야흐로 죄망(罪網)에 걸려 있으면서 버젓이 모여드니, 아주 해괴하고 경악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송재집(松齋集)》을 보다가 소릉(昭陵) 만시(輓詩)를 읽었다. 송재(松齋)는 정국(靖國) 때, 수챗구멍으로 대궐을 빠져나왔다는 설로 삭훈(削勳)되었는데, 송재가 소를 올려 스스로 발명했다. 그 뒤 이음애(李陰崖)가 그 사실을 기록했으나, 역시 바깥의 말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송재는 논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르지는 않은 것 같으나, 지금 모두가 수챗구멍이라는 설은 헛말이 아니라고 한다. 올해 여름에 판결사 오운․임 참봉․이사안 등이 함께 의논하여 장차 항소(抗疏)하여 추변(追辨 : 나중에 변별함)하려고 임 형이 소를 짓고 이사안이 가지고 올라갔으나, 형편이 여의치 못하여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임 형은 이 일을 말하면서 반드시 추변할 것이라고 하며 이사안을 시켜 소초(疏草)를 찾아 보내게 하여 나에게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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